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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용 Oct 16. 2020

고독한 취준일기 03

직장인 친구에게 '열등감'을 느낄 때 

 취준 기간을 슬기롭게 견뎌내는 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건 뭐니뭐니해도 '열등감 관리'이다. 열등감은 어떤 상황에서든 자신의 몸집을 잘 부풀리는 녀석이지만, 무엇보다도 약해진 마음에 철썩 달라붙어 기생하길 좋아하는 녀석이다. 그건 마치 사람의 마음을 갉아먹는 벌레같다. 나는 이미 그 벌레에게 온 마음을 갉아먹힌 기억이 있다. 이전에 고 3 시절에 열등감에 처참히 패배하고 우울의 늪을 헤맨 전적이 있기 때문에, 나는 최대한 '남을 부러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특히 유투브나 인스타그램을 보면 나와 또래이면서 크게 성공한 사람을 쉽게 볼 수 있는데, 그런 사람들을 볼 때마다 게시물에는 차마 보이지 않는 그 사람의 무수한 노력을 바라보려고 애쓴다. 


 열등감은 내 주변 환경이 어떠냐에 따라 더욱 빠르게 번식하기도 하고, 조금 느리게 번식하기도 한다. 흔히 '엄친딸','엄친아'라는 말을 많이 쓰는데, 나는 사실 그런 엄마 친구 딸과 같은 사람에는 별로 부러움을 느끼지 않는다. 내가 그 사람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 사람이 평소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모르는데, 그 사람의 결과만 보고 무작정 부러워할 수는 없지 않는가. 사실, 엄마가 자신의 친구 딸 얘기를 꺼내도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모르는 사람의 결과까지 일일이 부러워하고 관심을 갖고 살면 내 인생이 얼마나 피곤할까. 


 내 열등감을 빠르게 번식시키는 건 내가 잘 아는 사람의 소식이다. 나와 친한 또래 친구의 소식. (그렇다고 친구의 행복에 배 아파하는 그런 쫌팽이는 아니다. 언제나 진심을 다해 기뻐해준다. 이건 진짜다.) 왜냐하면 나는 친구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어떻게 살아가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에, 쉽사리 어쩌면 나와 비슷한 노력을 투입하는 건 아닐까 생각하는 함정에 빠져버리고 만다. 친구의 좋은 소식을 들었을 때  '나도 똑같이 했는데 왜 나는 안돼지?'라는 생각이 들기 쉽상이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한다. 나와 아무리 친하다 하더라도 친구의 숨겨진 노력을 다 간파할 수는 없다. 친구에게 좋은 결과가 생겼다면 분명 내가 모르는 엄청난 노력이 비결일 것이다. 친구의 좋은 결과를 들었을 때 나는 최대한 그렇게 생각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면 '노력을 쏟아붓는 태도'에 부러움을 느끼게 되고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다. 


 나는 그래도 다른 취준생들에 비하면 꽤 괜찮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 내 주변에는 취업한 친구들이 많이 없기 때문이다. 내 주변에 취업에 성공해 직장에 다니는 친구는 단 2명뿐이다. (내가 친구가 많이 없는 것도 이유일거다.) 대부분 나와 같이 취준생의 외로운 길을 걸어가고 있는 친구들이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인이라는 신분을 부러워할 순간이 적다. (이건 진심으로 축복받은 환경이 아닐까?) 그렇다고 해서 그 순간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가끔 직장인 친구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내 자신이 초라해지는 순간이 있다. 그 순간은 이제 직장인의 경제력을 가진 친구 앞에서 백수의 쪼그라든 지갑을 꺼낼 때도 아니고, 부쩍 바빠진 친구의 스케쥴에 맞춰 약속을 정할 때도 아니다. 친구가 하는 말의 반의 반도 이해하지 못할 때이다. 친구와 나의 생활 환경은 확연히 달라졌다. 나의 생활 환경은 아직도 방학을 맞이한 대학생에 불과하다. 아르바이트를 하고, 카페에 가서 공부를 하고. 만나는 사람도 정해져있고 그 사람들과 노는 것, 대화하는 것도 크게 달라진 게 없다. 하지만 친구는 달라졌다. 나는 겪어보지 못한 환경에서 도대체 들어도 이해할 수 없는 업무를 하며, 나는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팀장님','대리님'과 대화를 한다. 가끔 친구가 회사 일로 스트레스를 받고 나에게 토로할 때, 내가 너무 이해를 하지 못해서 미안할 때가 있다. 백업에 오류가 나서 다른 부서와 소통을 하는데 너무 오래 걸렸다는데, 나는 그 말을 조각조각으로 들을 뿐 그래서 무슨 문제가 생기는 건지 추리할 수 없다. 울분을 제대로 토해내지 못하는 친구의 답답한 심정이 상상가서 미안함만 커진다. 최대한 이해해보려고 노력해도 나는 정말이지 모르겠다. 그렇게 작아지고 나면 불쑥 열등감이 치고 올라온다. 친구의 상황을 이해해주지도 못하면서 못된 감정을 느꼈다는 것에 또 미안해지기만 한다. 


 직장인 친구와 만남을 갖고 집에 돌아오면 종종 싱숭생숭해진다. 하지만 나는 주머니 속 바늘처럼 불편하게 치고 올라오는 열등감을 모른 척 할 생각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원인인 친구를 내 인생에서 빼버릴 생각도 없다. 열등감도 내가 느끼는 감정 중 하나일 뿐이다. 내가 '열등감'을 관리하는 방법은 덮어놓고 모른 척 하는 게 아니다. 느껴지지 않는 척 해봐야 이미 생겨진 감정은 없어지지 않는다. 그 감정은 그 곳에 그대로 쌓여갈 뿐이다. 그 감정이 느껴진다면 그대로 느낀다. 가만히 열등감을 바라보고 나면 내 자신이 참 못나보인다. 왜 못나 보일까? 결국 가만히 앉아 주변 사람을 부러워하기만 하는 게 열등감 아닌가. 그렇게 열등감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내 못남까지 느끼고 나면 앉은 곳에서 일어나 움직일 힘이 생긴다.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 방법은 내가 그만큼 부러운 사람만큼 노력하면 되는 거다. 그리고 나에게도 직장인 친구들이 부러워할 장점이 있다. 바로 월요병이 없다는 것!



 언젠간 취뽀했다는 글을 올리는 그날까지.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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