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두지 않을 것

'나'라는 동굴에 갇힌 나를 꺼내 준 사람

by 표현

며칠 동안 집에서 꼼짝도 안 한 날이 있었다. 오는 연락을 못 본 척 한 채, 누군가와 대화도 나누지 않은 채로 말이다. 나는 나만의 고민이 생기면 종종 그러곤 했다. 혼자만 알고 있는 동굴에 제 발로 들어가 마음이 정리될 때까진 꼼짝 않고 그 안에 갇혀 있었다. 그리고 이번에 처음으로 그게 옳은 해결책이 아니었음을 알려준 사람이 있었다.


나는 살면서 한 번도 이렇다 한 큰 사고도 치지 않고, 그냥 하라면 하고 하지 말라면 안 하는 전형적인 삶을 살아왔다. 내가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은 항상 외줄 위에 올라서 있는 것처럼 자주 흔들리곤 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자라온 내가 배운건 최대한 그 줄이 흔들리지 않게 조심히 걷는 것이었다. 하고 싶은 것보단 해야 하는 것에 우선순위를 두고 내가 정말로 하고 싶은 것은 속 깊숙이 삼켜냈다. 그렇게 참고 참고 참고 걷다 보면.... 길을 잃는다.


스무 살의 끝에서 결국 나는 길을 잃고야 말았다. 내가 가야 하는 길과 내가 가고 싶은 길은 미로처럼 엉켜 결국 어디로 가야 도착지가 나올지 조차 잊게 만들었다. 그때의 나는 길을 찾아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알고 있는 동굴을 찾아 들어가기에 급급했다. 무슨 일 있냐는 친구들의 연락에도 아무 감흥이 없었다. 예전 같았으면 '아... 이 사람이 날 걱정하고 있구나'라고 생각해 감동에 휩싸여 동굴을 빠져나왔을 텐데 이젠 그렇지 않았다. 내가 스스로 길을 잃었단 사실을 받아들이고 조금 익숙해졌을 때쯤 나는 동굴에서 빠져나왔다. 그리곤 밀린 답장을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을 담아 했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대화가 있다. 시골에서 자라 10년 넘게 알고 지내온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가 보낸 '잘 지내?'라는 문자에 담담하게 '잘 못 지내'라고 말했다. 내가 보낸 밀린 답장 중 가장 솔직한 답장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리고 그간 쌓아놓은 속내를 정말 자연스럽게 털어놓았다. 다 쏟아내고 난 후에 그런 내가 너무나 어색해 '와 이런 말 누구한테 처음으로 말한다'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그에 대한 답장은 '미안해'였다. 처음엔 뭐가 미안한지 이해가 안가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는 듯 말했다. '네가 이런 상황인걸 너무 늦게 알아줘서 미안해'라는 말에 뒤통수를 맞은 것 마냥 멍했고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지금까지의 나는 나 자신이 내린 결론에 대해 너무 자만하고 살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의 불안과 우울을 무조건적으로 숨기기에 급했다. 그런 나의 나약한 모습에 위로를 건네줄 사람이 있기보다는 '고작 그런 걸로?'라고 말할 사람에 대해 공포를 느꼈던 것 같다. 결국 나 혼자 안고 가야 할 감정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 짧은 대화가 나를 부끄럽게 만들었다.


"난 네가 힘든 상황 속에서 더 힘들게 살지 않았으면 좋겠어"

친구가 보낸 이 말이 어쩌면 그때의 나를 가장 잘 알아준 말이 아닐까 싶다. 나는 감정의 거울을 사방 군데에 두고 나의 나약함을 계속해서 되뇌게 한 사람이었다. 지나치게 세상의 차가운 면에만 집착해 내 삶까지 꽁꽁 얼게 만들었다. 그랬다 결국 모든 게 나였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생각하니 나 자신이 더욱더 밉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동안 내 발목을 꽉 묶어놓은 줄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내 주변에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며 삶의 온기를 느낀 순간이었다.


우울에게 잡아먹히도록 나를 내버려두지 않을 것. 그런 나를 구해 줄 사람들을 의심하지 말 것. 행복하진 않더라도 무기력하게 살지 않을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