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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삐삐 Jun 04. 2022

엄마의 애인, 상을 당하다

선택한 식구 4

서량이 안달복달하면서 마루를 뱅뱅 돌았다. 다음 날 새벽, 새벽에 아기처럼 어쩔 줄 몰라 하던 서영의 전화가 걸려왔다. 서영은 아버지의 부고를 전했다.  서량은 서영에게 이런 일이 처음이라서 마음을 어떻게 추슬러야 할지 모를 거라며 걱정했다. 


그날 서량는 퇴근하고서는 삼촌들과 함께 장례식장에 갔다. 밤늦게 돌아온 서량의 얼굴에 걱정이 담겨있을까 했지만, 서량의 얼굴은 약간 상기되어 있었다. 서량은 문을 열고 들어오자마자 얘기를 시작했다. 장례식장에서 갔더니 서영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조카들에게 지금 사귀고 있는 분이니 형수라고 생각하라고 너스레를 떨어 거의 상견례 자리가 벌어졌다며 얼굴을 붉혔다. 

장례 두 번째 날, 이번엔 내가 피곤해하는 서량을 끌고 장례식장을 갔다. 서영은 내가 온 것을 보고 목소리가 살짝 들뜨셨다. 서량과 결혼하지 않았기에 서량의 동생들과 나를 포함해 온 가족이 찾아올 거라고 기대하지 않으셨던 것 같았다. 


그날 처음으로 서영에게 용돈을 받았다. 표현을 잘 하지 않으시는 분이심에도 내게 감동했다고 말씀하셨다. 왜 이건 감동이 되는 일이어야 하는 걸까. 서량과 재혼을 하셨다면 나에게는 거의 연고가 없는 새 친할아버지의 상을 당해 상복을 입고 서있었을테다. 그러나 결혼하지 않았기에 장례식장에 온 내 추모의 마음은 온전히 서영을 위하고 걱정하는 조문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내 기억에 단 하루의 기억만 남아있는 친할아버지를 위해서 3일 간 장례식장에 서있어야 했다. 선택하지 않은 가족은 실제로 어떤 관계를 맺고 있든 중요하고 배타적인 관계로 여기기에, 학교에서는 쉽게 공식 결석 처리를 해주었다. 


서량과 서영은 결혼을 하고 싶지 않지만, 함께 서로의 노후를 돌봐주는 관계로 살아가고자 했다. 친족 관계가 얽히지 않았지만, 어쩌면 그래서 의무감이 아닌 진정성 있는 마음으로 대하며 서로를 위하고 있으셨다. 그런 관계임에도 서량은 아저씨 아버지의 상을 위해 다음날 연차를 내지 못했고, 발인에 참석하지 못했다. 하루를 본 친할아버지에게 사흘을 온전히 쏟는 것은 공식적으로 모든 자리에서 허용되고, 8년을 넘게 만나온 두 분 사이에서 엄마가 발인을 보지 못한다는 것. 


그 자리에서 우리는 그러기에 친족이 아니더라도 더 소중한 관계가 있을 수 있고 그런 사람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법안이 필요하지 않냐며 생활동반자법안에 대해 얘기했다. 관계의 중요함을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세상을 꿈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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