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밝았다. 2026년, 엄청난 기운이 느껴지는 붉은말의 해! 마음은 누구보다 열정적으로 새로운 신년을 맞이했지만, 몸은... 몸은 마음만큼의 열정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이제 나는 그야말로 중년, 오십 대의 딱 중간인 55세가 되었다.
2026년을 시작하고 처음으로 마주한 내 몸의 노쇠함은 오른쪽 눈에 둥둥 떠다니는 실타래 같은 검은 선의 등장이었다. 처음에는 눈에 무언가가 들어간 줄 알고 인공눈물을 넣어 눈을 씻고 눈물을 짜내기도 했다. 그런데도 며칠이 지난 지금까지 없어지지 않고 내 오른쪽 시야에 풍선처럼 둥둥 떠 있다. ChatGPT에게 물어보니 '비문증'일 확률이 제일 높다고 한다. 노화로 인한 것이라 평생 반려로 안고 살아가야 한단다. 큰 병이 아닐 것 같다는 예감에 안심이 되지만, 이 까만 실뭉치를 평생 보고 살아야 할 생각을 하니 약간 서글프기도 하다.
두 번째로 내 마음을 아프게 하는 내 몸의 변화는 머리카락이다. 새해 들어 갑자기 생긴 일은 아니지만, 부쩍 머리카락이 얇아지고 힘이 없으며 자꾸 빠진다. 우리 아버지 닮아 원래도 머리카락이 얇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머리를 쓸어 넘기기만 해도 떨어져 나오는 가냘픈 그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숙연해지기까지 한다. 강하지 못한, 약하디 약한 모근을 만나 이렇게 가엾게 생을 마감하다니. 그동안 제대로 돌봐주지 않고 내팽개쳐둔 게 너무나 미안할 따름이다.
오늘 아침 필사를 하다 어깨에 뚝 떨어진 머리카락 두 가닥을 책상 위에 올려 보았다. 한 놈은 나름 딴딴한 모습으로 반달처럼 웃고 있고, 또 다른 놈은 좀 더 가벼운 몸놀림으로 유영하는 문어 머리를 닮았다.
주인 닮아 천방지축 각각의 모양으로 놀다가 떨어져 나온 놈들을 보고 있자니, 그동안의 수고를 칭찬해주고 싶었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전, 이 놈들을 위해 애도의 시간을 가져보고 싶었다.
이제는 점점 더 빨리 속도를 높여 노쇠해갈 내 몸뚱이. 너무 다그치지 말고 인정해 주고 아껴주자. 운동도 살살해보고, 몸에 좋다는 것도 챙겨 먹고.
무엇보다 할 일을 끝내고 장렬하게 전사해 가는 내 몸의 흔적들에게도 감사의 마음, 애도의 시간을 가져봐야겠다. 55세, 붉은말의 해. 나는 오늘도 천천히, 그러나 의연하게 나이 들어간다.
https://youtu.be/xW0QbUC0cEU?si=ca9r0Sj_KdKm0Zvi
*낭만적이고 화려한 곡을 주로 작곡한 라흐마니노프에게 이런 곡도 있다니! 사람의 목소리만큼 아름다운 악기가 있을까. 머리카락 애도하기에 딱 맞는 홀리한 음악 한번 감상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