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재가 아냐... 그냥 매일 일찍 더 일찍 나와서 5바퀴를 더 뛰고, 제일 늦게 연습장을 나가."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꿈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상상이었다. 실제로는 그런 멋진 말 한마디 할 용기도 없는 게 현실이다.
누군가는 말한다. 지금 잠을 자면 꿈을 꾸지만, 지금 잠을 자지 않으면 꿈을 이룬다고. 나는 개소리라고 생각한다. 잠을 충분히 자지 않으면, 난 오늘도 연습장에 늦었을 것이다. 실제로 어제 새벽 3시까지 개인훈련을 하고 나서 4시간도 못 잔 탓에, 오늘 아침 알람을 세 번이나 끄고 말았다.
"23번 연습생?"
코치의 목소리가 트랙에 울렸다. 이름으로 불리는 일은 없다. 아니, 정확히는 이름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없다. 하지만 뛰는 건 행복하다. 사실 그나마 동네에서 좀 뛴다고 생각해서 지원한 게 우연히 합격했다.
23번, 조던의 번호다. 농구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조던의 번호여서 그냥 좋아한다. 사실 23번을 내가 붙인 게 아니다. 50여 명의 선수 연습생 중 남는 번호가 그거라서, 그걸 사용한 것뿐이다. 누군가 중간에 그만둔 자리였을 것이다. 그 누군가도 나처럼 꿈을 접고 떠났을까.
"새끼 왜 느려졌어?"
코치의 날카로운 질문이 심장을 찔렀다.
"네? 전보다 느려졌다고요?"
뭘까. 마음은 더 빨리 뛰고 싶고, 실제로도 연습량은 더 많은데, 이상할 정도로 기록은 느려졌다. 어제까지만 해도 400미터를 55초대로 뛸 수 있었는데, 오늘은 57초가 나왔다. 단 2초 차이지만, 육상에서 2초는 세상과 나를 가르는 거리다.
프로 선수도 아닌데, 슬럼프란 게 온 걸까. 나는 꿈조차 꾸면 안 되는 걸까. 이 기록으로는 도저히 선수를 꿈꿀 수 없을 듯하다.
꿈은 깨져도 조각이 크다는 말, 그건 큰 조각을 맛본 사람들이나 하는 말일 것이다. 나 같은 사람에게는 꿈이란 처음부터 작은 파편 같은 것이었을지도 모른다. 손에 쥐려고 하면 부서져서 사라지는.
존재의 한심함이 느껴졌다. 나라는 존재는 수영을 하다가 넘어온 사람이다. 소위 전과자다. 수영장 냄새가 싫어서 떠난 게 아니다. 물속에서는 더 이상 꿈을 찾을 수 없어서 떠난 것이다. 물속에서 숨을 참는 것보다 육지에서 숨 쉬며 뛰는 게 더 자유로울 거라 생각했다.
여기 학교의 이상한 전통인지, 아니면 사람들이 그냥 나를 싫어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사람들은 나를 "어이, 넘어온 놈"이라고 불렀다. 마음 같아서는 욕을 하고 싶지만, 웬걸, 난 수영씬에서는 제법 알려진 사람이라 욕 한 마디 했다가는 "지가 넘어와 놓고 욕질이네"라는 말을 듣기 뻔하다.
"삶의 고개를 넘어야, 고개 들어 더 높은 곳을 볼 수 있어."
수영 시절 멘토가 해준 말이다. 그때는 진부한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그 말이 절실하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 멘토가 이미 세상에 없다 보니 누구에게 의지해야 할까 하는 생각만 든다. 간암으로 세상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해준 말이었다. "너는 물속보다 땅 위에서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거야."
트랙을 한 바퀴 돌 때마다 그 말이 귓속에서 맴돈다. 정말 그럴까. 나는 정말 이곳에서 더 빨리 달릴 수 있을까. 아니면 그냥 위로의 말이었을까.
연습이 끝나고 다른 아이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나는 트랙에서 혼자 뛰었다. 발끝이 아프고 다리가 후들거렸지만, 멈출 수 없었다. 23번이라는 번호가 가슴에서 출렁거렸다. 조던도 처음부터 조던이었을까. 그도 누군가의 남은 자리에서 시작했을까.
달빛 아래 트랙은 고요했다. 내 발소리만이 밤을 깨웠다. 한 바퀴, 두 바퀴, 세 바퀴. 기록은 재지 않았다. 시간도 보지 않았다. 그냥 뛰었다. 꿈을 향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위해서.
어쩌면 이게 시작일지도 모른다. 진짜 시작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