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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툰 어른도 진짜 어른입니다

에필로그 | 마리모 8년 차, 어른 11년 차

by 뺑또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내 자리에 앉아서 업무를 보고 있던 때였다. 사실 그때 유독 할 일이 없었다. 장기 프로젝트는 끝난 지 오래였고, 이제 다음 프로젝트를 기다려야 했는데 윗선에서 영 소식이 없었다. 나를 포함한 팀 전체가 무료했다. 억지로 일감을 찾아내서 기안을 올리기도 했으나 영 진척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 상태로 느슨하게 지내기를 몇 개월. 그즈음엔 업계 상황도 좋지 않았다. 많은 회사들이 폐업했고, 임금을 동결하거나 감봉하고 권고사직을 감행했다. 그러다 보니 내게도 께름칙한 감이 있기는 했다.


<잠깐 회의실에서 얘기 좀 할까요>


갑자기 오랜만에 상사로부터 그 메신저를 받자마자 심장이 덜컥 내려앉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었던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예상했던 얘기를 들었다. 그 후 회의실을 나와서 나와 같은 처지가 된 동료들과 카페를 갔고, 몇 시간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카페를 나왔다. 나는 곧바로 회사로 돌아가는 대신 이비인후과를 갔다. 어젯밤에 수영을 하고 난 후로 오른쪽 귀가 잘 들리지 않았던 탓이었다. 이 답답하고 먹먹한 것을 얼른 해결하고 싶었다.


"이것 좀 보세요. 귀지가 껴 있죠?"


의사가 화면을 통해 보여준 내 귓속엔, 마치 또 다른 고막이 생긴 것 마냥 물귀지가 막을 형성하고 있었다. 수영을 하면서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숨을 쉴 때마다, 오른쪽 귀에 물이 들어갔던 탓이었다. 별다른 약도 필요 없었다. 그저 막혀 있던 귀지를 빼내고 나니 모든 것이 해결되었다. 순식간에 주변의 소리가 선명하게 들리며 개운해졌다.


그렇게 회사로 돌아가는 길. 어느새 붉은 노을로 물든 그 길을 보며 기분이 참 묘했다. 분명 익숙한 길이었는데, 매일같이 오가던 길이었는데, 한순간에 낯설어졌다. 이젠 나와 상관 없어진 그 길. 곧 떠날 길이었다.


이런 종류의 길은 이번이 세 번째였다. 첫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본 노을은 희망찼다. 두 번째 회사를 그만두었을 때 본 노을은 쓸쓸했다. 그리고 지금 본 노을은 허탈했다. 인정받기 위해 그렇게 열심히 노력했는데. 수없이 고민하고 버텼는데. 결국 그 모든 노력의 종착지가 권고사직이라니.


그제야 나는 회사를 관찰자로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몇 번 겪었던 일이건만 이번에도 결국 내가 몸 담고 있던 조직을 떠날 때가 되어서야 그 시절의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까지 고군분투할 필요도 없었구나. 그러니 앞으로도 내가 처한 상황에 너무 집착하거나 스트레스받지 말아야지. 어차피 그것도 한 우물에 불과할 테니까. 우물 밖에는 또 다른 세상이 있을 테니까.


그렇게 나는 서른이 되었다. 서른이 되면 앞으로 나아갈 길이 명확하게 보일 거라고 생각했다. 성공한 어른이라면 무릇 그래야 한다고 생각해서였다. 하지만 막상 서른이 되니 명확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 내 직장도 직장이거니와 이 세상도 점점 더 불확실해지는 것 같았다. 앞으로 나는 어디로 향하게 되는 걸까. 어떤 삶의 방식을 갖게 되는 걸까.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그래도, 결국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것 말이다. 퇴사 후에도 생활패턴을 유지하려 했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밥을 먹고, 씻고, 운동을 하고, 잠을 잤다. 실업 급여를 받으며 이직 준비를 하기 전까지의 틈을 기회삼아 내가 꼭 해보고 싶었던 일들을 하기로 결심했다. 더 미루고 싶지 않은 일들 중 몇 가지를 시도해 보기로 한 것이다.


이 에세이를 쓰게 된 것도 그 일환 중의 하나였다. 가짜 마리모와 함께 해온 약 8년여의 시간과, 이십 대에서 삼십 대를 거쳐온 나의 특별할 것 없는 10년을 정리해 보았다. 그러면서 잊고 있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비록 어떤 위대한 사람들처럼 큰 가난을 겪지도 않았고, 삶을 뒤흔들만한 역경이랄 것도 없었고, 번뜩이는 천재성으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개척해 나간 적도 없었던 보통의 삶이었지만, 그래도 그 10년간 참 열심히 살긴 했다. 그 노력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동안은 서투르기 때문에 내가 가짜 어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묘목 상태의 나무가 가짜 나무가 아니듯이 서툰 어른도 그 자체로 어른이었다. 어른으로서 최대한 나의 책임을 다하려고 노력했던, 열 살에서 스무 살로, 스무 살에서 서른 살로 자랐던 나였다.


한 시절을 함께했던 친구들도 제각기 조금씩 성장해서 이제는 서로 아주 다른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떤 친구는 커리어를 쌓아가는 것을 삶의 가장 큰 기쁨으로 여기는 듯했다. 또 어떤 친구는 돈은 많이 벌지 못하더라도 지금의 이 안정적인 삶에 만족하는 듯했다. 또 어떤 친구는 목표했던 시험에는 합격하지 못했으나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그 누구보다 보람차게 일하고 있었다. 또 어떤 친구는 착실히 아르바이트와 재테크를 하면서 삶을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었다. 새로운 기회를 찾기 위해 공부를 이어가는 친구도 있었다. 또는 사회에 큰 상처를 받고 좌절하기도 했으나 그럼에도 오늘을 살아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이미 가정을 꾸려서 두 아이의 엄마가 된 친구도 있었다.


모두 저마다의 길을 가고 있었다. 그리고 각기 다른 고민으로 괴로워했다. 그들 중에서 누군가를 콕 집어서 가장 성공한 삶이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들의 삶을 단 하나의 수식으로 줄 세우기에는 삶이 너무 다채로웠으니까. 물론 누군가는 '성공한 어른'의 이미지를 쉽게 제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심지어는 그 기준에 어긋난 행보를 보이는 이들을 조롱하기도 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수치화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 너무 많았다. 그 각자의 삶이 모두 존중받아 마땅했다.


그래서 나이를 먹으면 먹을수록 그 진실을 잊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식은 사람마다 제각각이노라고,

수치화할 수 없는 삶의 가치들이 있노라고,

그러니 살아갈 희망만 있다면 어떤 방식으로든 잘 살아갈 수 있노라고.


비록 그럴싸한 에세이의 마지막 챕터처럼, 완벽한 성공을 이룩한 것으로 이 책을 끝맺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괜찮았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변할 것이고 자랄 것이다. 내게 어른이란 완성형이 아니라 성장하는 존재였으니까.


그렇게 나는 또 새로운 출발을 하기로 했다. 서툴지만 꾸준하게, 나의 오늘을 살기로 했다. 나의 부모가 그러했듯이, 나의 친구들이 그러했듯이, 나의 과거가 그러했듯이.


지난 10년간 그래왔듯이, 나는 앞으로도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의 어항에 물을 갈아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의 10년을 맞이할 준비가 되었다.



퇴사 후 글을 쓰면서 봤던 산책길의 노을. 그 노을은 정말 찬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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