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원을 넘어서, 아직도 좋아해

만약 다중우주가 있다면

by 삥구

시간을 컨트롤 제트 하고 싶은 순간이 있다.

이를테면 바나나 껍질 대신 바나나를 쓰레기통에 버렸을 때, 실수로 전남친의 sns에 좋아요를 눌렀을 때, 회사 단톡방에 개인 메시지를 보냈을 때 등등. 순간 심장이 덜컥 내려앉고 아주 잠깐만이라도 좋으니 신의 손을 빌려 컨트롤 제트 한방으로 딸깍 모든 것을 원상복귀 시키고 싶지만 세상은 그리 허술하지 않고 신은 손을 빌려줄 생각이 전혀 없다. 그나마 세상의 모든 인간들이 조금씩이나마 바보라서 다행이다. 나만 바보가 아닐 거라는 막연한 진실이 아니었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히키코모리가 되었을까.


원체 걱정이 많은 나는 내가 저지른 선택들을 종종 후회하곤 했다. 특히 회사에서 내가 작업한 작업물을 제출했을 때마다 매번 그랬다. 업무의 특성상 상사의 호불호에 따라 작업물의 통과 여부가 결정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에, 늘 작업물을 제출한 뒤에 불안감에 휩싸였다. 내가 작업한 것이 과연 정답일까. 혹시 내가 상사의 의중을 오해해서 그 의도와는 다른 방향으로 수정을 한 것이 아닐까. 그런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다 보면 어느새 내 작업물은 최악이 되었고 난 무능한 직원이 되었다. 내일이 되면 모두들 날 비웃겠지.


뿌또와 사귄 지 얼마 안 되었을 무렵, 나는 뿌또와 함께 저녁을 먹으며 그 절망적인 상황을 모두 토로했다. 내 선택으로 인해 내가 들을지도 모를 말들에 대해, 내가 받을지도 모를 시선들에 대해 이야기했다. 뿌또는 내 말을 다 듣고 난 뒤 그럼 내가 상상하는 가장 최악의 미래는 어떨 것 같으냐고 물었다. 갑자기 최악이 뭐냐니. 나는 곰곰이 생각한 뒤에 답했다. "부끄러움을 못 이기고 퇴사하는 거지." 그런데 그렇게 말하고 나니 신기하게도 마음이 편해졌다. 최악의 경우는 퇴사였다. 그래도 죽지는 않는다. 그렇게 결말을 내고 나니 오히려 미래를 마주할 용기가 생긴 것이다.


대부분의 경우, 불안함은 미래의 결과를 모른다는 무지로부터 온다. 내가 했던 선택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하다. 그래서 뿌또는 최악을 상상하라고 했다. 최악의 결과를 상정하고 나면 적어도 그것과 같거나 더 나은 미래를 맞이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만에 하나라도 그 최악의 결과가 나오면 어떡하지?" 끝까지 걱정을 놓지 못한 내가 그렇게 묻자 뿌또는 대답했다. "그러면 수 없이 많은 경우의 수들 중에서 정말 드문 확률에 당첨된 것이니까 로또를 사면 되지." 꽤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확률이라는 게 뭘까. 그냥 운인 것일까. 문득 생각의 흐름이 제멋대로 뻗쳐나가면서 뜬금없게도 다중우주가 떠올랐다. 세상에는 여러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재미있는 가설 말이다. 그중에서도 양자다중우주론(학계 용어는 아니다)에 따르면 우리가 선택하지 않은 수많은 경우의 수들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그대로 다른 우주에서 실현된다고 한다. 그러니까 내가 하지 않은 선택들이 또 다른 우주에서는 현실이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세상에 운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상 모든 경우의 수들이 실현된 것이나 다름없으니까. 내가 가위바위보에서 지고 이기고 비기는 모든 경우가 다 발생한다면 우주의 숫자가 늘어난다는 사실만 존재할 뿐 운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이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단순한 몽상에 불과하지만 그런 몽상 덕분에 삶이 조금 더 재미있어지는 건 사실이다.


그때 나는 다른 우주에서 다른 선택을 했을 나를 상상해 봤다. 내 작업물에서 그 문장을 추가하기로 선택한 나. 또는 그 단어를 없애기로 선택한 나. 그런 '나'들은 과연 마음이 편안할까. 그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지금의 나와 같은 성격을 지니고 있다면 후회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나'라는 캐릭터는 어느 삶의 분기점 이후부터는 걱정과 후회라는 감정이 선택의 필수 조건이 되어버렸으니까. 그러니까 이 후회의 감정은 틀린 선택의 증거가 아니라 선택이라는 행위 자체에 따라붙는 감정인 것이다. 후회하는 우주를 피할 수 없다면 후회하고 있는 지금의 이 우주도 최악의 우주는 아니다.


뿌또에게 이 이야기를 두서없이 말하자, 뿌또는 자신도 사실 다중우주론을 좋아한다고 고백했다. 심지어는 더 나아가 홀로그램 우주론을 설명하면서 이 세상이 컴퓨터 속 게임 같은 가상의 세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했다. 그럼 다중우주는 세이브파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우리들은 npc일 수도 있고, 이미 이 우주라는 게임은 결말이 정해져 있는 것일 수도 있다. 나는 놀랐다. 그 가설에 놀란 게 아니라 나처럼 이런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을 현실에서 만나서, 그리고 그게 내 남자친구라서 놀랐다. 그때 처음으로 나만큼이나 뿌또가 몽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책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으면서도 이런 류의 대화를 인터넷 밖의 사람과 진지하게 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그 사실이 반가웠다. 그런데 일면 실망스럽기도 했다. 어른이 되면서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그리 특별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일은 여전히 썩 달갑지 않다.


"그럼 모든 사람이 게임 npc 같은 거라면 그건 완전 디스토피아 아니야? 모두들 프로그래밍된 대로 움직일 뿐이잖아." 내가 그렇게 말하니 뿌또는 또 그렇지만은 않다고 말했다. "그래도 귀엽지 않아? 다들 점심 때면 배고프다고 밥도 먹고 회사로 우르르 몰려 갔다가 저녁이면 분위기 좋은 식당으로 모이면서 어떻게든지 재미나게 살려고 하는 모습이 말이야" 살면서 한 번도 낯선 사람 집단이 귀엽다고 생각해 본 적 없는 나로서는 꽤나 당황스러운 대답이었다. 그런 게 귀여울 수가 있는 거였나.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을 하는 뿌또가 좋았다. 그리고 세상이 어찌 되었든 간에 뿌또는 늘 그렇게 사람들을 귀여워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뿌또와의 결혼을 생각하고 있는 지금도, 뿌또가 내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생각들을 계속해주었으면 한다. 아, 지금 이 순간 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게 나 혼자가 아닐 수도 있다. 다른 차원의 우주에 속한 수많은 내가 지금 이 순간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래서 그 생각의 구름이 온 우주에서 몰려와 한 점에서 만나고 있다면 그것도 그것대로 꽤 감동적인 장면이지 않을까. 신이 있다면 이럴 때야말로 정말 박수를 쳐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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