왜 하필 '아편'인가

<아편전쟁>

by 김포이

기생충에 감염된 바다달팽이는 매일 바위 위로 기어오른다. 갈매기의 먹잇감이 될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의 죽음을 보면서도 매일같이 자살행위를 한다. 갈매기의 몸속에서만 번식할 수 있는 기생충이 달팽이를 조종하는 것이다. 바다달팽이는 물에서 살기 때문에 건조한 곳에 오래 있지 못한다. 생과 사의 판단이 흐려지고 최면에 걸린듯 바다를 나가 바위에 오르도록 만드는 것. 이것이 기생충의 놀랍고도 무서운 능력이다.


과거 중국은 온 인구가 기생충에 감염된 것 같은 시기가 있었다. 19세기 중국사회를 혼란에 빠뜨렸던 '아편'이 그 주범이다. 아편을 안 먹어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먹은 사람은 없었다. 아편에 중독된 사람은 끊임없이 아편을 찾았다. 식사는 걸러도 아편은 거르지 않았다. 갈수록 쇠약해지고 정신이 혼미해지지만 아편중독자들은 아편을 통해 고통에서 벗어나려했다. 관리부터 하층민에 이르기까지 아편중독의 규모는 거대했다. 도처에 아편굴이 생기고 아편구매로 인해 가산을 탕진하는 백성들이 늘어났다. 아편 밀수입으로 다량의 은이 국외로 유출되었으며 관리들은 이를 눈감아주고 막대한 뇌물을 챙겼다. 국민건강과 국가경제가 동시에 위협을 받는 상황이었다.


중국과 아편.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1840년 아편전쟁이다. 이름부터 '아편'전쟁인 이 사건은 중국 역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전쟁이었다. 중국은 영국에게 박대한 전쟁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다. 더불어 5개 항구를 개항하고 홍콩을 할양했다. 세계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온 중국이기에 수치스러운 아편전쟁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가 매우 중요했다. 중국은 아편전쟁을 반성의 기회로 삼음과 동시에 서구에 저항했던 중국인의 위대함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 과정의 일환으로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에 맞춰 영화 <아편전쟁>이 개봉됐다.




<아편전쟁>은 제1차 아편전쟁의 전후 역사를 다룬 영화다. 아편을 폐기하는 장면이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지만 아편을 밀거래하는 장면도 꽤 흥미롭다. 바다 위에서 배를 옮겨 타고, 지하실에서 물건을 확인하는 모습. 감시망을 피하기 위해 육지 위가 아닌 망망대해에서 접촉하는 모습이 참 대단하면서도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 떳떳하지 못한 거래는 하징낳는 편이 좋은데 구태여 하려는 이유는 무엇일까. 중국은 이러한 밀거래는 막을 방도가 없었던 걸까. 영국이 이렇게까지 아편을 수출하려는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단순히 금전적인 이유일 뿐일까. 영화 한 장면에서 시작된 의문은 의식의 흐름대로 계속 이어졌다. 마침내 궁금증의 끝에 도달했다. 영국은 왜 하필 '아편'을 수출했던 것일까.


대략 세 가지 배경 및 근거를 추측해보았다.

첫 번째는 인도가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점이다. 아편이 의약품으로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유럽은 대량으로 또 조직적으로 아편을 생산하기 시작했다. 인도의 아편시장은 이 과정에서 엄청난 규모로 성장했다. 대규모 아편재배국 인도를 식민지로 삼고 있던 영국은 다량의 아편을 손쉽게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머지않아 아편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아편을 통제하기 시작했다. 소비는 감소하는 반면 생산은 게속되는 아편은 애물단지가 되어버렸을 것이다. 때마침 영국은 중국과의 무역이 적자가 계속되고 있었다. 값싸게 들여온 아편으로 다량의 은과 차를 가져오는 '저비용 고효율'의 거래. 영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영국의 비인간성이다. 영화에는 영국인의 잔인함 혹은 비인간적인 측면을 드러내는 소수의 몇 장면이 있다. 장난삼아 총으로 갈매기를 쏴 죽이는 영국 상인들의 모습.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 하더라도 재미로 죽이는 그들의 모습은 참으로 잔인하다. 영국 상인들의 식사 장면에서도 느낄 수 있다. 본인들이 밀수출한 아편이 중국사회에 큰 시련을 주고 있다는 사실을 상인들도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버젓이 중국에서 좋은 음악, 맛있는 음식, 여인의 노래가 함께하는 식사를 한다. 한쪽에서는 고통을 받고 있고, 고통의 빌미를 제공한 자는 다른 한쪽에서 호화로운 식사를 하고 있는 형국이란. 뻔뻔하기 그지없다.


아편중독으로 인한 사회분제를 직접 경험한 영국이었다. 아편의 유해성을 인식하고 있음이 명백하다. 그러나 단기간에 적자무역을 흑자무역으로 탈바굼하고자 중국에 아편을 수출했다. 자국 내에는 아편흡입을 금지하면서 타국에는 수출하는 이중적인 영국인의 자세는 영화에 묘사된 영국 상인들의 잔인함이 허구가 아님을 보여준다. 지금은 아편을 비롯한 마약류를 법적으로 제한한다. 하지만 그 어떤 장치도 마련되지 않은 어린 사회에 위험성 가득한 제품을 수출하는 것은 다분히 비인도적이라 할만하다.


마지막 세번째는 중국에 대한 영국의 탐욕이다. 영화에는 당시 영국이 중국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를 알 수 있는 대사들이 다수 등장한다. "중국을 소유한다는 것은 19세기를 소유한다는 뜻이다." "중국은 세계 최대의 시장이다." "황금거위를 놓치지 말자." 영국은 산업혁명을 거치고 여러 식민지를 소유하고 있는 유럽의 선두주자로서 무한한 자신감을 갖고 있었다.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떤 것이든 가질 수 있을 것만 같은 상황에서 최대의 시장을 보유한 중국이 얼마나 탐이 났겠는가. 중국을 아편중독에 빠뜨려 수출량을 조절하며 조금씩 세력을 넓히려는 것이 그들의 숨겨진 의도가 아니었을까.




영국에게 아편수출은 수출액 증대, 대량의 아편 처리, 중국시장 장악의 발판 마련이라는 1석 3조의 방법이었다. 아편수출의 배경을 추측하다 보면 국가차원의 계획적이고 의도적인 일임이 분명해 보인다. 하지만 영화 <아편전쟁>에서는 조금 다르다. 오히려 '영국 정부는 아편무역에 일절 개입하지 않았으며 회사의 자유무역이었다. 아편을 수출한 영국 상인들은 영국의 존엄성을 훼손했다.'라는 식으로 묘사된다. 다량의 아편이 빠져나가고 더불어 다량의 은이 유입되는 상황을, 예산을 관리하는 정부가 모를 리 없다. 영화는 마치 영국 정부는 장못이 없으며 몇몇 일개 영국인만을 '악마화'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는 <아편전쟁>이 중국정부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짐작된다. 영국의 잔인함을 한없이 부각시키는 것 대신 서구에 맞서는중국인의 위대함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방식을 택했다. 중국인들이 항복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는 장면, 야만인인 양인을 너그럽게 용서하는 모습, 아편을 밀거래한 관리들이 너무나도 빨리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 자결하는 자만 수백명이라는 자막까지. 동화에 나오는 착한 주인공마냥 바르고 위대하다. 오죽하면 임칙서마저도 미화된 인물처럼 보인다. 1997년 홍콩 반환에 맞춘 개봉년도 역시 민족주의적인 성향이 짙음을 보여준다. 많은 중국인들이 이 영화에 열광한 이유가 여기 있다. 아편전쟁을 재해석하겠다는 목적은 좋으나 녹여내는 그 과정에서 과한 중국미화가 들어간 것은 안타깝다.


논외지만, 영화는 아편이 사회적 문제가 된 시기부터 진행된다. 아편이 어떤 경로로 중국사회를 잠식해갔는지, 중국이 그 이전엔 다른 마약을 접한 적은 없는지, 아편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던 원인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다루고 있지 않다. <아편전쟁>의 스핀오프형식으로 아편이 중국에 퍼져나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영화 <부산행>의 스핀오프인 <서울역>처럼. 제목도 지어볼까. <광(狂)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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