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서 가장 뻔한 비빔면

프롤로그

by 삥구

평범한 주말 오후, 또네 집에서 저녁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다가 문득 서로 눈이 마주쳤다. 어쩌다 이 사람이 내 옆에서 러고 있는 걸까 하는 엉뚱한 생각이 들어 대뜸 왜 내 옆에서 밥을 먹고 있느냐 물었더니 또도 난스레 되물었다. 그러는 당신은 왜 우리집에 와 있느냐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남이었던 사람. 심지어 존재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던 사람이 지금 나와 함께 추레한 모습으로 커플 잠옷을 입고 원룸에서 밥을 먹고 있다는 사실은 몇 번을 곱씹어봐도 놀랍고 신기한 일이다. 언젠가 또에게 운명을 믿느냐 물었더니, 또는 운명을 믿지 않는다고 했다. 우리 둘은 운명이 아니라 기막힌 우연에 의해 만난 것이라고, 그러니까 우리가 만난 건 정말 행운인 것이라 말. 듣고 보니 운명보단 우연이 더 극적인 것 같아 나도 우연을 믿기로 했다. 우린 그렇게 수십 겹의 우연이 겹쳐져 만나게 된 기적과도 같은 인연인 것이겠지.


뿌또와의 주말은 특별하 않다. 를테면 이런 식이다. 침에 일어나 밥을 먹은 뒤,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 그러다 비몽사몽 잠에서 깨어나면 그제야 주말이 아까워 애써 의미 있어보이는 소일거리(카페에 가서 각자 작업을 한다든가, 공원에서 산책을 한다든가, 하다못해 게임을 진득하게 한다든가)를 찾기 시작한다. 그 후 집에 돌아와 개운하게 씻고 나면 개인 시간을 좀 보내다가 명상을 틀어 놓고 은근슬쩍 잠에 든다.


그 평범한 하루가 나에게 큰 위로와 안정감을 준다. 평일 내내 불안과 긴장으로 잔뜩 몸이 굳어 있었던 나를 부드럽게 이완시킨다. 함께 있는 그 평범한 시간 동안 우리는 서로의 얼굴을 골똘히 들여다보기도 하고, 시답잖은 생각을 나누기도 하고, 때때로 골방철학가가 되어 세계에 대한 의견을 주고받기도 한다. 그게 평범한 주말을 보내는 와중에 문득, 를 들어 저녁밥을 먹으며 유튜브를 보다가 그런 생각이 들곤 하는 것이다. '쩌다 사람이 내 옆에 이러고 있는 거지?'


그날 뿌또가 해준 저녁밥은 비빔면이었다. 거기에 비마트에서 사 온 차돌박이와 냉장고에 있었던 갓김치도 함께였다. 공금이 몇 만 원밖에 남지 않은 상황에서 가장 사치스럽게 먹을 수 있는 저녁 메뉴였달까. 달짝지근한 비비면에 기름진 차돌박이, 그리고 그 위에 얹어 먹는 알싸한 갓김치까지. 씹으면 아삭, 하고 갓김치의 김칫국물이 배어 나오며 고기와 함께 버무려진다. 뻔한 조합이지만 뻔해서 좋다. 만족감의 가치로 따지자면 호화로운 호텔 뷔페 부럽지 않다. 하지만 '뷔페가 더 좋을지도?'라고 말하며 뿌또는 씩 웃겠지. 그럼 나도 '그럴지도?'라고 말하며 뿌또와 함께 비빔면을 먹는 것이다. 불길에 데일 듯 뜨거운 연애는 아니지만 뜻하고 안온하다. 은근한 불에 서서히 구워지는 빵처럼 우리는 함께 천천히 부풀 서로의 향기를 맡는다. 한 연애. 그게 바로 나와 또의 연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