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진각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임진강으로 향하는 기차가 끊어진 상태였다. 종일 기차를 타고 올라왔는데 목적지에 갈 수 없게 되자 동행인인 친구는 크게 실망했다.
‘에라 모르겠다.’ 나는 창피한 줄도 모르고 대뜸 길바닥 한가운데에 대자로 누웠다. 더럽다고 기겁을 하던 친구도 지쳤는지 내 옆에 벌러덩 누웠다. 코끝으로 풀냄새, 흙냄새, 쇠똥 냄새 따위가 났다. 친구는 그것이 여름 냄새라고 했다. 우리는 쓸데없는 이야기를 하며 정신 나간 사람처럼 웃다가 이따금 들리는 총소리에 멈칫하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웃음소리도 잦아들고 둘은 그저 멍하니 누워만 있었다.
하늘은 청명한 어둠이었다. 산골인데도 기대만큼 별이 많지 않았다. 단지 별 하나가 유난스레 아름다웠다. 손을 뻗어 별을 쥐는 시늉을 했다. 그러다 보니 예전부터 어른거렸던 상념 하나가 떠올랐다.
유명한 위인들은 모두 별 아래서 태어난다.
할머니가 그랬다. 큰 배를 부여잡고 자지러지는 엄마를 데리고 병원으로 향할 때, 둥실한 달보다 더 반짝이는 고운 별이 차창밖에 보이기에 ‘이놈 굉장한 놈이겠구나.’ 했다고. 그래서 나는 내가 ‘굉장한’ 존재가 될 것을 단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그 휘황찬란한 별은 인공위성이었던 거 같다. 이런 말 있지 않은가. 하늘에서 가장 빛나는 별은 인공위성이라는 말. 그러니 예쁜 우주쓰레기 아래서 태어난 나는 위인전에 실릴만한 대단한 사람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시니컬한 생각을 하는 와중에도 이때의 나는 내가 잘 될 거라는 무조건적인 믿음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무엇이든 될 수 있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확신. 20대 초반다운 치기였다.
한참을 그렇게 누워있으니 순찰 대원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다가왔다.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됩니다.”
군소리하지 않고 자리를 털었다.
길가엔 바이킹 같은 놀이기구 몇 가지가 늘어서 있었고 곧 떨어질 것 같은 낡은 간판에는 <평화 랜드>라고 쓰여있었다. 간헐적으로 울리는 총소리에 평화라는 단어가 위태롭게 떨리고 있었다.
2008년 어느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