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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 할 지난 날의 '고관절 통증'_1

그리움은 고사 하고 현재를 감사 하는 무기

by 푸시퀸 이지

살 만 하면 당연한 줄 알고 살 만 하면 풀어지게 마련이다. 인간 본성이. 아니, '나'라는 인간은. 트라우마가 아닌 이상 '아픔'을 회상하는 건 '감사'를 만끽하는 행위다. 하여, 우리나라 땅덩어리 중 '독도' 만큼만 이따금씩 남은 '통증' 위치에서 지난 날의 고관절 통증 여정을 남긴다. 잊지 않으려 한다. 나아진 몸에 '감사'를, 삶의 코싸인 준 '통증'을, 같은 처지의 주변 이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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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년 10월, 왼쪽 고관절(사타구니)에 통증이 생겼다. 척추관협착증으로 하반신을 잘라내고 싶던 시절에 비하면 이것쯤이야 했다. 별명이 ‘종합병원’이던 몸을 40대에 운동으로 극복했기에 운동이 답이려니 했다. 어느 날 출근길에 ‘척추협착도 낫는다’는 글귀가 눈에 꽂혔다. 요가원이었다. 앞뒤 잴 것 없이 퇴근길에 2개월 등록했다. 일주일에 세 번씩 혼신을 다했다. 시간이 흐를수록 고관절 통증은 더욱 선명해졌다. 사타구니에 자를 대고 칼로 긋는 것 같았다. 돈 들어간 곳은 뽕을 뽑는 성미인데 요가 동작을 하는 동안 머리털이 설 정도로 아팠다. 요가 한 달 비용을 서슴없이 날렸다. 내게 맞지 않는 운동을 깨닫게 된 지불비용으로 쳤다.


출퇴근길을 어슬렁대는 하이에나처럼 이번 먹잇감은 자세교정센터다. 18년간 환자 통증관리를 한 병원경력이 눈길을 끌었다. 사무실에서 시달린 통증은 퇴근길 등록으로 이어졌다. 비용이 헬스장 PT에 버금가지만 통증은 눈먼 돈을 만들었다. 오후를 버티기 위해 점심시간에 교정운동을 받았다. 고관절 통증은 퇴근까지 버티질 못했다. 서너 시간 운 좋게 머금는 정도였다. 통증은 허벅지 앞, 옆, 뒤까지 타고 내려갔다. 골반이 틀어져 오른쪽이 약한 게 원인이라 했다. 교정운동은 통증부위를 더 들쑤셨다. 선생님은 골반교정과 고관절 힘만 기르면 통증은 확실히 잡는다고 큰소리 쳤다. 숙제로 내준 운동까지 하면 더할 나위 없다며. 아프니까 움직이기 두렵고 나 자신이 의지박약처럼 느껴졌다. 낫는다는 믿음으로 플라시보 효과도 노려보지만 의심과 원망만 들어찼다. 고관절, 허벅지를 넘어 허리와 옆구리까지 아팠다. 마지막 한 번은 가지 않았다. 선생님 자신감이 추가등록을 부를까봐. 피 같은 돈을 또 날렸다.


’24년 1월. 운동을 해도 되는 건지, 어떤 운동이 맞는 건지 확인 차 동네 정형외과의원에 갔다. 골반이 틀어져서 생긴 통증이라 했다. 교정센터와는 달리 왼쪽이 약해 틀어졌단다. 도수치료만 받으면 된다고 했다. 무거운 마음과 달리 의사선생님 말투는 가벼웠다. 운동은 하든지 말든지. 도수치료 선생님은 골반 X-Ray를 보더니 ‘천장관절증후군’이라 했다. 원인과 결과만 쫓던 중 진단명에 귀가 솔깃했다. 도수치료는 혼자 주무르기 힘든 걸 대신 해 주는 꼴이었다. 안마 느낌은 잠시 뿐 통증은 금세 나타났다. 도수치료 두 번 받고 끝냈다. 몸은 어둠으로 치닫고 바퀴벌레가 사방에서 기어 나오는 듯했다.


새해 새 몸이 간절했다. 의자는 내게 안락을 넘어 공포로 다가왔다. 의자로부터 탈출해 걷고 싶었다. 퇴근시간만 기다렸다. 급기야 몸통을 비틀면 상체하체 통증 모두 들고 일어났다. 조급증과 예민함도 생겼다. 이젠 ‘재활’ 글자가 나를 향했다. 물리치료사 출신 재활전문가가 있는 헬스필라테스센터였다. ‘할인행사’까지 했다. 100% 출석 못한 요가원과 교정센터의 보상심리도 있었다. 행사마감 전 급한 마음에 등록했다. 첫 날, 얼굴이 동안인지 이제 막 필라테스 강사가 된 건지 외모와 진행방식에서 신입 티가 났다. 딸 같은 선생님에게 ‘천장관절증후군’을 각인시켰다. 50분 수업 중 몸 체크에 3분의1, 폼롤러 주며 근육 풀라는데 3분의1, 나머지 시간에 운동을 했는데 최악의 상황이 발생했다. 천장관절증후군에 좋은 운동이라고 시킨 근력운동이 하늘이 노랄 정도로 불쏘시개가 된 것이다. 힘줄이 끊어진 느낌이랄까. 주리를 튼 느낌이랄까. 자고 난 다음 날도 통증이 이어졌다. 50분 다 운동한다면? 앞이 캄캄했다. 환불하려고 보니 계약서도 주지 않았다. 전화나 문자 연결도 어려웠다. 직접 찾아갔다. 운동 후 심해진 통증은 고사하고 나중에 받은 계약서에 따라 손해를 크게 봤다. 결제금액에서 10% 떼고 할인 전 정상가격으로 PT비용 떼고 하루치 이용료까지 떼어 갔다. 학창시절 학원에 한 맺힌 사람인데 18만원을 뜯겼다. 속까지 쓰렸다. 통증은 배꼽 주변까지 퍼졌다. 가래로 막을 걸 호미로 막은 셈 치며 속을 달랬다.


30대에 자르고 싶던 다리 저림은 헬스로 이겨냈다. 다시 해보자. 퇴근하면서 사무실 근처 헬스장에 갔다. 친절한 상담은 물론 미국 트레이너자격증에 재활의원 협력센터였다. 몸만 살린다면야 하고는 그 즉시 PT 20회를 접수했다. 몸 왼쪽 기능을 전반적으로 잃어 근육을 강화시키자고 했다. 왼쪽은 발가락부터 정수리까지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자극 감각도 잃었다. 그럴수록 오른쪽 힘과 격차가 벌어지는 부익부빈익빈이었다. 집에서 하라는 운동도 새벽, 점심, 저녁으로 했다. 통증 없이 반나절 갔다. 계속 하면 회복되리라는 희망...은 잠시였다. 근력운동에 몸도 지쳐갔다.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엉덩이 근육을 키웠건만 달콤함은 오래 가지 않았다. 통증이 다 연결되어 손을 대기만 해도 뱃가죽까지 자지러지게 아팠다. PT 횟수를 모두 채웠지만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아는 시간이었다. 선생님은 통증을 못 잡은 아쉬움에 협력 맺은 재활의학과의원을 소개했다.


마지막이길 바라며 퇴근 후 재활의학과의원을 갔다. 의사선생님은 가장 불편한 '고관절-허리-옆구리' 통증 원인이 왼쪽 등이라 했다. 등에서 뻗어 세 지점에 다다르는 논문 그림을 보여주면서. 전혀 아프지 않은 등 얘기에 당황스럽지만 확신에 찬 목소리로 한 달이면 된단다. 주범이 되는 곳인 등에는 신경차단술 주사를 놓았다. 고관절 가동범위가 좋지 않은 왼쪽 골반에는 근육주사를 놓았다. 그리고는 도수치료를 받았다. 동네 정형외과의원에서는 7만원인 도수치료가 여긴 15만원이었다. 색다른 주사와 도수치료, 뭔가 다르겠지. 기대에 찬 아침은 어김없이 실망을 안겨주었다. 의사선생님에게 통증에 차도가 없다고 하소연했다. 선생님은 먹는 약과 도수치료를 처방했다. 등과 골반에는 왜 주사를 놓은 건지. 내가 지금 느끼는 통증이 낫는 과정인지 악화 조짐인지 가슴까지 답답했다. 눈 가리고 아웅 같아 처방받은 소염진통제와 근이완제는 먹지 않았다.


더도 덜도 말고 녹슨 관절과 뭉친 근육이라도 좀 풀었으면 좋겠다. 운동과 병원에 의심병이 솟구쳤다. 지압원을 찾아갔다. 전국구로 소문난 곳이었다. 70대로 보이는 원장님은 의사나 운동선생도 못 고친 걸 고치고, 의사나 운동선생 몸도 고쳤다고 했다. 근육이 서로 들러붙은 곳(유착)을 찾아내 일일이 풀어주었다. 골반을 중심으로 배, 옆구리, 척추, 허벅지, 어깨까지 손닿는 곳마다 비명이 절로 나왔다. 지압 받을 땐 도망가고 싶지만 받고나면 통증이 사라져 또 생각나게 했다. 유착된 근육만 풀리면 통증은 싹 사라진다고 갈 때마다 희망을 불어 넣었다. 골반이 틀어져서 나타나는 통증이라 골반교정 운동을 수시로 하라 했다. 논문 들이대며 등 염증 지목한 의사보다 꼬리뼈 이상을 운운하며 연관된 통증을 잡아내는 지압원에 믿음이 갔다. 종착역에 다다른 느낌이었다.


퇴근 후 한밤에 지압 받고 출근 전 아침에 교정운동을 했다. 운동은 회사 점심시간에도 하고 화장실 갈 때마다 했다. 꼬리뼈에 좋다는 구르기까지 살갗이 벗겨질 정도로 했다. 통증만 사라진다면야. 한 달이면 통증 잡는다는 소리에 평일이고 주말이고 밤이고 아침이고 간에 지압원과 복습에 꾸준히 임했다. 꾸준함에 비해 통증은 오락가락 했다. 한 달 만에 나으면 남은 회차로 엄마 몸도 풀어드리려 했다. 오버였다. 횟수 다 써도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다. 회사 의자에 앉았다 오면 원점이었다.


집근처 종합병원에 갔다. 신경외과 척추센터다. X-Ray상 허리 L4-5번은 척추협착으로 이미 제구실을 못하고 그 위 L3-4번도 압력이 올라가 있다고 했다. 모든 통증은 척추 때문이려니 했다. 운동도 하지 말고 강한 진통제 먹고 그저 푹 쉬라고 했다. 휴직 6개월 진단서를 받았다. 고관절 언급은 없어 바로 옆 재활의학과 진료도 봤다. 골반 X-Ray 한 장 찍고는 양쪽 허벅지 머리뼈(대퇴 골두)가 똑같으니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했다. 난 이토록 칼로 짼 듯이 아픈데. 진통제는 신경병증성 약으로 정신까지 몽롱해 두 번 먹고 말았다.


가시방석. 회사 의자는 내게 그런 존재였다. 식은땀이 날 정도로 아팠다. 고통 터널 9개월 끝에 회사에 털어놨다. 회사 근처 병원 가서 당장 척추 MRI를 찍어보라 했다. 회사에 자문하러 오시는 위원님마저 과학적이고 근거 중심적인 방법 놔두고 왜 돌아갔느냐며. MRI상 L4-5번 척추협착에는 왼쪽에 석회화가, L3-4번은 디스크탈출증이 생겼다고 했다. 디스크탈출증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 L3-4번에 생긴 건 유감이지만 뒤가 아닌 앞으로 밀려나와 다행이라 했다. 엉덩이 부근 척추기립근에는 지방이 끼어 있어 척추기립근 운동을 많이 하라고 했다. 하루 2시간 이상 걷는 게 가장 좋다며 하체 근력운동도 추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자와의 싸움에서 졌다. 질병휴직 6개월 받았다. 70대 부모와 20대 아이들을 두고 쉰다는 건 내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6년 직장생활 하며 자궁 외 임신으로 응급실을 가든 하지정맥류로 수술을 받든 척추협착으로 신경차단술을 받든 갈비뼈가 골절되고 발목인대가 찢어져도 내 사전에 쉼은 없었다. 통증은 정신까지 곰팡이를 피웠다. 가족부양으로 쉴 수 없지만 가족부양으로 쉬어야 했다. 돈을 쫓자니 일을 해야 하고 몸을 쫓자니 쉬어야 했다. 걸을수록 운동할수록 고관절 통증은 더했다. 아무 것도 안 하자니 불안하고 하자니 맞는 방법인지 조급증과 의심증만 맴돌았다.


- 다음 편에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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