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 숨

숲 상상력과 숲해설가

by 이주형

숲 숨

- 숲 상상력과 숲해설가 -


숲에 가보셨나요? 가보셨으면 언제, 왜 가보셨나요? 거기서 무엇을 보셨나요? 마음은 어떠셨나요? 숲에서 나온 다음에는 어떤 생각이 드셨나요? 또 숲에 가실 건가요?”


이처럼 숲은 물음을 키웁니다. 그 물음에는 아련한 추억과 기대 넘치는 동경이 가득합니다.


제 마음에도 숲이 자랍니다. 유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했던 소중한 추억이 지금도 자라는 숲, 늘 그리운 그 숲이 아직도 마음속에서 숨을 쉽니다. 간혹 살다가 숨이 가빠올 때면 벌의 기습을 받은 우리를 지켜주었던 숲 속 땅굴을 생각합니다. 더 간혹 삶의 길이 보이지 않을 땐 하늘로 가는 길을 찾겠다며 타고 올랐던 등 굽은 소나무 위에 올라 있기도 합니다.


희망이 허기진 날엔 무엇인지도 모르고 시간이 가르쳐 준 그대로 소나무 가지를 꺾어 겉껍질을 벗기고 속살을 씹던 그 시절의 추억을 되새김질합니다. 지금도 그 숲에는 아직 우리의 시간이 흐를 것이라 믿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 뿌리가 여전히 그 숲에서 숨을 쉬기 때문입니다.


그 숨이 지금의 숨을 만들었다는 것을 우리는 너무도 잘 압니다. 그 숨이 숨도 만들었지만, 숨 너머로 새로운 생각도 만들고, 마음도 만들고, 행동도 만든다는 것을 압니다.


그 생각을 사람들은 창의성이라고 합니다.

그 마음을 사람들은 사랑이라고 합니다.

그 행동을 사람들은 용기라고 합니다.

숲은 스스로 지도를 키웁니다. 어찌 보면 숲 그 자체가 지도 인지도 모릅니다. 그 지도의 이름은 숲이 정하지 않습니다. 그 숲에 든 사람들, 그 사람들의 숨이 곧 숲의 이름입니다. 보물 숲, 치유 숲, 놀이 숲, 이야기 숲, 방풍 숲, 수호 숲 등 그 이름은 무궁무진합니다. 어떤 숲이든 살아있는 숲은 결코 이름을 고집하지 않습니다. 숲은 자기가 자신을 결정하기보다 자신을 찾는, 또 찾을 이들을 위해 자신을 무한대로 열어둡니다. 그 공간에서 숨을 가진 모든 생명체는 모두가 함께 살아갈 보물 같은 삶의 지도를 만듭니다.


그래서 숲을 문학 장르로 말하면 수필에 가까울지도 모르겠습니다. 물론 소설적 숲, 극적 숲, 시적 숲도 가능합니다. 왜냐면 숲은 상상력의 보고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보다 수필적 숲이 훨씬 더 마음을 끕니다. 더군다나 "숲"은 "수풀"의 줄임말이라는 사실이 더욱 그렇습니다. 수필을 읽으면 숲에 든 것 같은 마음이 들고, 또 숲 향이 느껴지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수풀과 수필! 물론 다릅니다. 하지만 "형식 없이 자신의 경험을 붓 가는 대로 쓴 글"이라는 수필의 정의를 생각하면 숲은 다른 장르보다 수필에 훨씬 더 가까움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수필에도 상상력이 있습니다. 이 상상력은 소설과 시의 허구적 상상력과는 다릅니다. 수필의 상상력은 생명, 즉 삶에 뿌리를 둔 상상력입니다, 숲 또한 엄청난 상상력을 생산하지만, 그 상상력의 근원은 곧 숨이 있는 생명, 숨이 있는 삶입니다. 숲이 살아 있다는 것은 바로 숲은 생명체들의 삶의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숲은 뿌리가 길어 올린 다양한 생명이 숨을 쉬고, 삶을 영위하는 장소입니다. 그런 숲에 발을 내딛는 순간 그 발이 어떤 발이든 발은 뿌리가 되어 다시 숨을, 삶을, 생명을 짓습니다.


숲은 숨입니다. 숨에는 차별이, 불평등과 불공정이 있을 수 없습니다. 숲 또한 그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