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여느 때처럼 필사를 하며 클래식 음악을 틀었다. 유튜브를 켰는데 오래간만에 호로비츠가 눈에 들어왔다. 1987년, 그의 마지막 연주 여행 중 하나였던 비엔나 리사이틀 실황 영상이었다.
호로비츠는 내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피아니스트다.
몇 번이고 봤던 영상인데, 오늘따라 유독 눈길을 사로잡는 장면이 있었다.
바로 그 손.
피아노 건반을 '치는' 게 아니라, 마치 무엇인가를 어루만지듯 '쓰다듬는' 그의 손가락.
바이엘 배울 때부터 하던 '달걀 쥐는 듯한' 손 모양, 건반을 향해 손가락을 세워 낙하시키듯 낭랑하게 두드리는 그 익숙한 동작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호로비츠가 밀어 치기보다 당겨 치는 스타일로 연주한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다. 하지만 오늘은 테크닉이 아니라, 그 손끝에서 풍기는 '감정'이 내게 다가왔다.
문득 질문이 스쳤다.
"나는 왜 피아노 건반을 쓰다듬어 본 적이 없을까?"
"왜 늘 정복의 대상으로, 싸워 이겨야 할 존재로 여겼을까?"
호로비츠, 여든이 넘은 노인의 손이 마치 어린 손녀의 머리를 어루만지듯 건반을 스치자, 세상 가장 따뜻하고 깊은 소리가 피어났다.
나는 그 소리를 단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루 종일 연습실에 틀어박혀 미친 듯이 쳐도 그런 소리는 나지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는 늘 거창한 걸 쫓았던 것 같다. 그럴듯하고, 남 보기에 번듯한 화려한 음악만을.
하지만 진짜 음악은, 그게 아니었나 보다.
참, 얄궂다.
피아노를 내려놓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왜 이제야 이런 게 보이는 걸까.
눈에 불을 켜고 연습할 땐 안 보이더니, 그냥 탱자탱자 뚱땅거릴 때는 잘도 보인다.
그래서 '열심히 하는 자는 즐기는 자를 못 따라간다'는 말이 있는가 보다.
퇴행성 관절염이 오려는지 뻣뻣하고 삐걱거리는 손가락으로라도, 이제는 피아노 건반을 좀 애껴줘야겠다.
어릴 적 우리 딸 머리 쓰다듬듯, 부드럽고 조심스럽게.
왜냐면, 피아노는 말이지—
치는 게 아니라 쓰다듬는 거니까.
https://youtu.be/8ELwCdgGQLQ?si=AF9sJNjXZ6DigR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