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아야 믿는 자의 보이지 않는 깨달음

아르수아에서 오 페드로우소

by 푸시퀸 이지

* 30일 이후 글은 <순례일지> 브런치북에 담을 수 없어 발행북을 변경했습니다.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일요일 발행 때 마지막으로 만날께요.


갈리시아 지방임을 증명하듯 비는 오늘도 내렸다. 해의 자리를 비가 차지한 핑계 삼아 출발을 8시 30분으로 늦추었다. 어제 30km를 걸은 뒤라 20km 남짓한 오늘의 거리는 우스워 보일 법도 하지만, 이제 내 긴장도는 그런 숫자에 놀아나지 않는다. ‘짧다’고 인식하는 순간 그 마음이 곧 덫이 된다는 걸, 길의 끝자락에 와서야 깨달았다. 오십 평생 이해가 늦어 늘 늦깎이로 살았지만, ‘작고 미미한 것’을 결코 우습게보지 않는 믿음만큼은 오래도록 가져갈 자신이 있다. 오 페드로우소를 향해 기나긴 비와 같은 마음으로 첫걸음을 뗐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가 가까워질수록 길은 도장 찍는 장터라도 열린 듯 사람들로 북적였다. <오 세브레이로>의 충격으로 요 며칠 가벼운 배낭을 멨으나, 오늘은 십자가를 지듯 큰 짐을 등에 다시 들쳐 메고 우의로 고이 모셨다. 등이 무거워지니 입도 무거워졌다. 몸이 가벼울 땐 촐랑대며 말이 많더니만. 류시화 시인이 말한 ‘깃털의 가벼움이 아니라 새의 가벼움’이 떠올랐다. 이리저리 부유하는 깃털이 아니라, 방향과 목적을 가진 자유로운 새처럼 가벼워지라는 그 은유를 이제야 등에 실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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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구덩이를 뒤집어써도 경탄하던 길이었지만, 빗물에 씻겨 나온 자연은 가히 놀라웠다. 붉은 고사리 쿠션 위에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발을 담그고 있었다. 회사 일로 호주 출장을 두 번이나 갔을 땐 느껴보지 못한 오감의 사치다. 이토록 황홀한 향과 결이라니. 깡마른 몸통을 드러낸 나무들은 3~4kg은 족히 살이 찐 내가 미안할 정도로 애처로웠고, 돌담벽의 가리비조차 작별의 아쉬움을 드러내고 있었다. 오감의 농도야 유칼립투스를 만난 시간차라 할지언정, 당장 어제 본 빗물 젖은 오레오와 당나귀조차 오늘은 슬픔이 할퀴고 간 모습으로 달랐다. 그러고 보면 세상 만물, 매순간이 새롭다 할 터였다. 빗물 안에서 꽃과 풀, 양들과 함께 머무르며 그렇게 <아르수아>와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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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세다 바(Bar)에서 M님이 또르띠야와 애플파이를 시켜주었다. 하몽을 자몽으로 둔갑시켜 잘못 주문했던 전적이 있는 내게 간호해주어 고맙다는 ‘재방송’과 함께 내어주었다. 돌아온 탕자를 맞이해주는 달콤한 환대였다. 완주까지 단 하루, 기대수명이 하루인 사람처럼 서둘러 주변을 둘러보게 된다. 함께 걷는 M님, Y님, S님. 왜 더 사랑을 나눠주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함께 사람에 대한 허기가 밀려와 두 번째 바에서 맥주잔을 부딪쳤다. 마당에는 마치 사랑이 우수수 떨어진 것마냥 눈이 부시게 빛나는 낙엽들이 카펫처럼 깔려 있었다. 가을마저 완주 전날인 것처럼. 각자의 몸 하나하나가 낙엽 이파리가 되어 우수에 한껏 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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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에 도착해 피자집에 들어갔다. 점심에 저녁까지 겸 한 나는 점심 겸 저녁을 먹던 언니들과 함께 했다. 피자에 눈이 반짝이던 언니들에게 대령하기 위해 호기롭게 “베지터블!”을 외쳤는데, 피자가 아닌 베지터블 샌드위치가 나왔다. 실수할까 봐 이번엔 메뉴판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피자를 추가 주문했다. 언니들은 나를 ‘실수투성이’라기보단 마지막까지 어리바리한 ‘한결같은 사람’으로 기억해주리라 믿으며 웃어넘겼다. 그 따뜻한 기운을 품고 싸늘한 빗물을 뚫고 ‘산타 에울랄리아 데 아르카 성당’으로 향했다. 가리비 성당으로 유명한 이곳은 제대 뒤 외벽 전체가 가리비 껍데기로 장식되어 있어, 내 영혼이 한층 더 본질에 가까이 다가온 듯한 경외감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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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 알베르게는 샤워실에 옷 걸 데가 마땅치 않은 데다 샤워기와 거리가 가까워 걸어둔 옷이 다 젖어버렸다. 비에 젖은 몸을 뜨거운 물로 지져야 할 판인데, 물마저 미지근해 닭살이 돋았다. 비 젖은 생쥐 꼴로 알베르게 사장님과 세탁실을 두 번이나 오가며 기계와 씨름했다. 가상화폐 같은 토큰 사용법은 나를 멀고 먼 세탁실까지 몇 번이나 불러냈다. 침대 머리맡에는 전등도 없어 밤 10시와 아침 6시, 강제 소등에 눈꺼풀을 끼워 맞춰야 했다. 하지만 대략 스무 명의 순례자가 한 방에서 마지막 숨결을 공유한다는 사실은 눈에 보이는 모든 불편함을 안개처럼 흡수시켰다.


잠들기 전, 마트에서 산 요플레 네 개를 오늘 함께한 세 명의 언니에게 선물했다. 고작 요플레 하나일 뿐인데, 그것을 받는 이들의 손길은 ‘하늘에서 받을 상이 크다’며 되레 더 큰 축복을 내어주는 듯했다. 어느 신부님이 말씀하셨다. 십일조란 10분의 1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나머지 10분의 9를 허락받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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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은 결국 사람이었다. 도시의 교차로에는 수많은 차들이 무미건조하게 오가지만, 순례자들이 걷는 길게 뻗은 외길 위에서는 희노애락의 관계가 뜨겁게 교차했다. 100km 남았을 때는 자연과의 분리불안으로 눈물이 나더니, 이제는 내 날것을 온전히 드러냈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게 아쉬워 목이 멘다. 아들과 보낸 세월 위에, 아들이 누려야 할 자리를 엄마인 내가 가로챈 듯한 사치스러움이 교차해 눈물이 펑펑 났다. “왜”라고 묻지 않는 이 길에서, 나는 눈치 보지 않고 눈물 콧물 쏟으며 나를 나답게 만들어갔다. 나답게 하는 공간, 나답게 하는 사람들과 남은 오십을 함께 하고 싶다.


피를 나누지 않은 사이도 이토록 마음 한구석이 휑한데 혈연은 오죽할까. 삼대 가족의 가장이라는 완장이 어깨를 짓누르던 시절도 있었지만, 사실 그들이 나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주역이었음을 이제야 깨닫는다. 천국이라는 하늘나라로 올라가기를 바랄 게 아니라, 이미 하늘나라가 가까이 와 있음을. 보아야만 믿는 내게 길은 보이지 않게 일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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