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집아기와 엄마

by 뮤텔 빠삐짱


필라테스로 지친 몸에 든든한 한 끼를 채워 넣었더니, 저항할 수 없는 졸음이 밀려왔다. 소파에 몸을 맡기고 꾸벅꾸벅 졸다 깨어보니, 제멋대로 헤매던 유튜브 알고리즘이 뜻밖의 선물을 건네고 있었다. 바로 동요 '섬집아기'.


어린 시절, 나를 사로잡았던 그 멜로디


어렸을 적 내가 유난히 좋아하던 노래였다. 어린 마음에도 느껴지던 그 묘한 감정—구슬프면서도 따스하고, 시리면서도 포근한 상반된 느낌. 그 서정적인 멜로디는 내 어린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었다.

하필 오늘 들은 버전은 카운터테너 이동규와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의 연주였다. 이동규의 맑고 투명한 카운터테너 음색은 동요 특유의 순수함을 지키면서도, 성인이 된 지금의 나에게 와닿을 수 있는 깊이를 더해주었다. 그 위를 감싸는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는 마치 파도 소리처럼, 섬집 아기가 듣던 바닷바람처럼 멜로디를 감싸 안았다.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다 못 찬 굴바구니 머리에 이고

엄마는 모랫길을 달려옵니다


이 대목에서 결국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가사에 엄마 이야기가 나오면 어쩔 수 없이 울컥하게 되는 건, 마치 옛날 '우정의 무대'에서 오랜만에 엄마 얼굴 보고 눈물 흘리던 군인들처럼, 나 역시 이역만리 타국 땅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엄마가 떠올랐기 때문이다. 눈물 콧물 범벅.


변해버린 엄마, 그리고 내가 찾는 엄마


물리적 거리 때문에 자주 못 만나는 게 애석하기도 하지만, 어쩌면 더 큰 이유는 따로 있는지도 모르겠다. 내 마음속 엄마의 모습과 많이 달라진 지금의 엄마. 예전과 달리 자주 화를 내고, 자주 불평하고, 자주 섭섭해하는 지금의 모습을 보면, 나는 여전히 어릴 적 그 엄마를 찾고 있는 것 같다.

굴바구니가 다 못 차도 나를 위해 모랫길을 달려오던 그 엄마. 나는 아직도 그때 그 마음으로 엄마를 기다리는, 어린 섬집아기 같은 마음인지도 모른다.


오늘, 나는 섬집아기가 되어


오늘은 '섬집아기' 속에서 내가 그리워하던 엄마를 마음껏 만나보기로 했다. 이동규의 목소리와 리처드 용재 오닐의 비올라가 그려내는 풍경 속에서, 모랫길을 달려오는 엄마의 뒷모습을 상상해 본다.

음악이 주는 위로란 이런 게 아닐까. 변해버린 현실 속에서도, 잃어버린 순간들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는 것. 오늘 하루, 나는 그 시린 듯 따스한 멜로디 속에서 어린 섬집아기로 돌아가 엄마를 기다려본다.


PS. 어쩌면 우리 모두의 마음속엔 각자의 '섬집아기'가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당신의 섬집아기는 누구를 기다리고 있나요?


https://youtu.be/IoAQJafmpQk?si=FAbhEa04J0meKUX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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