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닭 이야기
88 올림픽 때쯤일 거야.
산 있고, 개울 있고, 논도 옆에 있는 산골에서 동물들과 이웃하며 살던 때 얘기야.
아들과 딸이 국민학교에 가려면 4킬로미터를 걸어가야 했지만 하굣길에 가재도 잡고 들판에 누워 하늘을 쳐다보며 흰 구름을 마음껏 볼 수 있는 그런 동네였지.
친구가 부화장을 하고 있어서 가끔 별난 동물(주로 조류)을 얻어 와 키우기도 했는데, 한 번은 조그마한 병아리 두 마리를 주면서 잘 키워 보래. 아직 날씨가 추운 초봄이라 종이상자에 넣어서 전등도 켜 주고 모이도 주고 청소도 해 주고 물도 갈아 주면서 키웠지. 그 녀석들 커 가는 모습을 보는 재미가 쏠쏠하더라고. 한 달쯤 지나고 마당에 풀어놓아 키웠지.
어느 날 꼬맹이들 학교 교장 선생님이 나한테 동물 우리에 동물이 하나도 없어서 흉물스러우니 뭐라도 채워 달라는 거야. 여러 동물을 키우고 있으니 특별히 부탁하는 거라면서 말이야. 당시 우리 집에는 닭보다 덩치가 훨씬 큰 칠면조 여러 마리, 알프스에서 구조견으로 쓴다는 세인트 버나드, 재롱둥이 시추, 아이들 우유 먹이기 위해 기르던 산양 두 마리, 아침이면 쌀통을 쪼아대며 먹이 달라고 조르는 산비둘기, 토종닭 한 무리, 토끼, 오리, 고양이 등이 있었어. 조그마한 동물 농장이었지. 이런 놈들을 모두 마당에 내놓아 키우고 있었어. 그래서 흔쾌히 병아리 두 마리를 학교에 기증했지.
몇 달이 흘렀어. 아이들 가을 운동회 날에 사이다랑 김밥을 싸서 학교에 갔는데, 운동장 단상에 있던 교장 선생님이 나를 보더니 내려와 다짜고짜 자랑을 하는 거야.
“새벽 다섯 시만 되면 어김없이 동네가 떠나가라 울어대. 어디서 그 큰소리가 나오는지 쩌렁쩌렁해.”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죽었는데, 남은 한 마리가 무척 예뻐졌다며 우리에 가서 구경해 보자더라고.
나는 깜짝 놀랐지. 무지무지 예쁜 닭 한 마리가 나를 쳐다보고 있는 거야. 와, 닭도 저렇게 예쁠 수가 있나?
빨강, 노랑, 파랑 깃털을 다 갖추고 있어. 한마디로 인형이야.
평범한 닭인 줄 알고 기증했는데 갑자기 후회되더군. 아깝더라고.
집에 돌아온 나는 어떻게 그 녀석을 다시 데려올지 고민하다가 교장 선생님한테 솔깃한 제안을 했지.
그 녀석보다 다섯 배는 더 큰 칠면조를 줄 테니 바꾸자고. 한데 교장 선생님이 한 마리는 외로우니까 두 마리에, 요리해 먹을 한 마리까지 총 세 마리를 달라는 거야. 무게로 따지면 열다섯 배 손해 보는 장사였지.
그렇게 예쁘고 조그마한 수탉을 집에 가져왔지. 보물 다루듯 품에 꼭 끌어안고서 말이야.
그 녀석을 토종닭 무리에 합사 시켰어. 토종닭 무리에는 수탉 한 마리에 암탉 네 마리가 일부다처 형식으로 사이좋게(?) 지내고 있었는데 새로운 꼬마 신랑이 나타난 거야. 한데 토종닭 대장인 수탉이 앞으로 뛰어나오더니 그 녀석을 째려보는 거야. ‘넌 웬 놈이냐.’ 하면서 말이야. 그러더니 사정없이 패는 거야. 텃세를 부리는 건지, 신참 길들이기인지 모르지만 너무하더군. 반쯤 죽여 놓더라고.
그 후로 이 녀석이 밥도 제대로 못 얻어먹어. 다섯 마리가 다 먹고 남은 찌꺼기나 주워 먹었지. 처마 밑에 혼자 쭈그러져 자고, 다섯 마리가 지나가면 그 뒤를 한 5미터 떨어져서 졸졸 따라가. 지도 닭은 닭이라고. 신나게 터지고 왕따 당하면서 말이야. 그 예쁘던 깃털은 다 뽑혀 나가고, 아침에 울긴 뭘 울어. ‘꼬꼬댁’ 하고 울었다간 작살날 텐데. 후회되더군. 저 녀석을 얻기 위해 칠면조 세 마리가 날아갔는데 무르자고 할 수도 없고. ‘허, 참네!’ 한탄이나 하며 불쌍한 녀석한테 따로 먹이를 주곤 했지.
그렇게 한 2주 지났을까. 아침에 마당에서 닭 싸우는 소리가 들렸어. 놀랄 일이 벌어지고 있더라고. 찍소리도 못 내던 꼬마 녀석이 죽기 살기로 덩치 큰 수탉하고 한판 붙은 거야. 조금도 안 밀려. 오히려 펄펄 날더군. 둘 다 벼슬에서 피가 줄줄 흘러 피범벅이 되었어. 한두 시간을 그렇게 싸웠을까. 한데 수탉이 점점 둔해지는 거야. 앙갚음하려는 듯 꼬마 녀석이 수탉의 벼슬을 물고 늘어졌어. 수탉의 눈이 맛이 가고 초점이 흐려지더라고. 이러다 죽겠다 싶어 뛰쳐나가 말려도 꼬마 녀석이 절대 놓지를 않아. 라이터를 주둥이에 갖다 대니까 그제야 놓더라고. 그러고도 성이 안 풀렸는지 씩씩거리며 주위를 돌더군. 근데 이상한 거 있지. 지들 신랑이 신나게 터지는데 신부 넷이 아는 척도 안 해. 그동안 신랑 노릇 제대로 못 해서인지 모르지만 말이야. 못된 년들이야.
이제 새로운 질서가 생겼어. 꼬마 신랑이 날개를 반쯤 펴고 어깨를 흔들며 지나가면 그 뒤를 신부들이 졸졸 따라가고 그 훨씬 뒤에 옛 신랑인 수탉이 포로처럼 기어 와. 수탉은 암탉 근처에도 못 가. 암탉에 올라타는 걸 보면 그 녀석이 반 죽여 놓거든. 얼마나 당했는지 암탉 근처에 수탉을 던져 놓으면 수탉이 먼저 얼른 도망가. 자기 뜻이 아니라는 듯 말이야. 그 녀석 몰래 빼앗긴 마누라를 품어 보았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그 독한 녀석 때문에 아예 포기했을 거야. 이젠 수탉한테 따로 먹이를 줘야 할 판이야. 일장춘몽이라고, 좋은 시절 다 갔지. 그리고 날이 갈수록 그 녀석의 때깔은 좋아지더라고. 뭉텅뭉텅 뽑혀 나갔던 꼬리털도 새로 나오고 우두머리의 기풍이 느껴지는 거야. 궁녀 넷과 신하 하나를 거느린 왕처럼 위풍당당한 삶을 살더군.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이 우리 집에 놀러 왔어. 거나하게 취한 한 친구가 암탉 한 마리를 발로 걷어찼어. 제대로 맞았는지 나둥그러져서 비명을 지르더라고. 그러자 어디선가 그 녀석이 나타난 거야. 그 녀석이 친구를 째려보더니 바로 덤벼들더라고. 머리 위를 훨훨 날아서 매가 사람 눈을 쪼듯이 매섭게 날뛰는 거야. 친구가 삽을 휘둘러도 절대 물러서지 않아. 독하더군. 지 마누라 때렸다고 죽기 살기로 덤비는 거야. ‘사나이’ 답더라고. 마누라가 넷이나 되니까 하나쯤 죽어도 될 터인데, 목숨 내놓고 덤비더라고. 사람보다 훨씬 당당하게. 친구가 도저히 안 되겠는지 결국 집 안으로 도망을 쳤어. 아무튼 대단한 녀석이야.
그런데 말이야. 그렇게 이쁘고 자랑스럽던 녀석이 갑자기 무서워지더라고.
사람을 겁내지 않는 이 녀석이 언젠가 큰일 낼 것 같았어.
전에 한 번은 놀라서 도망치다 넘어진 아이의 머리를 쪼았다는 얘기를 듣기도 했으니까.
그 녀석은 그날로 끝났어. 저세상으로 보냈지.
발에 걷어 차인 암탉하고 같이 갔으니 그래도 그리 외롭지는 않았을 거야. 친구들과 치킨 파티를 했지. 그 녀석의 무용담을 늘어놓으면서 말이야. 나중에 알았지만, 그 녀석 품종이 꽃닭이래. 꽃처럼 예쁘고, 싸움 잘하고, 마누라 엄청 사랑하는 그런 녀석이래.
닭의 사회에도 다시 변화가 왔어. 추방당했던 왕이 다시 돌아온 거야. 비록 자력이 아닌 외세에 의해 권력을 찾았지만 말이야. 그래서인지 옛 마누라 셋을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모두 받아들이더군. 인간이었다면 아마 매국노네, 간음녀네 별별 욕 다 하고 버렸을 거야. 짜식! 마음도 넓어. 허긴 그 마누라들이 무슨 죄가 있니. 힘없는 자기 때문이지.
이렇게 닭을 마당에 놓아 키우면 식구 같아. 밖에 나갔다 돌아오면 내 차 위로 올라와 반겨 주고, 낯선 사람이 들어오려 하면 못 들어오게 막아. 어떨 땐 열 마리쯤 되는 병아리 떼를 몰고 나타나는 거야. 어느 구석에서 품고 있었는지 말이야. 그럼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다시 한번 그렇게 살아 보고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