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도장

오 페드로우소에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by 푸시퀸 이지

마지막 날,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입성을 앞두고 다가올 목적지보다 지나간 시간들에 마음이 쓰였다. 산티아고 대성당과 마주했을 때 내 몸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호기심을 쥐어짜며 하루를 열었다. 평소 택시를 즐겨 타지 않지만 원주 터미널과 회사 사이를 오갈 때, 영인이 고3 수시 전형으로 대학교정을 누비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택시 미터기와 함께 돈이 '찰칵찰칵' 올라가던 비트처럼 목적지에 다가갈수록 심장은 쿵쾅댔다. 15km 지점부터 마주치는 표지석들은 어느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은 소중한 책갈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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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시간째 공복, 호텔 바의 또르띠야 하나에 8유로라니, 미련 없이 발길을 돌렸다. 비바람에 꺾인 건지, 그저 나이 탓인지 축 처진 나무들에 자꾸 눈길이 갔다. 구름마저 마지막 날의 아쉬움을 아는 듯 미동도 없었다. 비에 젖어 각질이 벗겨진 나무들은 애처로웠지만, 그것을 부활의 계기로 삼는 듯 했다. 인위적인 상처가 아닌 자연스러운 흉터는 견뎌낼 수 있는 법이니까. 순례길 초반, 초록 세상에 감탄했던 그 마음이 마지막 날인 오늘도 변함이 없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사무치게 그리울 이 풍경을 한껏 눈에 담았다. 비바람 속에서도 건강미를 잃지 않는 나무들처럼, 그 길을 뚫고 걷는 순례자들이 자랑스러웠다. 그동안 걷던 숲길은 양산이 되어주더니 오늘 걷는 빗길은 우산이 되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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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찾은 맛집에서 18시간의 공복을 깼다. 또르띠야와 치즈케이크를 합쳐 8유로. 찰지고 고소한 또르띠야와 씹을 것도 없이 녹아내리는 치즈케이크는 천군만마를 얻은 기분이다. 여기서 중요한 건 8유로라는 수치가 아니라, 그만한 질(Quality)로 ‘제값’을 할 때 느끼는 행복이다. 생장에서 출발한 800km든 포르투갈에서 시작한 250km든, 거리보다 중요한 건 길 위에서 내가 지불한 시간만큼의 값어치를 했느냐는 것이다. 지금 쓰는 이 글 또한 누군가의 시간을 점유할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자문해 본다. 남은 거리 10km 미만. 목적지가 나이 드는 속도만큼 빠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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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내가 살아온 방식을 투명하게 비췄다. 희한하게도 길에서 만난 사람들은 내게 자꾸 '일' 이야기를 꺼냈다. 성악가에서 약사로 전직한 이, 번아웃으로 휴직 중인 마케터, 퇴직 후 새로운 길을 찾는 50대부터 70대까지. 그들이 들려주는 생생한 일터의 기록들이 내 걸음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동안 무심코 지나쳤던 길 위의 무덤들이 마지막 날 추모비 앞에서 발길을 붙잡았다. 4개월이 지난 지금에야 그 장면이 불현듯 떠오른다. 종교적 이유를 떠나, 육체의 한계를 끝내 넘어서려 했던 그 모든 죽음 또한 하나의 '순교'가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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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테 델 고소의 작은 성당에서 마지막 초 봉헌을 했다. 순례자공원에 들어서니 아무런 꾸밈이 없는 커다란 십자가와 몸통이 휜 나무들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 십자가 곁으로 가 내 몸을 거꾸로 세워 십자가와 나란히 섰다. 우의와 가방을 다 벗어던지고 평화(Peace)의 'P'자를 온몸으로 그려내고 싶었다. 비바람에 몸이 흔들렸지만, 더 이상 외부에 흔들리고 싶지 않았다. 내 다리가 곧게 뻗었는지는 오직 내 안의 고유수용감각에만 의존할 뿐, 오로지 내 안의 심지인 코어에만 집중 했다.


멀리서는 휘어 보이던 나무도 사잇길로 들어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하늘을 향해 곧게 뻗어 있었다. 왜 이름이 ‘환희’의 언덕인지 그조차도 직접 몸을 담그기로 했다. 저 멀리 대성당을 가리키는 순례자 동상과 갈리시아주와의 인연을 증명하는 제주도 간세가 나를 환대했다. '게으름뱅이' 뜻인 간세처럼 느림과 여유로 남은 5km를 밟아야 했지만, 동상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대성당을 본 순간 마음이 조급해졌다. 언덕을 내려오자 응원하듯 늘어선 국기 게양대들이 보였다. 세차게 펄럭이는 태극기 앞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사명감을 새기고는 비에 젖은 도시향기를 등에 업고 대성당을 향해 속도를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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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했던 광장은 온통 비에 젖어 있었다. 수많은 인파 속 축제 같은 입성을 꿈꿨건만, 퍼부어대는 빗줄기는 늦게 도착한 나를 매질하는 듯했다. 어제의 즐거운 동행은 잊은 채, 점심을 거르고 일찍 올걸 그랬다는 이기심이 불쑥 고개를 들었다. 요한은 ‘예수님의 신발 끈조차 풀어드릴 자격이 없다’며 자신을 낮추었는데, 하물며 이 길에 발을 디딜 자격조차 없는 내가 감히 예루살렘 입성 때의 그 뜨거운 인파와 함성을 기대했던 걸까. 군중을 바랐던 욕심은 놀이터에서 집에 가기 싫다고 떼쓰는 아이의 마음과 같았다. 완주증을 손에 쥐었어도 성취감보다는 아쉬움이 컸다. 미미한 것에서 위대함을 찾자고 말해왔으면서도, 내심 화려한 환호를 바랐던 내 안의 도둑놈 심보를 다시금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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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베르게 2인실 숙소에 입성하고서야 비로소 안식을 찾았다. 뜨끈뜨끈 샤워 물에 몸을 지지고 지글지글 끓는 스팀기 위에 빨래를 널었다. 창밖의 지는 해를 조명 삼아 침대에 앉아 하루 중 가장 고생한 나의 '발'을 바라보았다. 거센 비바람 속, '물 찬' 신발 안에서도 물 찬 제비처럼 나를 이끌어준 발. 물이 들어차는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가장 낮은 곳에서 묵묵히 온몸을 떠받든 발이 내게 속삭이는 듯했다.


“낮은 자를 섬기라'


누군가 여력이 없어 피해를 보지 않도록, 더 나은 삶을 위해 곁을 지켜주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제야 순례자 여권에 찍힌 세요(도장)들과 완주증이 눈에 들어왔다. 피레네의 고통과 메세타의 고독, 철의 십자가에서의 내려놓음이 발 도장마다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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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룻밤 묵은 목적답게 12시 향로 미사를 위해 11시부터 성당 입구로 향했다. 줄은 일찌감치 길게 늘어져 있었고, 소지품을 일일이 확인받은 후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세계인이 모이는 곳답게 제대를 중심으로 십자가처럼 펼쳐진 좌석과 각각의 방은 화려하면서도 엄숙했다. 모태신앙으로 거저 받은 천주교라 지식도 신심도 부족했던 나는, 오십 평생 처음으로 '성체조배'라는 것을 해보았다. 공간의 위엄인지 하늘의 장엄인지 모를 무언가가 심장을 간질이는 듯했다. 한 시간 전부터 기다린 보람으로 제대 오른편에 자리를 잡았다. 마치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처럼. 미사가 시작된 후 좌석 주변 성당 바닥까지 순례자들로 가득 찼다. 각국에서 온 신부님들이 미사를 집전하셨지만, 그때까지도 내 안에는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미사가 끝나고 수사님들이 밧줄을 당겨 향로가 공중부양 하면서 본격적인 향로 미사가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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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향로가 밧줄에 매달려 바이킹처럼 포물선을 그리며 머리 위를 지날 때, 카메라를 든 손이 어깨와 함께 들썩였다. 팔에 힘이 빠져서가 아니라 감격에 복받친 흔들림이었다. 향로의 안개와 눈물에 가려진 휴대폰 화면을 바라보며, 그날의 감동까지 영상 속에 밀어 넣었다. 신부님의 웅장한 성가와 향로의 쇳소리가 대성당 전체를 감싸며 심장에 꽂혔다. 고개 숙인 머리 위로 스쳐 간 연기는 다시 한번 '낮은 자'의 의미를 새겨주었다. (귀국 후 3개월 뒤, 영적 독서모임에서 무의식중에 '낮은 자'라는 단어를 다시 마주했을 때 그 울림은 비로소 완성되었다.)


* 향로미사 사이드 각도 일부




이 길은 결국 거울이었다. 지나온 사건들과 업무 스타일, 가치관을 모두 비추었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사람과 상황은 향로 연기에 휩쓸려간 듯 뿌연 먼지가 되었고, 애써 떠올리려 해도 생각나지 않았다. 의미 있는 것만 기억한다는 원리에 비추어 보면, 애초에 의미 없는 일들에 너무 많은 신경을 쓰고 살았다는 반증이리라. 길은 과거를 불러왔고 자연은 나를 위로했다. 그리고 그 힘으로 다시 앞길을 내딛게 한다. 산티아고는 목적지가 아니라, 어제에 이은 또 다른 오늘이었다.



*향로미사 전면 풀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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