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오용 Jun 13. 2021

고독한 신입일기 03

회사에서 말하는 '소문'이란?

 회사에서의 입조심은 회사 생활을 해보지 않은 사람이라도 익히 알고 있는 주제다. 회사의 규모가 크던 작던, 사람이 많건 적건, 도대체 무슨 조화 속인지 회사라는 공간은 똑바로 정보 전달이 되지 않는 희한한 곳이다. 이런 걸 빗대어 재밌게 표현한 말도 본 적 있다. 회사란 곳은 오전에  영화 〈삼진그룹 영어 토익반〉을 보러 간다고 얘기하면, 점심 즈음에는 ‘토익 공부한다며?’로 돌아오고, 퇴근 즈음에는 ‘이직 준비해?’로 돌아온다는 말. 사람이 많은 곳이면 어쩔 수 없는 그런 특성을 갖고 있는 듯 하다.




 때는 2020년 11월 말이었다. 이제 회사에 들어온지 한 달이 거의 다 되어가는 시기였다. 2020년 2월부터 이리저리 요동을 치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자 그래프가 그 때에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다. 그 때, 갑자기 어디선가 소문이 돌았다. 우리 회사 건물에 확진자가 나왔다는, 그런데 같은 회사, 같은 건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에게 아무것도 알려주지 않고 그 사람만 쏙 빼서 검사를 위해 보냈다는 소문이었다. 갑자기 동기에게 그런 메신저를 받게되자 나 또한 무서워졌다. 계속해서 확진자가 늘어나더니 정말 내 주변에도 이런 일이 생기는구나. 다급하게 해당 사실을 알려준 동기에게 어디서 들었냐 물었다. 동기는 ‘내 옆자리 분이 화장실에서 들었대요.’라고 답했다. 동기의 옆자리 분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는데, 밖에서 다른 회사 분들이 하는 말을 들었다는 말이다. 그러다 문득, 그런데 다른 회사 분들이 우리 회사 일을 어떻게 아는거지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어보자 돌아오는 대답은 ‘저도 잘 몰라요.’였다. 


 그래도 여기저기서 속속들이 확진자가 발생하는 상황이었고, 실제로 내 친구네 회사에도 확진자와 접촉한 사람이 나와서 검사를 받고 결과를 기다리며 자가격리를 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만약 정말 우리 회사, 우리 건물에서 확진자가 나온 거면 어떡하지, 만약 그 사람과 내가 같이 엘리베이터를 이용했던거라면 어떡하지. 물 밀 듯 밀려드는 생각에 일도 손에 잡히지 않았다. 


 ‘회사에 확진자 발생. 그러나 회사는 우리에게 아무 말도 안해줌.’ 이라는 소식이 점점 퍼져나갔다. 심지어는 ‘정직원에게만 공지해줌.’이라는 말까지 추가되었다. 그 말은 도대체 어디서 추가된 건지 알 수 없었지만, 이야깃거리 삼기 딱 좋은 주제이긴 했다. 직원들은 모두 키보드에 손을 올린채 모니터를 보고 있었지만, 그건 일을 위한 게 아니라 폭풍처럼 메신저를 타이핑 하기 위함이었다.


 나는 왜 공지를 안해주는 걸까 보다는 정말 확진자가 나온건지 아닌지가 더 알고 싶었다. 만약 정말이라면 다시 한 번 더 코로나 검사를 해야하나 싶기도 했다. 결국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아서 나는 직접 파견 계약직원을 담당하는 대리님에 찾아가 여쭤봤다. 대답은 우리가 알던 사실과 달랐다. ‘확진자가 나온 것은 맞으나, 우리 회사가 아닌 같은 건물을 이용하는 다른 회사의 직원이며, 해당 직원은 저층부 직원이었기 때문에 저층부 엘리베이터를 이용하는 직원들에게만 따로 공지가 내려졌다.’. 우리 사무실은 고층부였다. 그러니 아무런 공지도 없는 게 당연한 거였다. 이렇게나 허무할 수가. 나는 내가 들은 사실을 바로 동기에게 전달했고, 또 다시 이리저리 퍼져나갔다. 오전에 시작된 허무맹랑한 코로나 괴담은 퇴근 쯤이 돼서야 잠잠해졌다.



 한 번은 헛소문으로 분노를 참지 못한 적도 있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 후 지하철을 기다리는데 퇴근길이 겹치는 동기를 만났다. 반갑게 인사를 하자마자 동기는 내게 ‘연말 상여금 얘기 들었냐’물었다. 상여금? 상여금이라니? 파견 계약직에게도 그런 걸 주나? 나는 정확히 아는 바가 없어서 무슨 소리냐 묻자 동기는 꿈만 같은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이번에 우리랑 같은 업무를 하는 파견 계약직을 뽑는 공고에 ‘상여금’이라는 말이 있었다, 작년에 파견 계약직도 상여금을 받은 적이 있다, 그래서 이번에 우리도 준다더라, 1월 말에 들어온다더라, 월급의 100%라더라. 만약 진짜라면 너무 좋겠지만, 쉽사리 믿을 수 없었다. 왜냐하면 나는 계약서 작성 당시에 해당 얘기를 전혀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냥 ‘와 짱이다!’하고 별 말을 안했다. 친한 동기 언니에게도 말할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 같고, 괜히 말을 꺼내서 마음만 붕 뜨게 만들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생각과는 상관없이 그 동기는 정말 상여금을 받을 생각에 큰 기대가 됐는지 여기저기 얘기하고 다녔고, 결국 다음날 출근했을 떄 는 이미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그 다음 날 오전은 일이 밀려있어서 바빴기 때문에 제대로 메신저를 할 수 없었다. 점심이 지나고 오후가 돼서야 동기들은 단톡방에서 상여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상여금으로 뭘 하면 좋을지 생각하며 신난 사람 반, 아닌 것 같다며 의심하는 사람 반이었다. 나도 아닌 것 같아 의심스러운 게 사실이었다. 하지만 만약에, 정말 만약에 그렇게 큰 돈을 예기치 않게 받는다면 얼마나 좋을까. 신나서 떠드는 동기들을 보며 나도 점점 행복회로를 돌리기 시작했다.


 그 때 한 동기언니가 말을 했다. 자기는 진짜인지 아닌지 정말 모르겠다고, 파견 회사에 직접 연락을 해보겠다 했다. 동기언니는 연락을 하는 중인건지 잠시동안 말이 없었고, 우리 모두 애타는 심정으로 동기언니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1시간쯤 지났을까. 동기언니가 조용하던 단톡방을 울렸다.

‘저번 상여금 지급이 특수한 케이스였고, 이번에는 상여금이 없으며, 채용공고 내용은 수정했다.’

 두두둥. 분명히 믿지 않았지만 나는 그래도 내 생각이 틀린 생각이었으면 했다. 하지만 역시나가 역시나였다. 아닌 것 같다 믿던 나도 그렇게나 실망스러웠는데, 정말 상여금이 지급되는 줄 알고 있던 사람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컸겠는가. 그들의 그 큰 상실감은 정확히 알지도 못하면서 말을 전달한 동기에 대한 원망으로 이어졌다. 이틀 동안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했던 상여금은 그렇게 잊혀져갔다. 



 상여금 얘기를 우리에게 꺼냈던 그 동기는 적지 않은 원망의 소리를 들어야했다. 하지만 미안하다며 쩔쩔매는 그 모습을 보고도 그리 안쓰럽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던 건, 앞서 말했던 코로나 소문도, 상여금 소문도, 그리고 그 이후에 이어졌던 여러 가지 소문도 모두 그 동기가 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동기는 나름 억울해했다. 자신은 단지 자기가 알게 된 ‘사실’을 빨리 모두와 공유하고 싶은 마음에 얘기를 한 것 뿐이라는 거였다. 동기는 그 정확하지 않은 소문으로 인해 겪게 될 부작용(일이 손에 안 잡혀서 일이 더뎌지는 것, 헛소문을 듣고 잔뜩 기대한 후 실망한 것 등)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을 뿐이다.  확진자, 상여금과 같은 잘못된 소문을 전달하고 다닌 죄로 호되게 원망을 들은 동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도대체 어디서 듣고 온건지 모르는 ‘소문’들을 들고 전달하기 바빴다. 회사라는 공간에 제대로 된 정보가 돌지 않고 아니 땐 굴뚝에 연기가 나는 이유는 아마 그 동기와 같은 사람들 때문이 아닐까 생각했다. 


작가의 이전글 고독한 신입일기 0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