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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을 맞이할 수 있는 힘

마리모 7년 차, 어른 10년 차

by 뺑또

어느덧 나는 전형적인 회사원이 되었다. 오전 업무를 하고 점심을 먹으며 수다를 떨다가 오후 업무를 하고 집에 가는 쳇바퀴같은 일상을 반복했다. 대학생 시절의 내가 꿈꾸지 못했던, 아니 사실은 되고 싶지 않았던 그런 심각하게 안정적인 회사원이었다.


기억나는가. 대학생 시절의 나는 회사원이란, '현실에 안주하기만 하고 내 꿈 같은 것은 포기해버리고마는 재미없는 어른들'이라 생각했다는 것을. 회사원이 되고나니 그 말의 반은 맞았다. 본디 회사원이란 안정적인 생활을 대가로 쳇바퀴같은 일상을 살기로 선택한 사람들이니까.

애초에 자아실현을 회사에서 이루는 것은 꿈같은 얘기였다. 특출난 재능과 흥미가 정확히 일치되어 자신의 의견이 곧 회사의 의견이 되는 극소수의 엘리트들에게나 해당되는 얘기였으니까. 그러니 상사의 의견에 맞춰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일처리를 수월하게 해 내야만 하는 나같은 일반 직원들에게는 회사에서 자아실현하기란 먼 나라 이야기였다. 그저 내 적성에 맞고 일의 보람을 느낄 수 있다는 데에 만족하며 살아가는 수 밖에.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아실현을 아예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런 것은 회사 밖에서 하면 되었다. 퇴근 후 짬을 내어 한 두시간 정도라도 오로지 내 의견만으로 진행되는 나의 프로젝트를 추진하다보면 그 자체로도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그렇게 나는 회사 생활을 마친 후, 퇴근 후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하면서 지냈다. 나는 여전히 새로운 꿈을 그려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쯤되면 모든 것에 다 익숙해지고 능숙해질 것이라 생각했던 사회 초년생 시절의 내 생각과는 달리, 나는 그때도 어쩐지 모든 것에 능숙해지지 못한 것만 같았다. 분명 업무 프로세스도 다 파악했고 일도 손에 익었고 사람들과도 잘 지내고 있었건만 나는 여전히 두 번째 회사에서의 나처럼 어딘가 불안했던 것이다. 그렇다. 내게는 절대로 익숙해지지 못한 것이 한 가지 있었다. 바로 내 마음 속의 불안이었다.


왜 불안한가, 생각하면 그건 내 없애려야 없앨 수 없는 그 놈의 인정욕구 때문이었다.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고 실수없이 완벽하게 일을 해내고 싶었던 욕심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맡은 업무는 정답이 없는, 상급자의 주관이 중요한 업무였으므로 그 정답을 찾는 것이 애초에 불가능했다. 그래서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에 대한 불신은 불안을 더 부추겼다. 내가 놓친 부분이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거듭 확인을 하느라 쓸데없이 시간을 낭비하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여전히 실수하는 부분이 있었으니 불안이 더 증폭될 수 밖에 없었다. 심지어는 혹시 ADHD인가 싶어서 병원에서 검사까지 했지만 ADHD도 아니었다. 그 사실이 어찌나 허탈하던지. 차라리 ADHD라고 했더라면 내 실수에 대한 합당한 핑계라도 댈 수 있었을 텐데 그럴 수도 없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나는 그 불안을 평생 달고 살 수 밖에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내가 이젠 그렇게 어리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이미 그 기질은 익히 인지하고 있었으므로 그 기질 때문에 슬프지는 않았다. 그러니 이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아야만 했다. 완벽에 대한 강박에서 빠져나와, 나의 불안을 통제할 수 있는 방법. 내 마음을 다스리고 내일의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내가 찾은 방법들이 있으니, 일명 '나약한 직장인의 평생멘탈관리 솔루션'되시겠다. 이름을 거창하게 짓긴 했는데 쉽게 말해 그냥 불안한 마음을 관리하는 방법이라 생각하면 되겠다.




나약한 직장인의 평생멘탈관리 솔루션


첫째, 회피하기

언젠가 한 유튜브에서 개그우먼 장도연님이 직장에서의 멘탈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알려주신 적이 있었다. 바로 회피를 하라는 것이었다. 이게 뭔 폐급 직장인 같은 소리인고 하겠지만 그건 업무적 책임을 회피를 하라는 소리가 아니었다. 업무는 당연히 자기가 맡은 일을 책임감 있게 해내야 한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내 멘탈을 관리할 때에는 속으로나마 남 탓을 하고 문제를 회피하는 것이 그렇게 효과적일 수가 없다는 얘기였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꽤 충격적이었다. 지금껏 나는 속으로라도 남 탓을 하는 것은 죄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래서 매번 실수를 하건 질책을 듣건 자책을 하는 쪽으로 문제의 원인을 해소했더랬다. 하지만 그건 나에게는 물론 회사에게도 좋지 않은 방법이었다. 사실 모든 인간들은 다 자기가 옳다고 생각해야 살아갈 수 있는 것이었다. 자기가 잘못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자존감은 뚝 떨어지고 삶은 하드코어가 되기 마련이며 당연히 그다음 날 업무에도 지장이 가게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나를 위한 회피기동 3 계명을 만들었다.


어쩌라고 3 계명

어쩌라고 자기네들도 정답을 모르면서

어쩌라고 그럼 날 뽑지 말았어야지

어쩌라고 그럼 연봉 더 주고 더 잘하는 사람을 뽑던가


어차피 3 계명

어차피 이 고난도 일주일 후엔 잊힐 거임.

어차피 이 회사는 내 평생직장이 아님

어차피 내년에 이 회사 뜰 거임 (이렇게라도 스스로에게 마감기한 같은 것을 주는 게 위안이 된다)


회피를 하는 것은 남을 미워하는 것과는 좀 다른 일이다. 남을 미워하는 것은 그 특정 타깃에게 화살을 쏘는 일이다. 그리고 그렇게 미워하다 보면 행동으로 티가 나게 되어 있다. 반면 회피는 말 그대로 내가 나 자신에게 쏘아대는 자책의 화살을 피하는 일이다.


한편 나는 명상도 자주 했다. 명상의 주목적은 과거의 걱정과 미래의 불안에서 벗어나 현재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었다.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스트레스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한 뒤 현재의 호흡과 나를 둘러싼 공간을 느끼고 나면, 내가 느낀 불안과 걱정이 실체가 없는 허상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가 있었다. 명상을 처음 하시는 분들이라면 넷플릭스의 <헤드스페이스: 명상이 필요할 때>를 적극추천한다. 명상이 왜 필요한지, 명상의 메커니즘은 무엇인지를 친절히 설명한 뒤 직접 명상을 할 수 있도록 가이드를 준다.



둘째, 부캐 만들기

회사에서의 내가 미워질 때면 나는 회사 밖에서도 나를 괴롭히곤 했다. 하지만 회사에서의 나와 회사 밖에서의 나를 더 명확히 구분지을 수 있다면, 회사 밖에서 나를 괴롭히는 일도 좀 줄어들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부캐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개그하는 유재석>, <트로트 하는 유재석> 있었듯이, 나도 <회사에서 일하는 나>, <00하는 나>를 더 많이 만들어서 내 정체성을 다양하게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 취미를 찾았다는 얘기다. 어떤 취미든 상관없었다.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취미도 좋았다.

나의 경우에는 뜨개질을 하고 게임을 할 때가 그랬다. 작업물을 완성하거나 업적을 달성하고 나면 나 자신의 또 다른 가치를 찾은 것 같아 뿌듯했다. 게임을 하는 나는 서부를 달리는 갱단이 되기도 했고 판타지 세계를 구원할 영웅이 되기도 했다.


또는 사교를 할 수 있는 취미도 좋았다. 친구들이나 연인과의 사교도 그 중 하나이겠지만 전혀 다른 사람들과 교류를 하는 것도 신선한 즐거움을 얻을 수 있었다.

나에게는 수영이 그런 교류를 만들어주었다. 회사에서는 온종일 회사 동료와 상사들을 만나야 했지만, 수영장 안에 들어가면 수영복을 입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다. 수영장 안의 사람들은 다들 형형색색의 수영복을 입었고, 머리카락이 보이지 않게 수영모를 썼다. 그러한 인상착의로는 그 사람이 어떤 직업을 갖고 있는지, 어떤 스타일을 입는지 판단할 수 없었다. 나는 그들과 가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거나 레일 순서를 양보하는 것 정도의 교류를 했다. 그 자체로 내겐 해방감을 주었다. 수영을 하는 나는 사무적인 내가 아니라 친절하고 말 걸기를 좋아하는 내가 되었다.


또는 단순히 한 가지 일에 깊게 몰두할 수 있는 취미도 좋았다.겐 프라모델 만들기가 그런 몰입감을 주었다. 어떤 프라모델을 만드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딱히 로봇을 좋아하지도 않았으니까. 내가 좋아했던 것은 그저 부품을 깎고 조립하고 맞추는 그 과정 자체였다. 마치 명상을 하는 것처럼, 몰입의 시간은 과거의 불안과 미래의 걱정을 밀어내고 오로지 현재에 집중할 수 있도록 했다. 프라모델을 만드는 나는 멋진 장난감을 만들고 있는 내가 되었다.


그렇게 한 가지로 고정된 내가 아닌 다양한 정체성을 지닌 나를 만들자, 내 삶도 조금 더 다채로워졌다. <회사의 나>도 나였고, <프라모델 만드는 나>도 나였다. 나는 사무적일 수도 있었고 활발할 수도 있었고 어린아이같을 수도 있었다. 덕분에 <회사의 나>가 못나보일 때에도 회사 밖의 나를 사랑할 수 있었다.



셋째, 부업하기

내가 회사에서의 스트레스를 회사 밖으로 들고 올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하나 있다. 바로 밥벌이할 수단이 회사 하나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다. 당장 회사에서 내쫓기면 먹고 살 방법이 없어지고, 회사에서의 평판이 곧 내 능력에 대한 평판이 되기 때문에, 회사에서 일어나는 작은 일에도 전전긍긍해하고 불안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만일 회사가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수입을 얻거나 커리어를 쌓을 수 있다면 회사의 일에 전전긍긍해할 이유가 크게 줄어들 것이었다.


그래서 부업이 필요했다. 부업은 취미와는 달랐다. 정말로 돈을 벌어들일 수 있어야 했다. 간식비정도라도 괜찮았다. 회사 밖에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과 약간의 낙관적인 행복회로만으로도 왠지 해고를 당해도 어찌어찌 살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만들기에는 충분했으니까. 그래서 "회사는 내 인생의 전부가 아니야"같은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만일 돈을 제대로 벌고 싶다면 외주만 한 것도 없을 것이다. 비록 퇴근 후의 내 몸이 좀 고달프기는 하겠지만 돈도 돈이거니와 내 능력에 대한 자신감도 확실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내 주변에도 외주를 하는 친구들이 몇 있었다. 특히 커리어를 쌓을 수 있는 부업을 했던 친구는 회사 안에서는 충족시키지 못했던 자아실현의 욕구를 부업을 통해 충족시킬 수 있었다고 했다.


체력이 된다면 배달이나 쿠팡 아르바이트를 뛰는 것도 좋을 것이다. 실제로 단기적으로 쿠팡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던 친구도 있었다. 그 친구는 회사에서는 늘 머리만 쓰면서 일을 하다 보니 오히려 아무 생각 없이 체력을 소모하는 일이 더 괜찮았다고 했다. 회사가 망해도 쿠팡 알바를 하면 되지, 같은 생각도 할 수 있었고, 반대로 지금 다니는 회사에 감사하며 다닐 수 있게 되었다고 했다. 그러니 그 친구는 부업을 통해 스트레스 해소와 자신감과 감사하는 마음을 모두 얻을 수 있었던 것이다.


만일 돈을 벌기가 마땅치 않다면 부업을 위한 sns를 키우며 구독자수를 늘려가는 것도 한 방법일 수 있겠다. 당장의 벌이는 되지 않을지라도 내가 만든 작업물을 누군가가 좋아해 주고 내 채널을 구독해 주는 것만으로도 꽤 위안이 되니까.

나도 대학생 때부터 줄곧 내 작품을 만드는 것이 꿈이었던지라 개인 작업을 계속했다. 큰 수익이랄 것은 없었지만 그래도 그 자체로도 만족감이 상당했다. 내겐 그 일이 곧 자아실현을 위한 일이기도 했다. 추가로 블로그를 꾸준히 운영하며 블로그 협찬을 받아보기도 했다. 회사 밖의 수단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것 자체가 내겐 자신감이 되었다.


사실 회사는 내 미래를 책임지지 않는다. 요새같이 미래가 불확실한 사회에서는 더 그렇다. 그러니 회사 일에 목매지 말자. 회사는 나에게 그리 큰 관심을 주지 않으니까.



그 당시 내가 만들었던 피규어. 전문가처럼 디테일을 신경쓰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다 조립하고 나면 굉장히 뿌듯했다


어렸을 땐 일만 잘 할 줄 알면 편하게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어른이 되고 보니 회사 생활이며 내 멘탈 케어며 참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나약한 직장인 멘탈관리솔루션'도 결국엔 어떻게든 벌어먹고 살려고, 오늘을 버텨보려고 하는 짓이었으니까. 물론 이것도 말처럼 쉽지만은 않았다. 사실 하루 온종일 회사에서 지내는 회사원들에게 회사의 나와 회사 밖의 나를 분리시키는 작업은 이중인격이 아니고서야 꽤 어려울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니 마치 내가 무릎 건강을 위해 평생을 노력해야 하듯이, 내 마음 건강을 위해서도 평생을 노력해야만 했다. 이렇게 또 평생 관리해야하는 것이 생긴 것이다.




한편,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나도 좀 변했다. 대학생이었다면 부당하다 생각하며 반기를 들었을 일들이 이젠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어영부영 넘길 수 있는 일들이 되었으니까. 이 허점 투성이인 사람들이 모여 쌓은 이 모래성 같은 기업이 어떻게 이렇게 그럴싸하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던 적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럼에도 내가 맡은 일을 어떻게든 잘 해내려고, 이 바퀴달린 모래성을 어떻게든 굴러가게 하려고 온 힘을 다했던 것이었다.


결국에는 다들 참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어떻게든 책임을 지고 있었다. 그제야 나는 거의 30년간 한평생 한 회사에서 회사생활을 했던 아빠를 다시 보게 되었다. 어떻게 그 몇 십 년의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을까. 그 세월을, 대체 어떤 방식으로 버텨왔을까. 그럼에도 무엇이 그 일을 계속 해낼 수 있는 힘을 주었을까.


그러나 지금의 나는 그 세월을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그러니 지금은 그저 내 앞에 놓인 현실을 열심히 살아갈 수 밖에 없었다. 긴 것도 같고 짧은 것 같기도 한, 나의 남은 인생을 꿋꿋이 살아나가야겠다 다짐했다. 그렇게 또 1년이라는 세월이 톱니바퀴 구르듯 천천히 흐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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