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모 7년 차, 어른 10년 차
새로운 회사는 운 좋게도 업계에서 꽤 알아주는 회사였다. 나로서는 두 번째 이직으로 인한 '중고중고신입'으로서의 입사. 하지만 수습기간 한 달 만에 퇴사라는, 하등 쓸모없는 이력은 이력서에 적어내지 않았으므로 공식적으로는 또다시 중고신입으로 입사한 꼴이었다.
첫 입사 때만 하더라도 꽤나 들떠서 여기저기 내 첫 취업을 알리고 다녔지만, 이제는 이전 직장에서 크게 데인 기억 탓에 주변 사람들에게 취직했다고 떠들고 다니지는 않았다. 완벽하게 자리 잡기 전까지는 언제 어떻게 회사를 그만두게 될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래서 아직은 수습기간일 뿐이라고 말하며 혹시 모를 퇴사에 대비했더랬다. 말하자면 의자에 반만 걸터앉아서 언제든 일어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애매모호한 자세로도 꽤 잘 붙어 있게 되었다. 다행히 회사에서 나를 '중고'신입이 아닌 진짜 신입으로 대해준 덕분이었다. 새로 배운 일들도 차차 익숙해졌다. 물론 시시각각 생기는 이런저런 골치 아픈 일들을 겪어야만 했지만 어찌어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시간이 훌쩍 지나 그 회사에서도 2년 차가 되었다. 결국 내 자세고 뭐고 간에 시간이라는 확실한 이력이 생겨버리고 말았으니, 이젠 그 회사가 내 회사다라고 말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그제야 나는 퇴사를 입에 달고 살기 시작했다. 그렇다. 진정으로 장기 근속할 성실한 근로자라면 습관처럼 퇴사를 떠들고 다니는 것이 인지상정인 것이다. 그렇게 나는 어른 10년 차가 되었다.
늘 설렘만 있을 것 같던 자취생활도 10년 차가 되자 뻔한 일상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심지어는 혼자 산다는 사실마저도 종종 까먹기 일쑤였다. 혼자 밥 먹고, 혼자 유튜브를 보고, 혼자 잠에 드는 일상이 너무 당연해져 버린 것이다.
이제 내 주위에는 낯설고 설레는 것보다 오래되고 익숙한 것들이 더 많아졌다. 처음 문을 연 팝업스토어도, 심지어는 처음 가본 해외여행지도 다 언젠가 본 것 같았고 이미 다 아는 것 같았다. 분명 자취 초창기 때엔 나 혼자 치킨을 시켜 먹는 일 하나만으로도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는데 지금은 문어숙회든 양고기든 별에 별 걸 다 시켜봐도 그때 그 시절만큼의 행복은 느낄 수가 없었다. 말하자면 도파민이 잘 나오지 않았다. 도파민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을 때 생긴다고 하던데, 이젠 대부분의 것들이 예상 가능한 범위 내에 있었던 것이다.
관계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새로 만나는 사람들은 없었고 늘 만나던 사람들만 만났다. 약속이나 한 듯이 정기적으로 연락이 오는 친구들이 있었다. 대게는 날이 풀렸다고 한 번 만나고, 연말이 되었다고 한 번 만나는 식이었다. 그렇게라도 몇 남지 않은 인연을 붙잡고 싶은 것이 어른의 마음인 것 같았다. 그 오래된 인연들이 점점 더 소중해졌다.
그런데 나는 몰랐다. 오래된 인연이었으므로, 아마도 평생을 함께 하게 될 것 같은 사이였으므로, 당연히 우리의 관계는 변치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말이다. 하지만 관계는 변할 수밖에 없었다. 사람이 변하는데 그 사이의 관계가 변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낙엽 구르는 것만 봐도 까르르 웃었던 학창 시절의 나는 이미 없고, 이제는 해외여행을 가도 심드렁해하는 지경에까지 이른 나인데 친구들이라고 그러지 않았겠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니 서로 제각기 다른 방향으로 변한 사람들 사이의 관계도 변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한동안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다 오랜만에 친한 친구들과 해외여행을 갔을 때에야 알았다.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냈던 정말 친한 친구들과 생애 처음으로 일본 여행을 갔을 때였다. 사실 갈등이라고 해봐야 별 건 아니었다. 사소한 입장 차이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발생했고, 그 때문에 서로 상처를 받았으니까. 나의 경우, 내 친구의 거친 말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친구의 경우, 갑작스레 눈물이 많아진 내 모습에 당황스러워했다.
생각해 보면 그 친구와 나 모두 서로를 어린 시절의 그 모습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중학생 시절. 우리는 서로에게 늘 장난스럽고 밝은 모습만 보여주었더랬다. 약한 모습이나 진지한 얘기 같은 것은 어울리지도 않거니와 재미도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른이 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우리는 점점 더 일부러 과장하고 꾸며내는 것에 지쳐가고 있었다. 그러면서 옛날 같았으면 서로에게 보여주지 않았을 약하고 못난 모습을 보여주게 된 것이었다. 그 모습들이 해외여행지에서 더 부각되었던 것이고, 그리고 그 모습을 당연히 내 오랜 친구가 다 받아주리라 기대했던 것이었다.
결국 서로가 변함없는 모습으로 남아주리라 기대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내 변한 모습을 다 이해해 주리라 생각했던 것은 환상이었다. 우리는 자라기 위해서 변해야만 했다. 서로가 변했으므로 그 관계도 변한 상태에 맞춰서 관리해주어야만 했다. 서로의 약한 면면들을 보살펴주고, 새로 생긴 상처들을 이해해 주고, 너와 나의 적정한 거리를 재조정해야 했다. 마치 오래된 원목 테이블을 제대로 관리해 주어야만 그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의 오래된 관계도 잘 관리해야지만 아름답게 늙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사실 나와 그 친구뿐만이 아니었다. 모든 것이 변하고 있었다. 친구도, 부모님도, 주변의 어른들도 말이다. 어떤 이는 사회적 압박을 견디다 보니 점점 더 완고해졌다. 또 어떤 이는 불확실한 미래로 인해 전보다 더 유해졌다. 또 어떤 이는 학창 시절 때 믿었던 신념과는 정 반대의 길을 택하기도 했다. 말랑말랑했던 젊은 시절의 사람들이 이젠 저마다의 색깔로 굳어져가고 있었다. 모든 것은 시간이 흘러감에 따라 변했다. 이젠 그 변한 것들을 잘 관리해야만 했다.
다행히 그 친구와는 화해를 했다. 둘 다 서로를 무척 아꼈던 덕분이었다. 나도 그 친구를 절대로 잃고 싶지 않았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는 없었으나 그래도 최대한 서로의 곁에 있어주고 싶었다. 바로 그 의지 덕분에 우리는 계속해서 인연을 이어나갈 수 있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서로의 노력이었다. 그런 종류의 것들은 혼자만의 노력으로는 회복할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사실 이 세상에 혼자만의 노력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관계도 경력도 행복도 누군가가 존재해 주어야만 하고 서로 마음이 맞아야 하는 일이었다. 세상을 혼자 살아갈 수 없으므로, 나는 변하는 것들을 존중하기로 했다. 그래야만 내 주변의 세계를 사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