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보니까 살아지더라

(1) 사실 괜찮은 척합니다.

by 서동휘

사실 괜찮은 척합니다. 괜찮지 않은데, 괜히 물어본 사람을 힘들게 할지 봐

다치게 할지 봐. 괜찮은 척합니다. 얼굴은 심각함이 보입니다. 목소리에도

힘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괜찮은 척 연기를 합니다. 당신은 어느새 명품 연기를 합니다.

한 번 두 번 나를 아는 사람들이 묻습니다. “괜찮아?”

사실 마음속에서 하고 싶던 말은 “괜찮지 않아, 마음이 힘들어”.


우리는 때론 참음이 머릿속에 인식되었습니다. ‘참아라. 참는 자가 이긴다. “

라든가, ”남자는 세 번만 울어야 한다. “등이 그렇습니다.

당신은 다정함을 위해, 상대를 위해 괜찮다고 합니다.


자신에게 괜찮아질 수는 없나요? 괜찮지 않았잖아요. 사실 괜찮냐고 물어본 사람도,

알고 있을 겁니다. 당신이 괜찮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괜찮지 않다.'라는 표현이 당신에게 얼마나 용기인 그것을 솔직함이란 용기를

마음에 담는다는 게, 마음처럼 쉽지 않음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이렇게 외쳐봅니다. ‘괜찮아요. 그래도 괜찮아요. 당신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입니다.‘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조금 더 자유로워집니다. 마치 오랫동안 참았던 숨을 마침내 내쉬는 것처럼. 그것은 자신을 향한 작은 용서이자, 진실한 모습으로 한 걸음 나아가는 시작입니다.

때로는 눈물이 필요합니다. 눈물은 약함의 표시가 아닌, 인간다움의 증거입니다. 슬픔도, 분노도, 좌절도 모두 우리를 이루는 감정입니다. 이런 감정들을 인정하고 마주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강함일지도 모릅니다

.

"괜찮아요?"라는 질문 앞에서 우리는 종종 망설입니다. 상대방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마음, 스스로가 나약해 보일까 하는 두려움, 관계가 불편해질까, 하는 염려. 하지만 진심 어린 위로가 필요한 순간에도 우리는 "괜찮아요"라는 말 뒤에 숨습니다.


실은 누구나 알고 있습니다. 그 말이 거짓임을 떨리는 목소리, 흐려지는 눈빛, 굳어진 어깨를 통해 우리의 진실은 이미 드러나고 있다는 것을. 그럼에도 우리는 서로의 '괜찮아요'를 받아들입니다. 그것이 서로를 배려하는 우리만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생각해 봅니다. 어쩌면 '괜찮지 않다'라고 말하는 것이 서로에 대한 더 큰 신뢰와 존중일 수 있습니다. 나의 약한 모습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사람, 그런 관계야말로 진정한 관계가 아닐까요?


우리는 완벽하지 않아도 됩니다. 언제나 강할 필요도 없습니다. 때로는 무너져도, 주저앉아도, 울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모습이니까요. 완벽하지 않은 모습이야말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일 테니까요.


괜찮지 않다고 말하는 것, 그것은 자신을 향한 작은 용기이자 선물입니다. 그 한마디를 통해 우리는 더 이상 무거운 가면을 쓰지 않아도 됩니다. 진실한 모습으로 서로를 마주할 수 있습니다.


당신이 지금 괜찮지 않다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그 마음을 온전히 인정하고 받아들이세요. 때로는 슬퍼해도 좋습니다. 분노해도 좋습니다. 그것이 당신의 감정이니까요. 그리고 언젠가 그 감정들이 지나가고, 다시 괜찮아질 거인 것도 믿으세요

.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존재입니다. 그래서 더욱 아름답고, 그래서 더욱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의 모든 모습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세요. 그리고 기억하세요. 당신은 그렇게 해도 되는 사람인 것을 괜찮지 않아도, 당신은 여전히 소중한 사람일 것을.


오늘도 어딘가에서 '괜찮아요'라고 말하는 누군가에게 이 글이 작은 위로가 되기를. 그리고 언젠가 우리가 모두 진실한 마음을 나눌 수 있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