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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리모일기 6 | 가짜인 줄 알았는데 진짜였습니다

by 뺑또


25년 10월 12일.


마리모들과 함께 한 세월도 어언 8년이 다 되었다.

지난 한 해도 꽤 다사다난하기는 했지만 올해 1년도 평탄하지만은 않았다.

가장 큰 이슈는 권고사직을 당했다는 것이다. 잘 다니고 있었던, 멀쩡한 기업에서 권고사직이라니.


물론 평소에 퇴사를 입에 달고 살기야 했지만 신이 그런 자잘한 소원까지 들어줄 줄은 몰랐다.

팀이 통째로 사라지면서 갑작스레 내가 일하던 파트 자체가 사라져 버릴 줄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역시 회사는 내 미래를 책임져주지 못한다.

그러나 뭐 어쩌겠는가. 이것도 기회라 생각하며 당장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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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풍파 속에서도 마리모 삼 형제들은 여전히 변함없이 내 책상 위에서 잘 살고 있는 중이다.

참, 눈치 빠른 분들은 알겠지만 어항이 바뀌었다.

원래 쓰던 어항에 물을 받고 있었는데 그 어항이 돌연 와장창 깨져버리고만 탓이다.


아무래도 8년간 어항에 물을 받을 때마다 조약돌과 부딪히며 미세한 금이 생겼는데,

결정적으로 수압이 원인이 되어 부서지고만 것 같았다.

지금의 이 어항은 원래 꽃병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인데 엄마가 임시 어항으로 쓰라며 주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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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마리모들이 8년간 살았던 그 홈 스윗 홈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렸고,

대신 쓸모 없어진 뚜껑만 남아 있게 되었다.

과연 저 뚜껑은 쓸모가 생길까.

아니면 또 본가 한 구석에 방치되어 있다가 이사 갈 때에야 발견하게 되어 결국 버려지게 될까.



나는 요새 들어 부쩍 이상한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내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에 대한 생각 말이다.



지금으로부터 약 6년 전.

3년간 좀처럼 자라지 않는 마리모, 막시무스에 의문이 들었던 나는 막시무스의 실체를 밝혀내기 위해 갖가지 테스트를 진행했고, 그 결과 막시무스는 가짜로 판명이 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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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그로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매년 블로그에 막시무스를 비롯한 마리모들의 근황을 올렸던 바,

다른 두 녀석들에 비해서도 좀처럼 자라지 않는 막시무스를 보며 역시 녀석이 가짜임에 틀림없다 확신을 했었더랬다.


그 글을 봐주셨던 많은 분들도 막시무스 녀석이 사이보그 수세미라는 결론에 모두 동의를 했었다.

그 정도로 그 녀석이 가짜라는 사실은 내겐 꽤 자명한 진실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쩌면 녀석이 가짜가 아니라 진짜일 수도 있지 않을까?




사실 그런 의구심이 이번에 처음 든 것은 아니었다.


발단은 2022년이었다. 그 당시에 썼던 마리모 글에도 밝혔다시피,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가 조금이나마 자란 것 같은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땐 그런 가능성을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겼더랬다.


그런데 최근 심심해서 '가짜 마리모'를 검색했다가 현미경으로 마리모를 관찰하고 직접 자신의 마리모를 진짜라고 확정 짓는 블로그 글을 보고 문득 다시 또 그런 의구심이 들었던 것이다.


그러고 보면 내가 막시무스를 가짜라 입증했을 때에도 명확하게 과학적인 근거를 든 것은 아니었다.

물론 그땐 나름 논리적 근거를 바탕으로 결론을 내렸다 생각했지만 지금 와서 돌이켜보니 그 근거들이란 모두 전혀 과학적이지 않은, 심증에 불과했던 것이다.



이거... 느낌이 싸한데...



그래서 결국 질러버렸다. 현미경을 말이다.

5년 전에 이미 가짜 판정을 받은 그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를 다시금 판정대에 올릴 시간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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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휴지 심판대에 오른 세 마리모들.

나무와 꽃으로 장식되어 한층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자아내는 이 심판대에서 드디어, 과학적인 방법을 통해

마리모들의 실체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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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우리 집 잡동사니 바구니에 꽂혀 있던 자(마리모 실측 업무 4년 차)를 가지고 와서

의무적으로 마리모들의 크기를 쟀다.


결과:

막시무스 0.5 -> 0.6

수세미 1.5 -> 1.8

마둥이 2.0 -> 1.7


막시무스는 왜 자랐고, 마둥이는 왜 줄었을까?

임시 어항이 올록볼록한 탓에 햇볕에 차등이 생긴 것일까?

(이러면 임시 어항은 바로 해고하는 수밖에...)


근데 사실 이젠 자로 재는 것이 크게 의미가 없는 것 같다.

애초에 측정자가 덜렁이라 실측을 그리 정밀하게 하지 않았어서 늘 크기가 제각각 요동쳐왔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굳이 기를 써가며 정밀한 실측을 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에,

아무래도 올해를 기점으로 정기적인 실측은 좀 고려를 해봐야겠다.

(이것으로 마리모 실측 업무를 맡은 '자' 녀석도 권고사직행...)


사실 지금은 녀석들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 녀석들의 실체를 과학적으로 증명하는 것이 중요할 뿐.

그래서 드디어 모셔왔다.

녀석들의 정체를 밝혀줄 현미경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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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쿠팡에서 산 휴대용 현미경. (광고 아님)

가격은 만원 대.

크게 돈 들이고 싶지 않아 가성비 제품으로 샀다.

휴대폰에 어플을 깔고 연결을 하면 현미경으로 보는 것들을 곧바로 핸드폰으로 확인할 수 있는 아주 기똥찬 녀석이다.


이것으로 먼저 내 머리카락을 봤다가 까무러칠 뻔했다.

얇은 머리카락들이 그렇게 굵게 보이니 너무 징그러웠달까.

그래도 탈모 현황을 확인하는데 이보다 더 좋은 도구가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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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녀석들의 정체가 이 현미경으로 밝혀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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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건 막내가 먼저 해봐야 한다는 유구한 유교예절 법칙에 따라

막내 마둥이가 먼저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두근 거리는 마음으로 핸드폰 어플을 확인해 봤다.



과연 그 결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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엥 이게 뭐시여


내 기대와는 다른 어두침침한 줄기들.

빛 반사가 되면서 뭔가 투명한 막 같은 게 보이는 것 같았으나,

대관절 이게 이끼인지 수세미인지 알 길이 없었다.

그래서 대체 이게 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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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수세미도 해보았으나 결과는 마찬가지.

미역줄기 같기도 하고...


그래도 혹시나 막시무스는 다른 두 녀석과 확연히 다르지는 않을까 싶어서

막시무에게도 현미경을 들이대보았다.

그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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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희멀겋다!

줄기가 좀 더 조잡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혹시 이것이 이 녀석이 가짜라는 결정적인 증거!?


하지만 이건 그저 세월의 풍파 때문일 수도 있었다.

사람도 나이가 들면 새치가 나고 몸 여기저기가 아프기 마련인데 마리모라고 다를 게 있을까?


몇 번이고 다시 현미경을 들이대보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실망스러웠다. 현미경만 사면 모든 것이 탄로 날 줄 알았거늘...


이래서 이런 작업을 할 땐 가성비 제품을 사면 안 되나 보다...


결국 고민 끝에 더 성능이 좋은 현미경을 구매하고야 말았다.

이렇게 중복 투자를 하게 될 줄이야.


그리하여 시작된 2차 공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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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이 그럴듯한 비주얼을 보시라! (광고 아님 절대 아님)

이번엔 삼만 원 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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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용 현미경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전문가적인 키트들까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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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요 신뢰가 가는 두께의 설명집과

설명집 표지에 찍혀 있는 저 세밀한 현미경 사진들은

한층 더 기대감을 증폭시키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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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립하면 이렇게 손바닥만 한 크기의 귀여운 현미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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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막돼먹은 '들이밀기'식 관찰도 없다!

문명인답게 이런 '프레파라트'라는 것에 마리모 조각을 조금 떼어내고

물방울을 떨어트려 표본을 만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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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왼쪽부터 차례대로 만들어본

막시무스, 수세미, 마둥이 시험표본.

동생은 나보고 매드사이언티스트 같다고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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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그럼 이제 드디어 녀석들을 샅샅이 조사할 시간이다.

먼저 정체를 드러내라 마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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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확실히 만원 대 현미경보다 더 잘 보인다!


자세히 보면 세포벽 안의 동글동글한 엽록소 같은 것들도 보인다.

확실히 진짜 같은 모양새!

물론 아주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었다.

제품 상세페이지나 설명서 표지의 이미지만큼 자세히 보이지는 않았으니까.

그래도 뭐 아예 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니 그다음, 수세미도 확인을 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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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마둥이보다 초록초록해 보이지는 않지만 그래도 확실히 줄기 안에 엽록소들이 보이기는 한다.

이 녀석도 가짜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이제 드디어 대망의 막시무스 차례만 남았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막시무스를 시험대에 올렸다.

드러내라 너의 정체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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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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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

투명한 벽, 엽록소 같아 보이는 초록색 뭉치들...


이 녀석... 진짜다...!

근데 저렇게 까맣게 뭉쳐져 있는 부분은 뭐지...

관리를 잘 못한 탓에 생긴 먼지 뭐 그런 건가....?


그래도 내 생각엔 분명 진짜였다.

이럴 수가, 막시무스가 진짜였다니!!

이건 뭐 지금껏 입양아인 줄 알고 키웠는데 알고 보니 내 친자식이었다 뭐 그런 식의 반전이 아니던가!




사실 이미 마리모를 의심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내 마음은 싱숭생숭했다.

충격적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 사실이 참 이상했다.

막시무스를 가짜라고 의심했을 때보다 진짜라고 의심했을 때가 더 마음이 싱숭생숭했으니까.


생각해 보면 진짜로 키운 것은 고작 3년.

하지만 가짜로 키운 것은 5년이 넘지 않았던가.

게다가 가짜 마리모로서 많은 분들에게도 꽤 사랑을 받기까지 했으니...


그래서였던 것 같다.

이젠 가짜가 막시무스의 정체성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일부러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많은 분들께 막시무스를 가짜라고 소개해온 것에 대한 죄책감도 있었던 것이다.


막시무스가 진짜였다니...

진짜 마리모였다니...

몇 번을 곱씹고 난 뒤에야 마음이 착 가라앉았다.

내가 그동안 막시무스를 오해하고 있었구나.


그렇게 공판은 종료되는 듯했다. 난 진짜 마리모 막시무스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그러나 이때는 몰랐다. 3차 공판이 진행될 줄은...




사실을 명확히 하고 싶어 챗지피티에게도 물어봤다.

막시무스, 수세미, 마둥이 사진을 순서대로 주고

생물학자로서, 최대한 오래 고민하면서 셋의 진위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했다.


내 요청대로 꽤 오랜 고민 끝에 챗지피티가 답을 내놓았다.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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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막시무스가 인공물일 가능성이 70에서 80퍼센트라고요?

정말 가짜 마리모라고요?


머리가 혼란스러웠다.

이미 내 마음속에서 막시무스는 진짜였다.

현미경으로 봤을 때도 진짜 같았다.

그런데... 챗지피티의 의견을 달랐던 거다.


그 근거를 요약하자면 이랬다.

막시무스는 전체적으로 덩어리(무정형) 형태이고 많은 불규칙한 빛반사와 광택이 보이는 데다가

연속된 세포벽이 잘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게다가 작고 어두운 점들은 먼지나 탄소 같은 이물일 수도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건 대표적인 합성물 표본의 오염이라는 것이었다!


솔직히 나는 챗지피티보다는 내 판단을 믿었다.

아무리 봐도 저 투명해 보이는 막은 세포벽이지 않을까?


하지만 인공지능이 이렇게 나와버리니 영 개운하지가 않았다.

이 진짜도 아니고 가짜도 아닌 찜찜한 결론이라니...!


그냥 챗지피티의 의견은 싹 무시한 채로 막시무스를 진짜라고 결론짓고 글을 마무리해 버려?

아니면 역시 가짜였다고 생각해야 하나? 순간 이런저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지만....

결국 찜찜함이 귀찮음을 이기고 말았다. 이미 칼을 빼든 이상, 끝을 보는 수밖에......


그렇다. 나는 눈물을 머금고 또 현미경을 구매하고야 말았다.

무려 중복중복투자. 쿠팡이 참 좋아할 듯.


그리하여 이번에는 정말로 과학실에서 쓸 법한

10만 원대의 철제 현미경을 샀다!

가성비는 개나 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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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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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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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둥!!!

크으으 이게 현미경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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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젠 면봉이며 스포이드며 집게며 붓이며 다 있다. 심지어 프레파라트도 플라스틱이 아니라 진짜 유리로 되어 있다. 위에 씌우는 유리는 종이만큼이나 얇다! 초등학생 때 과학실에서 저 유리를 깨 먹은 추억이 새로 새록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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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표본은 어제 썼던 그 표본들을 그대로 썼다.

마리모들의 살을 계속 떼어내자니

마음이 좋지 않았던 탓에 따로 휴지에 고이 보관을 해두었더랬다.


그러고 보니 5년 전의 나는 이 녀석들이 햇볕에서도 누렇게 죽지 않고

푸르게 살아 있었다며 가짜임을 의심했더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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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아무튼 이젠 드디어, 정말로, 진짜로!

마리모들의 실체를 깔끔하게 밝힐 때가 왔다.

제일 고배율로 밝혀내주마. 5000 배율 가동!!


역시나 마둥이부터 먼저다.

과연 그 결과는....!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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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오오오! 이것이 마둥이!?

확실히 이젠 세포 마디가 다 보인다!

게다가 세포 안에 둥글둥글 들어차 있는 엽록소들까지!


신기해서 한참을 쳐다보고 있었다.

이 작은 세계를 처음 두 눈으로 봤던 과학자는

얼마나 놀랍고 떨렸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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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것이 수세미이다.

확실히 마둥이보다는 줄기의 굵기며

영양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는다.

어쩌면 나는 미다스의 손일지도....


그래도 확실히 세포벽과 엽록소들이 눈에 들어온다. 녀석도 확실히 진짜가 맞다.


그리고 드디어 때가 되었다.

누가 뭐래도 이번에는 마지막 관찰이다.


5년간 가짜마리모로 살아왔던 막시무스.

그의 실체가 드디어 밝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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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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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오! 찾았다! 명확한 세포벽과 엽록소를!

이건 쳇지피티가 부정해도 확실한 마리모! 이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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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 챗지피티도 진짜라고 인정해 주었다.

이것으로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는

가짜라는 오명을 벗었다!


막시무스는 진짜였다.

누가 뭐래도 진짜 이끼였던 것이다.


참고로 진짜 플라스틱들도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기 위해

우리 집 부엌을 돌아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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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요 노란 행주.

두 번째로 샀던 현미경이 이렇게 휴대가 되는 것이라

지체 없이 바로 현미경을 들이대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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굉장히 고르고 일정한 굵기의 플라스틱 실이다.

확신의 인공물 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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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로, 조금 더 얼기설기 엮여 있던 행주에도 현미경을 들이대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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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누가 봐도 인공물 같다.

그 와중에 코 박고 행주를 관찰하고 있으려니

그 꼬릿꼬릿한 행주 냄새들을 계속 맡게 되어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쯤에서 행주 관찰은 종료하는 것으로.

현미경 실험할 것이라면 행주는 되도록 피하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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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이렇게 끝이 나면 아쉬우니

가장 정밀하게 관찰할 수 있는

세 번째 현미경으로도 실험해 봤다.


사실 수세미로 하고 싶었으나, 우리 집엔 털이 복슬복슬한 수세미가 없었으므로

그와 제일 유사해 보이는 이 녀석으로 실험해 보기로 했다.


참고로 이 녀석은 라부부가 아니다. 짭부부다.

추석에 내려갔더니 인형 뽑기 마스터인 삼촌이 어디서 또 이런 인형들을 잔뜩 뽑아오셔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자, 이제 이 녀석의 털을 조금 잘라내어 현미경으로 관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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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잔! 투명하고 균일한, 누가 봐도 인공물 같은 털이다.

진짜 마리모들과는 명확히 대비되는 이미지.


이것으로 마리모 삼 형제들은 모두 진짜 이끼라는 것이 판명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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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모든 심판 과정을 끝낸 마리모들.

지친 몸을 이끌고 다시 어항 속에 퐁당퐁당 던져졌다.


기분이 좋은 것인지 물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녀석들.

5년 전 나는 막시무스가 물 위에 이유 없이 떠 있는 것을 보고 역시 가짜임에 틀림없다 생각했더랬다.


그런데 지금, 이 세 녀석들이 모두 어항 위에 둥실 떠 있으니 기분이 묘했다.

만일 내가 막시무스를 가짜라는 이유로 차별대우했다면 지금보다 더 죄책감이 컸겠지.


그래도, 막시무스를 가짜라고 착각하는 바람에

막시무스에게 막시무스라는 이름도 지어주게 되었더랬다.

가짜였기 때문에 내 마리모는 막시무스가 되었다.

그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가짜 마리모 막시무스,

수세미로 밝혀지더라도 수세미일 수 있는 수세미,

블로그 이웃들이 지어준 이름인 마둥이까지.

그 이름들엔 각자의 사연과 지나온 시간이 있었다.


그 덕분에 진짜이건 가짜이건 간에 막시무스는 막시무스였다.

내 인식 하나로 진짜였다가 가짜가 되었다가 진짜가 된 막시무스는

지금도 여전히 8년간 그래왔던 것처럼 내 책상 위의 어항 속에 잠겨 있다.


막시무스처럼, 어른인 듯 어른이 아닌 듯 어른인 나도

이 시기를 아무렇지 않게 잘 넘길 수 있을까.


분명한 것은 전에도 그랬던 것처럼 마리모와 나는 계속해서 서로를 방치하면서

함께 세월을 버텨낼 것이라는 것이다.



당시 실제 포스팅과 댓글 반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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