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에 찾은 나의 진짜 컬러
"엄마, 나 웜톤 아니래. 쿨톤이래!"
방학이라 한국에 놀러 간 딸아이에게서
문자가 왔다.
'엥? 이게 뭔 소리야. 쿨톤이라고?'
몇 년 전부터 '퍼스널 컬러'라는 게 유행하면서
겨울 쿨톤이네, 가을 웜톤이네 하며
자신을 꾸미는 젊은이들을 SNS에서 많이 봤었다.
전문 컬러리스트에게 상담도 받는다고 한다.
한국에 있지 않으니 딸아이도 나도
그저 우리끼리 서로 봐주면서
딸은 웜톤, 나는 쿨톤이라 결정하고 지냈었다.
그렇게 철석같이 본인은 웜톤이라 믿고
골드 액세서리만 주렁주렁 달고 다니던 딸이
여름 쿨톤이라는 결과에 충격을 받았단다.
'어? 그럼 나는? 나도 쿨톤이 아닌가? 설마 웜톤?'
내가 웜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어젯밤 내내 듣던 쇼팽의 음악이 떠올랐다.
가슴이 시리게 아름답다는 말은
이런 음악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사실 예전엔 쇼팽 음악을 별로 안 좋아했다.
뭐가 맨날 이렇게 구구절절하고 애잔하냐고.
쇼팽 악보에 나와 있는
'rubato(기분을 살려 자유롭게 템포를 잡아 연주하는 것)'를 보면
감이 안 올 때가 많았다.
게다가 그 살짝 뽕끼가 느껴지는
신파스러운 멜로디는
세상 쿨한 척하던 젊은 시절 내게는
너무나 오글거렸다.
그보다는 화려하고 기교도 엄청난
리스트의 음악을 좋아했었다.
'내가 오늘 낭만파 음악이 어떤 건지 제대로 보여주겠어'
하고 마음먹고 나온 듯한 그의 음악.
생긴 것도 샤프하고 무대 매너 또한 거침없는
리스트의 음악은 들을 때나 연주할 때나
무언가 시도할 거리가 넘쳐 났다.
너무 어려워 패시지를 쪼개도 보고
리듬을 바꿔도 보고,
온갖 연습 방법으로 애를 쓰다 보면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오늘도 뭔가 열심히 했다는
뿌듯한 마음을 가질 수 있어서 좋았다.
그렇게 쿨한 리스트를 좋아하는 쿨톤인 줄만 알았는데,
요즘 그렇게 생각도 안 해보던 쇼팽이 마음에 스며든다.
어쩌면 센 척하고 싶고 도도하고 싶은
가면을 다 벗어버리고 난 후의 내 모습은
쉽게 감동받고 울컥하고 감탄하는
세상 따스한 웜톤이었나 보다.
쇼팽의 발라드, 소나타, 협주곡, 녹턴...
듣고 있으면 심장이 먹먹해진다.
너무 슬프지만 아름다워서 눈물이 뚝뚝 흐르는데
입가에는 미소가 번지는 듯한 느낌!
나도 모르는 나의 모습.
그 모든 척을 내려놓으면 보이는,
절절한 멜로디에 눈물 흘리는,
감동받아 어쩔 줄 모르는,
약하디약한 순수한 내 모습.
숨기고 싶던 이 모습이 '나'라는 사람인가 보다.
내가 잊고 있던 나의 웜톤,
따스한 나의 모습을 인정하고 나니
무언가 후련한 느낌이 든다.
이제는 쿨톤 화장으로 가리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 같은 것.
감동하고 감탄하고 자주 울컥하는 이 모습 그대로,
웜톤 그대로 세상에 나아가자.
루바토 때문에 늘어진 템포를 다시 맞추려
휘리릭 미끄러지듯 울려 퍼지는 쇼팽의 멜로디처럼,
나도 쿨톤 가면을 벗고
스르륵 편안하게 내 감정을 표현하자.
그래도 된다. 나는 웜톤이니까!
https://youtu.be/2l9Wpg_y45g?si=klDoMtK7iVVe9oi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