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삐뚜로 빼뚜로 Aug 31. 2021

처연하고도 비장한, 그녀의 목소리

영화 <휴먼 보이스>(2020) 리뷰

 한 여자(틸다 스윈튼)가 자신의 아파트에서 떠나간 연인을 기다린다. 집 한켠에 챙겨둔 그의 짐 가방과 주인이 자신을 떠난 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종종거리는 그의 강아지 대시(Dash)를 바라보면서. 버림받은 두 생명체(여자와 강아지)는 언제 올지 모르는, 아니 오긴 하는 것인지도 알 수 없는 그 남자를 기다리느라 3일을 꼬박 집에만 머문다. 집을 비운 것은 도끼를 사기 위해 철물점에 들린 잠깐뿐이다. 

한 남자를 기다리는 두 생명체와 그의 짐 가방


 페드로 알모도바르의 2020년 단편작 <휴먼 보이스(The Human Voice)>는 연인으로부터 이별을 통보받은 한 여자의 처절한 목소리를 들려준다. 우리는 영화 속에서 그녀 외에 다른 목소리는 들을 수 없다. 돌아오는 대답 없이 홀로 메아리치는 그녀의 독백은, 지금 그녀가 겪고 있는 이 과정이 그녀 혼자만의 싸움임을 말해준다. 자신이 만든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오롯이 혼자 그 고통을 감내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영화는 스튜디오 내부에 세워진 반투명막 뒤에서 걸어 나오는 주인공을 보여주며 시작한다. 풍성한 빨간 드레스를 입고 있는 그녀는 마치 활활 타오르는 불꽃과 같다. 불타오르는 그녀의 욕망은 한 남자를 향한 사랑이자 집착일 것이다. 불꽃 같았던 그녀는, 이번엔 발끝까지 새까만색으로 뒤덮여 등장한다. 그녀는 다 타버리고 검은 재가 된 것일까? 검정 드레스를 입은 그녀의 얼굴은 더욱 창백하게 느껴진다. 

불꽃처럼 보이는 빨간 드레스의 그녀와 다 타버린듯한 검정 드레스의 그녀


 타이틀 시퀀스가 이어진 뒤, 이번에는 그녀가 새파란 정장을 입은 채 등장한다. 정장의 색깔만큼이나 차가워보이는 그녀는 철물점에서 도끼를 구매한다. 검정 선글라스를 착용한 그녀의 얼굴은 표정을 읽어내기가 쉽지 않다. 철물점에서 집으로 돌아온 뒤 다시 빨강으로 돌아온 그녀는, 남자가 떠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한 채 통제할 수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다. 그가 아끼는 정장을 꺼내 도끼로 내리치며 분노했다가, 차분하게 그와 함께 보았던 DVD를 정리하기도 하고, 또 불현듯 그의 물건을 꺼내와 집어던지기도 한다. 급기야 그녀는 자신을 화려하게 치장한 뒤 알약 13알을 입에 털어넣는다. 그에게 발견될 아름다운 시체가 되기 위하여.

파란 정장을 입은 철물점의 그녀  /  자살시도를 위한 알약 13알  /  약을 먹은 뒤 남자의 정장 옆에 누운 빨강의 그녀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바람대로 시체가 되지 못하고, 요란스럽게 울려대는 전화벨 소리에 잠에서 깨어난다. 그녀가 애타게 기다리던 남자의 전화이다. 그녀는 아직 남자의 마음을 돌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그녀에게 그와의 통화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그녀는 이 마지막 기회를 헛되이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여러 전략을 구사해가며 그의 마음을 돌리기 위해 애쓴다. 처음에는 쿨한 척, 상처받지 않은 척, 아주 잘 지내는 척 연기해보기도 하고, 자신의 매력을 슬쩍 어필해보기도 하고(남들이 자신의 멜랑꼴리를 좋아라한다는 둥), 그마저도 먹히지 않으니 무너져내린 자신을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동정심을 자극해보기도 한다. 사실 나는 아주 잘 지내지 못하고 있으며, 3일간 밖에 나가지도, 누구를 만나지도, 무엇인가를 먹지도 않고, 당신 전화만 기다리며 말라 죽고 있었노라고.

에어팟을 낀 채 남자와 통화하는 그녀. 마치 독백을 하는 듯 보인다.


여자는 “그래도 우리가 한때 같은 꿈을 꾸었다고 말해줘”라고 애원하지만, 남자는 대답 대신 전화를 끊어버린다. 남자는 지난 4년간의 사랑을 한순간 거짓으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다. 마치 그녀가 남자와 함께 시간을 보냈던 이 아파트가 진짜가 아닌 세트장인 것처럼. 영화의 주요공간인 집은 스페인의 평범한 아파트처럼 보이지만 거대한 스튜디오에 지어진 세트장이다.(이것은 세트장 안팎을 자유롭게 오가는 여자와 카메라를 통해 드러난다) 결국, 이 공간은 그녀 스스로 만들어낸 감정의 감옥이다. 

그녀의 아파트가 세트임을 보여주는 부감샷  /  발코니 너머로는 스튜디오의 회색 벽만 보인다.


 그녀는 이제 이 감옥 안에서, 거짓이 되어버린 옛사랑에서 스스로 벗어나야만 한다. 전화를 끊어버린 남자의 이기심에 환멸을 느낀 그녀는 감정의 감옥인 자신의 아파트를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도끼로 남자의 수트를 내리치고, 남자의 물건을 집어던져 깨트리고, 함께 지냈던 아파트를 불태우는 행위는 결국 그와의 관계를, 그와의 기억을, 그가 했던 사랑의 말들을 지우려는 노력이다. 자신이 만든 감정의 감옥 속에서 하나의 불꽃으로 타오르던 그녀는, 자기 내부에 존재하던 불꽃을 자신으로부터 분리시켜 감옥을 태워버리고 밖으로 탈출한다. 그와 관련된 모든 것을 소멸시킨 여자는 남자의 강아지 대시와 함께 세상 밖으로 나간다. 대시에게 이제 너도 그 남자를 잊으라고 충고하면서.

남자에게 이별을 고하고 자신의 감옥을 불태우는 그녀. 검정색 가죽 자켓을 입고 있다.


 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도대체 내가 왜 이 히스테릭한 여자의 원맨쇼를 계속 지켜봐야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앞서 말했듯, 영화에서 남자의 목소리는 들을 수 없기 때문에 말이 통화지, 거의 독백처럼 보인다) 급기야는 이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그리고 지난 4년간 이 아파트에서 그녀와 사랑을 속삭였다는 '그 남자'가 진짜로 존재하기는 하는지 의심하기까지에 이른다. 하지만 그 남자가 실재하는지, 왜 그녀를 떠났는 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 영화가 두 사람의 러브 스토리나 슬픈 이별 장면을 보여주려는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다. 


 <휴먼 보이스>는 장 콕토의 희곡을 자유롭게 각색한 작품이다. <휴먼 보이스>를 연출한 페드로 알모도바르 감독은 콕토의 원작과 <휴먼 보이스>와의 가장 큰 차별점을 주인공 여성의 능동성이라 말한다.(그는 정확히 도덕적 자율성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다) 두 작품 모두 갑작스런 이별을 받아들일 수 없는 여성이 겪는 온갖 종류의 감정들(무력감에서 절망과 통제력 상실에 이르기까지)에 관해 세심하게 포착하고 있다. 그러나 ‘콕토의 그녀’는 끝끝내 자멸하는 반면, ‘알모도바르의 그녀’는 감정의 감옥을 불태우고 세상 밖으로 탈출한다. 즉, 알모도바르의 <휴먼 보이스>는 자존심과 합리성을 잃게 만드는 슬픔의 아리아에도 굴복하지 않으려는, 그리고 끝끝내 스스로를 지켜내려는 한 인간의 처연하지만 비장한 목소리에 관한 영화인 것이다. 결국 이 목소리는 우리 모두의 목소리일 것이다.




자기 자신만 잃지 않는다면 그 어떤 삶이라도 영위할 수 있다.
모든 것을 다 잃어도 좋다.
나 자신으로 머물러 있을 수만 있다면.

  

                       괴테(J. W. v. Goethe)의『서동시집 West-ostlicher Divan』중에서






작가의 이전글 니더훈리 마이 러브 여름날 우리 너의 결혼식이라는 영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