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그릇이 간장종지만하다는 남친

by 삥구

때는 퇴근 후 저녁. 여느 때처럼 뿌또와 전화통화를 하고 있는데 뿌또가 갑자기 차를 사고 싶다는 소리를 했다. 뿌또의 차를 사고 싶다는 충동은 여태껏 주기적으로 찾아왔던 바, 이번에도 단순한 충동이겠거니 생각하고 넘기려 했던 나와는 달리 뿌또는 꽤나 진지했다. "이제 뚜벅이 생활은 청산해야 하지 않겠어?"


그러고보면 나와 뿌또는 차도 없이 참 많은 곳을 돌아다녔더랬다. 인천, 강릉, 여수, 경주, 부산까지... 온갖 대중교통을 섭렵하며 그것도 당일치기로 여행을 갔다올 정도였으니 말 다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차를 산다니, 그건 사실 필요 없는 사치품이지 않을까?


그 무렵, 뿌또는 국가지원사업중 하나인 행복주택에 당첨되어, 언덕 위 자취방에서의 생활을 청산하고 일단 본가에 머물고 있었으나, 예상과는 달리 예비번호가 빨리 줄어들지 않는 탓에 생각보다 긴 본가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그 생활이 여간 답답한 게 아닌 모양이었다. 얼른 떠나고 싶었던 심정이 그런 소비 욕구로 들어나는 것이 아닐까 싶었다.


물론 나도 뿌또가 전부터 차를 살까? 하고 가볍게 물어오면, "있으면 좋지!" 라며 은근히 바래오기도 했었다. 하지만 막상 뿌또가 정말로 차를 사려고 중고차 사이트를 이리저리 뒤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괜한 걱정부터 먼저 들기 시작했다. 차타고 출퇴근할 것도 아니고, 그냥 여행가는 용도의 탈 것일 뿐인데 저거 사서 고정비만 더 나가는 건 아닌가... 그리고 더 나아가, 차를 운전함으로써 괜히 갑작스러운 사고 요인 한 가지를 더 만드는 꼴이 되는 건 아닌가...


운전 잘 할 수 있겠느냐는 내 물음에 뿌또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괜찮아! 난 '유로트럭(=트럭운전게임)'을 했으니까! (찡긋)"


정말 엄청나게 위안이 되는 말이 아닐 수가 없지 아니하지 않다. 그리더니 계속 한문철의 블랙박스를 보면서 사고 대처 시뮬레이션을 돌리겠다는 뿌또. 그 모습을 말 없이 지켜보는 나.

심지어 뿌또가 마음에 들어한 차는 민트색 스파크였다. 그건아반데보다 더 비싼 차였다! 아니 경차가 일반세단보다 더 비싼 게 말이 되는가? 아마 연식 때문이었겠지만 그래도 그렇지, 가격면에서도 안정성면에서도 떨어진다는데...


이미 맘속으로 민트색 스파크를 점찍어두고 신난 강아지마냥 내게 이거 사도 되겠느냐고 물어봤던 뿌또는 내 애매모호한 반응에 결국 풀이 죽고 말았다. 물론 뿌또의 말에 따르면, 경차는 유지비도 싼데다 주차도 쉽게 할 수 있고, 정부에서 지원하는 여러 혜택도 받을 수 있다. 그리고 스파크는 경차중에서 제일 튼튼한 차라고도 했다. (라며 한문철의 블랙박스 스파크 사고영상을 보여주는 뿌또...) 하지만 내가 봤을 땐 뿌또는 그냥 그 민트색 스파크가 마음에 들었던 거다. 자동차 한정, 자기같이 그릇이 종지그릇 크기밖에 안 되는 사람은 이 독특하고 쪼그마한 경차가 딱 어울린다나 뭐라나.


나는 일단은 지금 당장 그 민트색 스파크가 어디로 사라지는 건 아니니 주말까지만 좀 더 고민해보자고 했다. 내 말에 수긍하고는 좀 더 참아보기로 한 뿌또. 결국 그 주 내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더니 심지어는 내 의견을 십분 반영해 중형차 쪽으로 조금 더 마음이 기울었더랬다. 하지만...


주말이 오기도 전에 뿌또가 점찍어두었던 그 민트색 스파크가 팔려버렸다!

아니 그 민트색을 뿌또 말고 또 사려는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하고 놀랐던 것도 잠시. 그 소식을 전하던 뿌또는 꼭 이별을 당한 것마냥 이미 상실감에 빠져 잔뜩 울적해하고 있었다.


"내 스파크가~!!" 라면서 어찌나 슬퍼하던지. 일단 좀 더 기다려보자고 말했던 나로서는 미안하기도 하고 안쓰러웠달까. 그래서 결국 뿌또가 다른 민트색 스파크를 찾았다며 너무 기뻐하는 모습을 보고 얼른 그걸 사라고 말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차도 감성으로 사는 거다. 이미 뿌또의 감성에는 그 민트색 '블랙보타이(뿌또가 엄청 강조함)'가 달린 '더 뉴 스파크 마이핏 에디션 원더랜드 블루(라고 뿌또가 엄청엄청 강조함)'이 딱 맞았던 것이다.


지금은 차를 받자마자 아버지한테 운전 연수도 잘 받았고, 혼자 고속도로며 서울이며 잘 다니고 있다.

나도 뿌또의 자동차를 타고 몇 번 드라이브를 갔다오다보니 정이 들어버려서 '뿌카'라는 이름까지 지어주었다. 확실히 다른 차들과 다르게 톡 튀는 색깔을 해서인지 눈에도 잘 띄고 유니크하다. 하나 고백하자면 나도 사실 민트색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 롤리팝폰 쓸 때 나도 민트색으로 썼었다.


딱 한가지 단점이라면 뿌또가 그 스파크 때문에 도끼병에 걸리고 말았다는 것? 사람들이 뿌카를 조금이라도 쳐다보면 예뻐서 쳐다보나? 라고 말한다. 게다가 최근에도 사람들이 뭔가를 기다리면서 서 있길래 궁금해하니까, "혹시 뿌카가 지나가길 기다리는 건가? 허허..." 라고 말할 지경이니...


아무래도 뿌또의 도끼병은 꽤 오랫동안 지속될 예정인 듯 싶다.






작가의 이전글차원을 넘어서, 아직도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