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이건 아니건 5_사실 고기 먹고 싶은 거 참는거 아냐?에 대한 답
여기, 비건이 되고 난 후 마치 영화 <매트릭스>의 ‘빨간 약’을 먹은 것처럼 비건 이전의 세상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네 사람이 있습니다. 비건은 먹고 싶은 걸 참는 게 아닌지, 비건으로 먹고 입으려면 비용이 더 많이 드는 건 아닌지, 비건으로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기지 않는지, 동물을 사랑해야만 비건이 될 수 있는지 궁금하셨다면 여기를 주목해주세요!
비건이 되기 전 궁금해했던, 그리고 비건이 되니 종종 받게 된 4가지 질문에 대해 4인 4색의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삐삐: 비건이 되면 동물성 음식을 먹고 싶은 걸 참는 줄 알았는데, 막상 비건이 되고 나니 인식의 대전환이 일어나는 과정이더라고. 어떤 부분에서는 참는 것도 있지만, 참지 않는 부분도 있는 것 같아. 다들 “먹고 싶은 것 참는 거 아니야?”라는 말 들어보지 않았어?
채현: 나는 처음엔 참았어. 기존의 입맛이라는 게 정말 강력해서 탈육식이 쉽지 않더라고. 나에겐 단지 ‘무엇을 먹느냐’는 선택의 문제이지만 동물들에게는 삶과 죽음의 문제니까 탈육식을 단호하게 실천하지 못하는 것에 죄책감을 많이 느꼈지. 자꾸 기존 입맛대로 먹고 싶어서 1년 넘게 채식 인증 프로젝트에 참가했고, 자연스럽게 입맛이 변했어. 동물성 음식을 동물의 사체나 부산물로 바라보게 되면서 이제는 더 이상 참는 개념은 아니야.
삐삐, 인희: 큰 오해 중의 하나는 ‘사실은 고기 먹고 싶은데 참는 거 아니냐?’는 말. 인식적인 변화가 일어나면 냄새가 너무 역겨워지는 때가 있어. 종로를 걷다가 나도 모르게 고깃집 거리에 들어갔는데 냄새가 나자마자 도망치듯 지나쳤어. 고기 냄새가 역하고, 소름 끼치는 느낌이 들더라고.
진아: 나도 예전에 심할 땐 구역질 나고 토할 것 같았어. 그런데 요즘 스트레스 받을 때는 그냥 먹어. 내 나름의 선이 있어서 유제품과 떡볶이만. 그것도 웃기는 일이지. ‘육고기’, ‘생선’에는 명확한 선을 두고 그 선 밖에선 가끔 먹게 되는 것 같아.
삐삐: 명확하게 우유 맛이 나는 스프나 고기에 대한 입맛은 변했는데, 가루 형태로 첨가된 것들은 고기 맛이 나지 않잖아. 과자가 널려있는 걸 볼 때면 먹고 싶어서 참는 건 맞는 것 같아. 의식적으로 성분표 보고 내려놓는 과정이 필요해. 과자에 불필요한 우유, 소고기 등을 갈아 넣지 않았으면 좋겠어. M사 애플파이처럼 비건으로도 충분히 맛있게 할 수 있다고.
삐삐, 채현: 육식 콘텐츠가 너무 많다 보니 무뎌지는 것도 있는 것 같아. 육식 광고나 콘텐츠를 마주하는 걸 피할 수가 없는 경우가 많으니까. 먹방은 육식이 디폴트라서 그 음식이 한때 살아있던 생명이었다는 걸 인식하려고 노력해. 사실 우리 주변에 비건 지향인들이 많은 편이고, 정보 접근성이 좋은 편인데도 어려움이 있잖아. 접점이 없는 사람들은 탈육식을 하는 게 더 어려울 것 같아. 지금의 채식, 비거니즘이란 게 개인의 실천과 의지에 달린 현실이라 제도, 정책적인 변화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
인희: 논비건이었을 때 채소값이 더 비싸다보니 비건 지향을 하던 분한테 채식이 더 비싸지 않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 그런데 비건을 실천하고 오히려 식비가 진짜 많이 줄었어. 야채를 적절히 이용해서 요리하는 방법을 알고 가계부 상에서 ⅓ 이상 정도? 외식을 안 하기도 하지만.
채현: 한편으론 ‘논비건으로 외식해도 비건식 정도의 비용이 들지 않나?’ 의문도 들어. 보통 외식하면 고기나 파스타를 주로 먹는데 이런 경우 비건 식당에서 먹는 비용과 비슷하니까. 물론 비건 음식이 비싼 편이긴 하지만 유기농, 공정 무역 등 재료에 신경을 많이 써서 맥락 없이 비싼 음식은 아니라고 생각해.
삐삐: 문화 체험비를 안 아끼는 사람, 옷이나 화장품을 사는데 돈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듯 각자 삶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 지향하는 가치가 있잖아. 사실 비건이 된다는 건 인식적인 변화기 때문에 음식에 비용이 들어도 다른 비용이 현저히 주는 경험을 하게 돼. 환경을 생각하며 불필요한 소비, 플라스틱 사용을 줄이는 생활을 하니까. 식비 자체로만 생각했을 땐 늘어날 수 있지만 전반적인 생활비 자체가 주는 경험도 할 수 있어.
진아: 어느 정도 수입이 있고, 돈 관리에 대한 기준이 있다면 비건 실천으로 인해 무조건 식비 지출이 많아지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 그런데 ‘저임금 노동자, 취준생 등 생활비가 적은 사람들에게 비건 지향하라고 할 수 있는가?’하는 질문을 받기도 했어. 접근성이 떨어지니까 윤리성을 더 요구해야 하고 결국은 장벽이 높다고 하잖아.
인희: 한편으론 ‘야채에 비해 고기가 왜 그렇게 쌀까?’ 싶은 거지. 고기가 쌀 수 있는 게 대량으로� 많이 태어나게 하고, 좁은 데서 가둬서 키우고 한꺼번에 죽이는 게 너무 빠르다보니까 더 쌀 수 있다고 생각해
삐삐: 해외에 갔을 때 비건 치즈 가격이 한국 가격의 1/3인 거야. 한국에서는 수요 문제도 있는 것 같아. 채식 인구가 늘어나면 단가도 떨어지지 않을까 싶어.
채현: 비건, 논비건 이분법적으로 나누기보단 ‘케바케’라고 인식하면 좋을 것 같아. 채식하던 안 하던 외식이 잦으면 당연히 식비가 많이 들 테고, 직접 요리해 먹는 편이라면 식비가 줄어들 테니까.
삐삐: ‘비건의 건강’에 대해서 두 가지 이미지가 있는 것 같아. 신선하고 좋은 것들을 챙겨 먹는 건강한 이미지, 아니면 비건은 단백질을 적게 먹으니 건강하지 않다는 이미지까지.
채현: <더 게임 체인저스>라는 다큐를 꼭 추천하고 싶어. 나도 주변에서 단백질 걱정을 많이 듣다 보니까 두부, 콩을 챙겨먹으려고 했거든. 그렇다고 잘 챙겨 먹지도 못했지만 최근에 산 인바디 체중계에 단백질 수치가 나오는데 맨날 ‘우수’인 거야. 약간 속고 산 느낌이 들더라고. 식물성 음식에도 단백질이 충분해.
인희: 나는 단백질과 별개로 평균적인 여성에 비해서 근육이 좀 있는 편이었는데 최근 근육이 거의 최저치로 떨어진 거야. 그간 운동을 안 한 탓도 있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운동을 해도 근육이 붙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리는 체질로 변한 것 같아. 자기 체질을 아는 것도 중요해. 어떤 영양 성분에 더 비중을 두고 먹을지 잘 계산하는 건 필요한 것 같아.
삐삐: 나는 근육량 자체는 항상 없는 편이야. 비건 시작하고 집에서 홈트를 했는데 한 달 후 체지방 1kg이 빠지고 근육 1kg가 증가한 거야. 식단을 따로 더 챙겨 먹지도 않았어. 논비건이 매일 고기를 먹더라도 근육이 증가하는 건 아니잖아. 근육, 체력의 영역은 운동과 연결되어 있어서 단순히 먹는 것만으로 드라마틱하게 변화가 있는 것 같진 않아. 비건식하고 10kg 찐 분도 봤고, 나도 살이 쪘다가 빠지기도 해.
채현: 식한다고 무조건 건강해지거나 건강이 나빠지거나, 이분법적으로 구분되는 건 아닌 것 같아. 비건 지향하면서 정말 오랫동안 냉동 음식이나 과자, 정크 푸드를 먹었는데 확실히 몸에 안 좋았거든. 무엇을 어떻게 먹느냐, 운동을 얼마나 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
진아: 지금보다 영양성분을 골고루 챙기고 싶긴 해. 헌혈하러 가면 계속 철분 수치가 떨어져있어. 해조류를 많이 먹어도 철분 수치가 올라오지는 않더라고. 철분 미달로 쓰러질 정도는 아니지만 헌혈하기에 조금 부족한 수치거든. 한편으로 고기가 근육, 에너지, 단백질의 이미지로 소비되는데 발암물질 2급으로 발표되기도 했고. 그 양면성이 잘 안보이는 것 같아. 물살이도 오메가3로 건강하다고 하지만 양식되는 환경�은 바다에도 좋지 않고�, 몸에 안 좋을 게 뻔한 생육 환경�이라고 하잖아. 그런 문제들이 완전히 드러나지 않는 것 같아.
인희: 비건식을 하고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어. 난 소화가 잘 안되는 편이라 저녁을 좀만 늦게 먹으면 밤에 잘 수가 없어서 새벽까지 청소하는 사람이었어. 그런데 비건이 되고 나서 그나마 소화가 잘 되는 편이야.
삐삐: 논비건일 때는 내가 뭘 먹고 사는지 딱히 신경 쓰지 않아서 내가 건강한지 아닌지도 모른 채로 살았어. 지금은 내가 뭘 먹는지 인지하고 있고 자연스레 건강에 관심이 높아졌지. 분명히 치우칠 수 있는 식단을 하고 있기 때문에 더 골고루 먹으려고 노력하고, 전보다 훨씬 건강해졌다고 생각해.
(pixabay)
삐삐: 종종 동물을 사랑(애호)해서 비건이 된 거 아니냐는 질문을 받곤 해. 사랑해야만 비건 일 수 있는 걸까?
인희: 예전에 동물을 사랑한다고 하더라도, 존재 자체로서 존중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는 거지. 단순히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랑한다는 관점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사랑하고 존중한다고 생각해.
삐삐: 동물과 인류를 사랑해야 인권 운동, 동물권 운동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야. 동물권은 이미 천부적으로 주어진 권리인 거지. 아기가 귀엽고 사랑스럽지 않다면 그들을 존중하지 않아도 될까? 좋아하고 사랑한다는 영역과 달리 아예 존중의 영역으로 인식이 바뀌었던 것 같아. 죽어가는 수많은 축산 동물 모두를 내가 사랑하는 건 아니란 말이야. 타자의 목숨을 빼앗는 게 옳지 않다고 느끼는 거지 사랑의 영역으로 비건을 지속하는 건 아닌 것 같아.
진아: 사랑이란 단어의 스펙트럼이 넓어서 해석이 다양할 것 같아. 나는 사랑이 나를 움직이게 하는 밑바닥에 있는 마음 같다고 생각해. 그 사랑 위에 정의감이 있을 수도 있지. 개개인을 다 알진 못하지만 해치고 싶지 않고, 존중하고 싶은 마음을 통틀어서 사랑이라고 한다면 사랑해서라고 정리할 수도 있을 거야.
채현: ‘동물 애호가라서 비건하는 거 아니야?’고 질문을 받을 때 ‘애호’라는 단어에 거부감이 느껴질 때가 있어. 사랑이나 ‘애호’의 관점 보다는 존중의 관점에서 하는 거고 우리가 동물의 고통에 특별히 공감 능력이 뛰어난 건 아니라고 생각해.
삐삐: 동물을 사랑하지 않아도 행동할 수 있는 동기가 ‘동의하지 않음’도 될 수 있다고 생각해. 축산업계의 공장식 축산에 대해 동의하지 않음, 더 많은 에너지 자원이 들어가는 축산업에 동의하지 않음, 산림을 포함 더 많은 환경적 피해가 뒤따르는 것에 동의하지 않음. 우리는 많은 불매운동을 하는데, 탈육식을 하는 것도 일종의 불매 운동이라면 사랑하지 않고도 충분히 할 수 있어.
� 이번 대담은 어떠셨나요?
비건 지향을 시작하고 분명 실천을 지속하기 어려운 때도 있지만, 누군가 ‘논비건의 삶으로 돌아갈 수 있어?’ 묻는다면 돌아갈 생각은 없다고 입을 모아 말할 거예요. 비거니즘의 가치에 동의하고, 비건 지향을 시작한 동기도 여전하니까요. 비건이 되기 전과 후의 경험에 대한 또 다른 이야기와 생동감 있는 대화 현장이 궁금하다면, 녹색연합 유튜브에서 만나요!
<비건이건 아니건>은 말 그대로 내가 비건이건! 네가 비건이 아니건! 우리가 조금씩 비건 지향 생활을 시작해볼 수 있도록 기획되었어요. 비거니즘과 조금 더 친해지는 생활, 한 걸음씩 함께 나아가요.
* 이 글은 녹색연합 월간지 녹색희망 291호에 실렸습니다.
기획 ; 삐삐, 변인희
대담 ; 녹색연합 기후에너지팀 인희, 채현 활동가 / 홍보팀 진아, 삐삐 활동가
글 정리 ; 기후에너지팀 인희 활동가
영상 편집 ; 삐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