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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영미 Dec 08. 2020

에필로그

감사합니다

사실 이 글은 내가 제본하여 개인적으로 간직하고자 쓴 글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교정을 봐주기로 한 딸이 내가 브런치 작가로 선정되었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해왔다.

얼떨떨한 마음으로 글을 처음부터 다시 읽어보는데 문득 몇 개의 문장들이 어색하게 느껴졌다.


"아버지가 개를 좋아하'셨'다로 해야 하나?"

  

아버지는 개를 좋아하시는 게 아니라 좋아하셨고,

귀가 어두우신 게 아니라 귀가 어두우셨다.

무언가 좀 이상하다 싶었는데 딸이 머뭇거리며 말했다.


"엄마,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그래."


글을 쓰는 동안에는 아버지가 살아계셨다. 그리고 바로 얼마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아버지에 대한 문장이 모두 과거형으로 바뀌어버린 것이다.  


어느 좋은 윤달에 미리 수의를 맞춰두었고, 아흔이 넘은 연세이셨기에 언제든 돌아가실 수 있다고 마음의 준비를 했지만 그래도 죽음이라는 것은 언제나 갑작스럽다.


딸은 좀 이상한 질문 같지만 삐삐와 할아버지 중 누구의 죽음이 더 슬프냐고 물었다.

딸아이의 입장에선 할아버지는 어쨌든 호상인 데다 어느 정도 예측 가능한 죽음이었던 반면

삐삐는 동물이지만 나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는 존재인 걸 알기에 할 수 있는 질문이었다.

나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어떤 죽음이 더 슬픈지 그 슬픔을 재보느라 그랬던 것이 아니다.

슬픔의 크기는 비슷한데 그 종류가 너무 달라 이걸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라서였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오랜만에 삼 형제가 한 자리에 모였다.

나는 눈을 감은 아버지에게 마지막으로 감사하다고 말했고,

여동생은 “아버지, 가셔서 할머니 만나세요.”라고 했다. 남동생은 아무 말 없이 울기만 했다.

외아들이셨던 아버지는 할머니를 많이 그리워했다.

아버지는 정말 하늘나라에 가서 할머니를 만나실까?

사후 세계가 과연 존재할까?


서울에서 아버지의 장례를 치르는 동안 딸의 집에 머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럼 증조할머니는 아흔이 넘은 아들을 알아볼까요?” 사위가 물었다.

하늘나라에 올라 간 사람들은 어떤 모습일까?

죽음을 맞이한 그 순간의 모습일까?

흐린 빛 같은 형태일까?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까?

두 내외가 상상력을 펼치는 동안 나는 그때 바로 하지 못했던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아버지의 죽음은 한 세대가 끝나버린 느낌이고, 가슴에서 무언가 무너져 내리는 것 같다고.

그런데 내가 만약 죽을 때 저 멀리서 삐삐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나는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고 기꺼이 삐삐를 따라갈 것 같다고. 너무 보고 싶다고.  


그렇게 이 책의 제목은 <마중>이 되었다.

나 혼자 기억해주고 싶어 시작한 글이 브런치라는 플랫폼을 통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삐삐를 알리고 보여줄 수 있게 되어 기쁘고 감사하다.

처음 글 쓰기를 시작한 날부터 오늘날까지 나에겐 긴 여정이었다.

삐삐와 닮았다고, 노견을 기르는 중이라고, 함께 공감해주신 분들 덕분에 큰 힘이 되고 위로가 되었다.

어느 드라마의 대사처럼

너와 함께한 모든 순간이 눈부셨듯

이 글을 마치는 지금도 행복하다.  

 

감사합니다.


사랑해, 삐삐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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