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를 다시 절다
삐삐는 심장 약을 먹으면서도 평소와 다름없이 잘 지냈다.
잠을 잘 때 호흡수를 재 보곤 했는데 1분에 25회가 넘는 일도 없고
한 달마다 병원에 가서 약을 받고 3개월에 한 번씩 x-ray 사진과 심장 초음파 검사를
단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받았다.
제이피 역시 관절염 약을 꽤 오랫동안 먹었는데
처음에는 매일 먹다가 3일에 한번, 일주일 한 번으로 줄였다.
제이피는 순해서 숟가락에 약을 타서 입을 벌려 먹였는데
삐삐는 그전까지 약을 먹일 일이 없었던데다
사나워 앞으로 약을 어떻게 먹여야 하나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약을 주사기에 넣어 입을 벌려서 먹이라고 했지만 입을 벌리는 일부터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약을 물에 개어 사료와 야채 통조림 고기 등에 섞어 주었는데 다행히 잘 먹었다.
산책도 잘하고 좋아하며 걷지 않으려고 버티는 일도 없었다.
난 거북 바위 앞에 가면 삐삐가 오래 살기를 바라진 않지만
고통 없이, 적어도 2년은 내 곁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달라고 빌었다.
남편은 5년은 충분히 더 살 만큼 건강하니 걱정 말라고 했지만
더 욕심부리면 안 될 것 같아서
제이피만큼만 14-15 살 정도로 잡고 기도했다.
어느 날 삐삐가 다시 불편하게 걷기 시작하기에 두고 볼 수 없어 병원에 갔다.
그런데 삐삐 다리를 수술해준 의사는 이미 병원을 그만둔 상태였고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없었다.
다리 사진을 찍어봤는데 관절염이 진행 중이라고 했고
이미 다리 수술할 때 그런 소견이 보인다고 이야기 들었기에
어차피 나이가 들어서 나타나는 증세라고 생각했다.
삐삐는 심장 약을 먹고 있었기에 소염제나 진통제 종류의 약을 같이 쓰면
몸에 무리가 온다고 하여 3일 치 진통제 정도만 받고 일단 두고 보기로 했다.
약 덕분인지 괜찮아 보여서 다행이라 생각하고 또 시간이 흘렀다.
그렇게 병원을 다니며 진통제를 2-3회 반복을 하며 다리 걱정은 또 잊어버렸다.
그런데 하루는 삐삐가 일어나는데 심하게 몸을 비틀고 움직이기에 깜짝 놀랐다.
관절염이 진행 중이고 다리 상태가 안 좋은 건 알았지만 이대로 내버려 둘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우리는 삐삐를 데리고 다시 병원으로 향했다.
삐삐가 다니던 병원은 사람으로 치면 종합병원과 비슷해서
24시간 문을 열어 밤에도 달려가 진료를 받을 수 있는 곳이었는데
그래서인지 모르겠지만 병원에는 강아지 환자와 보호자가 늘 만원이고
예약을 해도 한참을 기다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다 보면 자연스레 다른 개들과 보호자를 만나게 된다.
모두 개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오고 모이는 곳이라 상대를 바라보고
서로 상태를 묻거나 이야기를 나누는데 안타까운 이야기도 많고
내가 놀라울 정도로 개를 위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어떤 사람은 행색이 아주 초라한데 개의 병원비를 위해서
힘든 일을 하고 돈을 벌며 모자라는 경우는 자식이 도와준다고 하였다.
유기견을 알뜰살뜰하게 보호하고 치료하는 사람도 많았다.
또 병원에 가면 늘 보는 강아지도 있었는데 병원 앞에 버리고 간 개를 거둔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개는 다리가 한쪽이 없었지만 병원 안주인답게 늘 점잖고 예쁘게 손님을 맞아주었다.
개를 버리는 사람을 욕하지만 그나마 병원 앞에 버리고 간 사람이 낫다는 이야기도 하였다.
그런 저런 각자의 사연을 듣는 동안 남편은 삐삐 다리 수술을 한 의사를 수소문하고 있었다.
수술을 잘 끝낸 덕분으로 잘 지내고 있으니 고맙기도 하고
그녀의 행방이 궁금하기도 했는데 병원에서 모른다고만 할 뿐 결코 알려주지 않았다.
오죽하면 병원 주차 관리인 에게도 물어봤을 정도인데 모두 모른다고 해서 잊어버리고 있었다.
그렇게 병원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동안 옆자리의 보호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드디어 남편이 수술을 한 의사의 행방을 알아내었다.
마침 누군가가 그녀의 이름뿐 아니라 그녀에 대해 잘 알고 있었는데
그녀의 남편 또한 수의사로 멀지 않은 곳에 개업을 했다고 하며 병원 이름까지 알려 주었다.
사실 처음엔 당장 그 의사를 찾아갈 생각은 하지 않고
병원 이름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다리 상태가 더 나빠지기에 그녀를 찾아갔다.
삐삐 주치의를 믿지 못한 것이 아니라 주치의는 내과 담당이고,
이전에 두명의 다른 의사들이 십자인대 파열을 알아내지 못한 걸 알아냈기에
망설임 끝에 수술한 의사를 믿고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사실 다리 수술 이후로
한 달에 한번 병원을 갈 때마다 발바닥 털을 깎는 등 최선을 다했다.
바닥에서 재우고 소파도 모두 없애 버렸다.
나는 사실 너무나 곁에 두고 자고 싶을 때가 많았다.
내 옆에 강아지가 같이 자고 있는 것이 행복하고 좋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겨우 습관이 들었는데 다시 또 침대에 올라오면 버릇을 고치기 힘들 것 같아서 꾹꾹 참았다.
처음에 삐삐는 무조건 높은데 올라가는 버릇이 있어서 침대에 올라와 잤는데
이불이 자주 더러워져서 밑으로 내려 보내려고 시도를 했었다.
고집이 센 삐삐는 그날 저녁 몇 번을 내려놓으면 다시 올라오고
또 아래로 내려 두고 몇 번을 반복하다가 내가 지쳐서 포기했었다.
그러다 겨우 스스로 바닥에서 자는 습관이 들었지만
혹시나 침대에 올라와 바닥으로 뛰어내릴 경우를 대비해서 매트도 깔아 두었다.
물론 삐삐는 침대 밑 매트에서 잤는데 내가 누워서 팔을 내리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숨 쉬는 소리를 들으며 매일 같이 자고 같이 일어났다.
아침에 바라보면 옆에 놔둔 자기 집 속에 들어가 자기도 하고
내가 누워 있는 침대 반대쪽 바닥에서 자는 등 여기저기 자리를 옮기며 잤다.
남편 말에 의하면 삐삐는 새벽 1-2시쯤 자다가 방을 나오는데
오줌을 한번 누려고 나오기도 하고
아빠가 뭐 하고 있지? 확인하는 식으로 아빠 방을 빼꼼히 쳐다보다가
아빠가 만져 주면 뒤돌아 다시 안방으로 휙 들어가 버린다고 했다.
남편은 야행성이라 밤에 늦게 자는데
삐삐가 밤마다 아빠를 찾아서 인사를 하러 오는 것이라고 했다.
사실 삐삐는 자기 영역에 대한 집착이 굉장히 강했다.
삐삐는 아빠가 집에 없을 때 현관 앞에서 기다리거나 아빠 방에 들어가 누워있을 정도로 아빠를 좋아했지만
밤이 되어 침실로 들어오면 돌변하여 심게 짖고 으르렁거렸다.
마치 자기 영역의 침입자로 여기는 듯했는데 낮에 들어오는 것은 괜찮으나
밤이 되면 남편이 침대 곁에 오지를 못했다.
남편은 허리가 아파 서재 바닥에서 따로 잤는데 그런 삐삐를 이해하고 웃으며 안방에서 쫓겨 나갔다.
아마도 삐삐는 아빠를 침실에서 쫓아내고 짖은 것에 대한 미안함을 풀 듯
밤마다 한 번씩 아빠를 달래러 인사를 마치고 잠자리에 드는 게 아니었을까.
그 병원은 수술이 많은지 예약 잡기가 힘들어 며칠을 기다린 끝에 진료를 보았다.
다시 만난 의사는 우리를 보고 반가워했다.
자신을 인정하고 믿고 여기까지 왔으니 아무래도 그랬을 것 같다.
삐삐 다리를 검사한 결과 역시 반대쪽 다리 인대가 끊어졌다는 진단을 내렸다.
왼쪽 다리 수술을 한 지 2년 5개월 만이었다.
나는 또 한 번 더 수술을 시키는 것이 너무나 싫었고 힘들었기에 그런 심정을 솔직히 이야기했다.
그 말 때문인지 당장 수술을 하는 방법이 아닌 또 하나의 선택이 있다고 했다.
다리에 붕대를 감고 일주일 정도 지내다 보면 인대가 저절로 붙는 경우가 있는데 50% 의 확률이라고 했다.
그 이후 붙지 않을 경우 수술을 생각하라고 하였고
우리는 수술만은 피하고 싶어서 50%에 기대를 걸고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일주일은 삐삐 에게도 힘든 시간이었다.
우선 다리를 붕대로 감아서 다리가 잘 구부러지지 않기에
걷기도 앉기도 불편하고 특히 배변을 볼 때 자세가 불편해서 지켜보는 것도 애가 탔다.
일주일 후 병원에 가서 붕대를 풀었는데 의사가 촉진을 잘못하다가 오히려 인대가 끊어질 수 있으니
집에 가서 며칠 두고 살펴보라고 했다.
하지만 삐삐는 이전보다 훨씬 더 다리를 절고 불편해 보였다.
두 번 다시 수술만은 피하고 싶었는데 그런 모습을 보니 차라리 하루라도 빨리 수술을 할 걸
일주일이나 붕대를 감고 지체한 것이 오히려 후회가 되었다.
사람 마음이 이렇게 빨리 변할 줄 미처 몰랐지만 결국 수술을 하기로 하고 날짜를 잡았다.
의사는 지난번과 다르게 인대가 한 줄만 끊어져서 훨씬 수술이 간단하며
수술 후에는 지난번과 달리 움직이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아니고
바로 걸을 수 있도록 운동을 시킨다고 안심을 시켜주었다.
또 병원에서 침도 놔주고 한방 치료를 병행해서 보약도 주는 등
다리에 좋은 모든 치료를 해주겠다고 약속했다.
난 그 의사를 믿을 수 밖에 없었고 무조건 그를 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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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모르고 그 의사를 찾지 못했더라면 나았을까...?
가끔 이런 후회를 삐삐를 보내고 한다.
소용없는 짓이긴 하지만 말이다.
다음 이야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