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뮤텔 빠삐짱에게
뮤텔 빠삐짱에게,
우리가 처음 만났던 그날이 아직도 선명해. 언니와 오빠가 나를 뚱땅거리며 칠 때, 너는 부러운 듯 똥그란 눈망울로 우릴 바라보던 곱슬머리 아기였지. 의자에 올라앉아 이곳저곳 작은 손가락으로 나를 눌러보며 신기해하고 재미있어하던 네 모습이란!
1975년 5월 21일. 언니, 오빠가 다니던 피아노 학원에 등록하고, 너도 어엿한 피아노 학원생이 되어 내 앞에 앉아 연습하던 날을 기억해. 어려서부터 칭찬받기 좋아하던 너는 누구보다 눈을 반짝이며 선생님 말씀을 듣고 그대로 해보려 애썼어. 언니, 오빠보다 빠른 속도로 실력이 늘면서 학원 원장 선생님의 애제자가 되었지. 잘하면 더 잘하고 싶어지는 법이니까, 너는 더욱 열심히 연습했고 콩쿠르에도 나갔어.
예술학교에 들어가서는 우물 안 개구리에서 벗어나 놀라워하고 절망하고, 또 마음을 다잡으며 노력하던 네 모습도 봤어. 항상 안전을 추구하던 네가 한국 최고의 대학에 문을 두드렸을 때 나도 놀랐어. 그래서 누구보다 열심히 응원했지. 너의 절실한 마음과 노력이 결실을 맺었을 때, 나도 함께 환호했어!
그리고 끊임없이 배우고자 미국으로 유학을 떠나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대학 강사로 활동할 때도 나는 네 곁을 지켰어. 한국에서 다시 어려움을 겪고 미국으로 돌아와 레슨을 하던 때도, 딸내미 토리를 키우느라 몇 년간 나를 거들떠보지 않을 때도 '그럴 수 있지'라고 이해했어.
하지만 아파트로 이사하면서 나를 교회에 팔아버렸을 때는 정말 서운했어. 어떻게 그렇게 순식간에, 미련 없이 나를 보낼 수 있었는지... 네 얼굴에 약간의 걱정이 보이긴 했지만, 오히려 시원해하는 표정이 더 많아 보여서 나는 속상했어. 너와 함께한 시간이 얼마나 긴데, 헌신짝 버리듯 나를 보낼 수 있는 건지...
토리가 대학에 가고 네가 방황할 때는 솔직히 좀 속으로 꼬숩기도 했어. 나 없이 잘 살 줄 알았어? 나를 완전히 잊고 살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거야? 천만에!
나는 네가 돌아올 줄 알았어. 그것도 금방. 토리가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너는 저렴한 전자 피아노를 사더니 뚱땅뚱땅 치기 시작했잖아. '역시, 이 사람은 나 없이는 안 되는구나.' 안심도 되고 뿌듯하기도 했어. 네 곁에서 함께한 시간이 헛되지 않았다는 생각도 들고.
이제 우리 앞에는 꽃길만 남았어. 네가 이 세상에 있는 한, 나도 네 곁에 있어 줄 거야. 앞으로는 외롭지 않을 것 같지? 그래도 고마운 마음이 든다면... 나 좀 더 좋은 기종으로 업그레이드해 주는 건 어때?
영원히 너의 곁에서,
피아노가
https://youtu.be/oh0wuy7HvgQ?si=23B2kNMuvi6ef5Q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