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바다에는 아직도 파도가 친다
처음엔 쉽게 여겼죠
금세 또 지나갈 거라고
봄이 오고
하늘 빛나고
꽃이 피고
바람 살랑이면은
우린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이적, "당연한 것들 中"
당연히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던 그 어떤 것도 아직 돌아오지 않았는데,
모든 것들이 돌아와도 시원찮을 이 시기에,
남편이 베트남 주재원 발령을 받아 베트남으로 떠났다.
예전부터 베트남 출장은 워낙 많이 다녔고 언젠가 주재원으로 발령이 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들을 때마다 남편과 종종 다투었었다. 나는 가기 싫다고, 회사를 옮기라고, 발령받아도 못 간다고 하라고. 하지만 경기 불황에 이직이 쉽지도 않고 그동안 이 회사에서 쌓았던 커리어와 신임을 섣불리 버리기도 어려운 상황이라 남편은 남편대로, 나는 나대로 의견이 좁혀지지 않았었다. 결국 남편이 회사를 옮겨보기도 하고(우여곡절 끝에 2주 만에 다시 원래 회사로 복귀했다) 다른 방법도 찾아보려고 했지만 뚜렷한 재능 없는 평범한 월급쟁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다. 그저 가라면 가는 것뿐.
외국에 사는 것에 두려움은 없지만 그렇다고 별로 반갑지도 않았다. 벌레 많은 것도 싫고, 미세먼지도 싫고(베트남 하노이는 미세먼지 수치가 높기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나라다), 더운 것도 싫고 그냥 다 싫었다. 게다가 남편의 경우에는 정해진 기간 없이 가는 주재원 발령이라 일단 베트남으로 가면 그 회사를 퇴사하기 전까지는 그곳에서 지내야 되니 언제 돌아오게 될지 기약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내 뜻대로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 제일 큰 스트레스였다. 아이가 어느 정도 컸으니 이제 나도 미래에 대해 다시 한번 진지하게 고민하고 나름대로 준비하던 게 있었다. 그런데 시작도 해 보기 전에 벽에 부딪히게 되면서 도대체 뭔 놈의 인생이 이렇게도 내 맘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는 건지 너무 화가 나고 짜증이 나서 남편과 한동안 냉전을 치르기도 했다.
물론 가지 않을 수도 있다. 남편 혼자 보내 놓고 나는 아이랑 한국에 남아있을 수도 있다. 나도 내 인생이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는데 남편이 가야 한다고 나도 무조건 가야 한다는 법은 없지 않은가? 게다가 베트남에 가면 주 6일 근무를 하는 데다 회사와 주거지의 거리가 꽤 돼서 남편은 새벽에 나가고 밤늦게 들어오게 될 텐데 일주일에 하루를 같이 있자고 나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은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떨어져 살면서 조금씩 서로의 부재에 익숙해져 점점 데면데면해질 모습이 그려지자 깊은 한숨이 나왔다. 그리고 아직 아빠의 품이 그리운 아이에게서 아빠를 뺏을 수도 없었다. 또 뜻을 접어야 하는 건 나였다. 어딘가 억울했지만 다른 방법을 선택할 용기도 없었다.
그렇게 발령을 받고 한 달 정도 남은 기간 동안 가족들을 만나 인사를 하고, 각종 서류를 떼고, 병원에 다니고, 필요한 물건들을 사며 바쁘지도 않지만 한가하지도 않은 시간을 보냈다. 아이와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싶었지만 요새 같은 때 잘못 움직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기에, 그저 집에서 함께 있는 것으로나마 아쉬움을 달랬다. 점점 출국일은 다가왔고, 코로나 검사를 받고 음성 확인 영문 검사지를 수령하는 것을 마지막으로 남편은 베트남으로 떠났다.
남편 회사에서는 주재원으로 발령받고 1년이 지나야 가족들의 입국 지원을 해 준다고 했다. 아마 그전에 적응하지 못하고 퇴사를 하는 일을 방지하고 싶어서 그런 듯한데 좀 치사한 면이 없지 않지만 국제 이사비, 집세, 학비, 의료비 등 자비로 부담하기에는 여러모로 손실이 커서 회사가 지원을 해 주는 시점에 나는 아이와 함께 베트남으로 들어갈 예정이다. 올해 말이나 내년 초를 예상하고 있는데 그때까지 혼자 아이를 돌보며 한국에서의 생활을 정리해야 한다. 떠나게 될 그 날이 아직은 아득하지만 곧 다가올 것이기에 차근차근 준비해볼 생각이다. 생각하지도 못한 새로운 퀘스트가 나타났지만 늘 그래왔듯이 미션, 클리어를 위해.
결국엔 뜻대로 되지 않았다고 불평해왔지만
어찌 되었건 내가 선택한 길에서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선택을 한 것도 나고, 그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도 나이기에
지나온 길에 대한 후회와 책망은 접어두고
다시 다가올 파도를 잘 넘을 준비를 할 참이다.
커다란 파도를 넘고 나서 다시 잔잔해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또다시 몰아치는 무서운 파도를 만날지도 모르지만
파도에 부딪혀 떠내려 가지 않고
파도를 타면서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을 이제는 아는 나이니까.
나의 바다가 어디까지 나를 데리고 갈지 모르지만
나는 여전히 항해 중이다.
바다를 떠도는 유리병 속의 작은 편지처럼
틈틈이 남기는 항해일기를 만나게 된다면
조금, 반가워 해 주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