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속도 모르겠고, 내 속도는 알겠고. 내 속도는 점점 느려지고 있다. 이상할 정도로, 연습양은 더 늘어남에도 나는 느려지고 있었다.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트랙을 달렸다. 점심시간에도, 저녁에도 뛰었다. 주말엔 더 길게 뛰었다. 그런데 스톱워치가 가리키는 숫자는 계속 늘어만 갔다. 기록은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코치님께 솔직히 말씀드렸다. "연습양이 더 늘었음에도, 기록이 안 나옵니다. 저는 이젠 지쳤어요."
목소리가 떨렸다. 3년째 이 길을 걷고 있는데, 처음으로 포기하고 싶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 그런데 그 말은 차마 내뱉을 수 없었다.
그러자 코치님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조금 느리다고 안 하면, 더 못할 걸? 괜찮겠어?"
괜찮을까? 괜찮진 않을 듯하다. 물론 몸은 편하겠지. 하루 종일 침대에 누워있고, 친구들과 놀고, 늦잠도 자고. 하지만 편함이 빚는 게 평안이 아니라, 불안함 가운데서도 불편함을 택하는 게, 최후의 평안을 만들더라.
그날 밤, 잠이 오지 않았다. 천장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왜 이렇게 된 걸까? 뭐가 잘못된 걸까?
'하 씨... 술 먹고 싶다.' 솔직한 심경으론 아무것도 안 잡히고, 잡히지 않는 기록이 마치 하늘에 뜬 무지개 같았다.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영원히 닿을 수 없는.
'기분 무지 개 같네'
나는 수영이나 육상을 하기 전에, 술을 꽤 먹던 아이였다. 친구들과 편의점에서 맥주 사서 한강에서 마시고, 집에 들어가 혼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됐다. 그러나 이 길을 가기로 맹세한 후, 단 한 모금도 입에 대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마시고 싶었다. 모든 걸 잊고 싶었다. 기록도, 코치님의 실망스러운 눈빛도, 부모님의 걱정도.
술을 사러 가는 길, 지갑을 확인해 봤다. 아 순간 정신이 아찔해졌다. '카드는 집에 두고 오고, 빈 지갑을 가지고 다녀?'
하... 다행이다. 참 다행이다. 결국 난 술을 먹지 않게 됐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문득 깨달았다. 어쩌면 내가 너무 조급했던 것 같다. 매일 기록에만 매달려서 달리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나 보다.
다음 날부터 연습량을 줄이고, 그냥 기록이 줄더라도 뛰어봤다. 완벽한 폼보다는 편안한 마음으로, 스톱워치보다는 바람소리에 집중하며.
일주일 후, 코치님이 또 말했다. "기록이 줄 던, 줄지 않던, 너는 좀 웃어야겠어. 지금 당장 네 얼굴을 봐"
거울을 보니 정말 심각한 얼굴이었다. 언제부터인지 웃는 법을 잊어버렸나 보다. 그제야 알았다. 기록도 중요하지만, 달리는 동안 행복해야 한다는 걸. 그래야 진짜 빨라질 수 있다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