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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Jul 09. 2021

고독한 신입일기 06

첫 월급 (부제: 내 소중하고 작고 귀엽고 어여쁜 월급)


 첫 월급을 받았다. 

 해당 월의 둘째 주부터 근무를 했기 때문에 다는 아니고, 약간이 떨어져나간 월급을 받았다. 그래도 어쨌든 첫 월급이었다. 



 내 인생의 첫 월급은 20살 때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월급이었다. 그 때의 시급은 아주 귀여웠기 때문에 내 노고가 잔뜩 담긴 월급은 30만원이라는, 지금 보면 다소 초라한 숫자였지만 그렇게 크고 값지게 느껴질 수가 없었다. 학창시절 돈을 헤프게 써대면 꼭 부모님이 '직접 돈을 벌어봐야 알지'라고 말했다. 정말이었다. 내가 그 개고생을 해가면서 번 돈이라고 생각하니 턱턱 쓸 수가 없었다. 단 돈 만 원이라도 저축 통장에 넣는 기쁨을 느꼈다. 


 그 이후로 나는 아르바이트를 쉬지 않았기 때문에 매달 꼬박꼬박 월급을 받았다. 하지만 그래도 이번 월급은 그동안의 월급과는 조금 달랐다. 금액이 달라진 것도 있지만, 아무래도 난생 처음으로 '회사'라는 곳에 들어가서 자리에 앉아 주어진 업무를 하고 받아낸 월급이었다. 조금 더 뭉클하게 다가온 게 있었다. 가장 뭉클하면서도 미묘했던 것은, 아 그래도 내가 밥값을 하고 사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월급의 액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더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적었다. 일단 한 달 내내 만근을 한 상태도 아니였고(해당 월의 둘째 주에 입사했으니), 파견 계약직이다 보니 당연히(?) 임금은 최저임금 수준이었다. 띵동, 입금을 알리는 안내 팝업창을 확인하고 기분 좋았던 것도 잠시, 너무 소소한 액수에 실망한 건 비단 나뿐만은 아니었다. 월급날이 가까워지면서 뭘 살까 신나게 고민하던 동기들도 너무 적다며 투덜거렸다. 실제로 쉼표가 무려 두 개나 있어서 크다고 생각했던 금액은 핸드폰 요금, 카드값, 옷 몇 벌을 사고 나니 금방 사라졌다. 직장인들이 흔히 말하던 '월급이 통장을 스쳐지나가요.'가 무슨 의미인지 비로소 알 수 있었다. 



 평생을 약속한 건 아니지만 고정 수입이 생겼다는 건 내게 색다른 고민을 가져왔다. 이제 나는 지출 계획이라는 걸 세워야했다. 나는 대학교 4년을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다녔다. 국가장학금과 기타 교내 장학금을 받긴 했지만, 등록금에는 못 미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한 학기에 적으면 몇 십만원, 많게는 백 몇 만원까지 학자금 대출을 받아야만 했다. 그렇게 쌓인 학자금 7백 만원 가량을 앞으로 어떻게 갚아나갈 것인지에 대한 계획도 세워야했다. 드디어 나도 '월급 관리 방법'에 대한 책이나 유투브를 찾아 볼 수 있었다. 예전부터 제태크에 대해 지대한 관심이 있었으나 '고정 수입'이 전제되어있는 경우가 많아 제대로 적용할 수 없던 적이 많았다. 하지만 나도 이제 드디어 장기적으로 내 자산을 관리해나갈 수 있는 사람이 된 것이다.




 첫 월급을 받기 며칠 전부터 첫 월급 기념 선물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했다. 가장 먼저는 누구에게 줄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어느 범위까지 줄 것인가. 1순위가 가족인 건 당연했다(물론 혈육 제외). 하지만 가족의 범위도 애매했다. 취준 시절 가끔 용돈을 주셨던 작은 아빠에게도 줘야 하나? 가끔 내 이력서를 봐줬던 사촌 오빠한테도 줘야 하나? 고민은 깊었지만 답은 간단했다. 애초에 월급이 적어서 그 둘한테까지 선물을 줄 수도 없었다. 열심히 일 다니는 내 모습이 곧 선물이려니 생각해야지. 


 2순위는 친구다. 친구가 굉장히 힘들고도 예민한 문제인데, 사실 첫 월급을 받았다고 한 명 한 명에게 선물을 주지는 않지만, 밥 정도는 사는 게 보통이다. 자, 그러면 어떤 무리한테까지 밥을 살 것인가가 문제다. 자칫 친구가 애매하게 겹쳐있으면 '나는 안 사주네?'가 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친구들에게 첫 월급 턱을 내기 시작하면 작고 소중한 내 월급은 금방 사라질 게 분명했다. 하지만 이 문제도 나름 간단했다. 자주 만나는 친구들에게만 밥을 사면 그만이었으니까.


 내가 남들과 조금 다른 첫 월급 기념 선물을 준 사람이 있는데, 바로 전에 알바했던 곳의 사장님이다. 사장님은 내게 꽤나 특별한 분이었기에 나는 무려 주말의 시간을 빼서 선물을 사고 사장님을 만나뵈러 전에 알바하던 곳으로 갔다. 비록 번듯하고 멋들어진 모습은 아니였지만 그래도 일을 하고 돈을 버는 모습으로 고마운 사람에게 선물을 들고 찾아가는 건 꽤나 뿌듯했다.




 내 소중하고 작고 귀엽고 어여쁜 월급이 몽땅 휘발되는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한달여 동안 노동한 값이 이렇게나 금방 사라질 수 있다는 생각에 조금은 허무해졌다. 하지만 그동안 도움만 받다가 작게나마 돌려줄 수 있었다는 게 참으로 좋았다.




 이제부터는 계속해서 받게 될 내 소중하고 작고 귀엽고 어여쁜 월급을 어떻게 하면 거친 세상의 풍파로부터 지켜내야할지 고민해볼 차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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