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중학교 학교정원 이야기 11

1년 만의 날갯짓 두루미꽃

by 이주형

학교정원 이야기 11

-1년 만의 날갯짓 두루미꽃-

꽃 한 송이에는 수많은 정원이 자랍니다. 꽃잎 한 장에도 수많은 하늘이 생명을 키웁니다. 두루미의 날갯짓 한 번에 수많은 정원의 하늘이 열립니다.


하늘 위의 삶에는 무모한 경쟁은 없습니다. 다만 인정하고, 배려하고, 기다릴 뿐입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누군가의 강요는 더 아닙니다. 정원에 뿌리를 내린 생명들의 DNA에는 이런 것들이 자동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정원에는 포기란 없습니다.

마음에 정원을 열고서야 포기는 사람에게만 자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포기가 마음을 뒤덮은 적이 있었습니다. 포기에 갇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는 숨마저 간절히 포기를 찾았습니다. 그러다가 천운으로 숨이 정원과 연결되었습니다.

숨이 숨을 포기하려 할 때마다 정원은 나와 함께 있었습니다. 정원은 내 손에 길을 들려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 갖가지 식물의 이름표를 놓아주었습니다. 어떻게 하든 알아서 하라며 정원은 저만치서 제 할 일을 했습니다.

식물에게도 표정이 있다는 것은 정원이 내게 준 가장 큰 가르침이었습니다. 그 표정에는 비굴함이나, 나약함 따위는 없었습니다. 저마다의 소신 있는 표정으로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설령 기다림에 대한 보상이 없어도 자신들은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뿌리를 내린 것만으로도 삶의 도리를 다했다는 결연한 의지의 표정을 지었습니다. 그런 표정은 전이가 빠릅니다. 그런 표정은 사람을 스스로 움직이게 합니다. 정원이 아니었으면 정말 나는 어떻게 되었는지 생각만 해도 죄스럽습니다.

2024년부터 학교에 정원이 열리고, 이사 온 식물들이 저마다 자신의 이름을 내건 새 보금자리에 뿌리를 내렸습니다. 1년이 지난 지금 45종의 식물들은 모두 저마다의 숨을 땅으로부터 허락받았습니다. 감사하게도 그 숨을 따라 나도 숨을 쉽니다.

식물을 대하는 사람의 모습은 두 가지입니다. 지나친 관심, 또는 철저한 무관심입니다. 이 또한 순서가 있습니다. 그 방향은 관심에서 무관심입니다. 관심에서 무관심으로 가는 중간에 어김없이 나타나는 현상은 "억울함"과 "탓"입니다. 자신은 사랑을 듬뿍 줬는데 식물이 그 사랑을 거부했다는 억울함 가득한 원망 타령! 그 타령이 끝나면 철저한 무관심 속에 식물은 숨을 다합니다.


정원의 식물들과 숨을 나누면서 안 사실이 있습니다. 식물을 심는 것은 올해가 아니라 내년을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올해 심었다고 해서 당장 올해 꽃을 보고, 열매를 얻으리라는 것은 역시 사람의 일방적인 마음입니다.


2024년에 심은 식물 중에 유독 더 많이 손과 마음이 간 식물이 있습니다. 다른 식물은 심은 지 몇 달이 안 되어 모두 푸르게 잎을 내고, 줄기를 세웠지만, 두루미꽃과 매미꽃은 시간을 역행하듯 매일 쇠약해져 갔습니다. 그리고 한 달이 안 되어 모두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지나친 관심 때문은 아니었는지 매일매일 반성했습니다. 그러다 정원에 가을이 들고, 겨울을 지나면서 그들을 잊었습니다.

그런데 2025년 4월! 푯말만 덩그러니 있던 곳에 싹이 나기 시작하더니 채 열흘도 안 되어 못 보던 잎이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잡초인가 싶어 뽑으려고 하다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그대로 두었습니다. 그것이 신의 한 수였습니다.

두루미꽃이 드디어 자신의 숨 길을 찾은 것이었습니다. 두루미의 날갯짓을 닮은 꽃 두루미꽃. 자칫하면 조급증과 무식함 때문에 두루미의 날개를 꺾어 놓을 뻔했다는 사실에 매일 두루미꽃을 보며 지난 시간을 반성하였습니다.

그리고 “뿌리가 죽지 않으면, 때가 되면 언제든 산다.”라는 사실을 명확하게 알았습니다. 그것은 식물뿐 아니라 사람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래서 다짐했다, 세상 어떤 일이라도 섣불리 판단하지 않기로, 그리고 학생들의 뿌리만큼은 꼭 살려야겠다고.


작년에는 꽃을 보지 못한 식물들이 꽃으로 정원의 문을 여는 나무와중학교 학교 정원에서 오늘도 학생들과 함께 저마다의 숨길을 찾습니다. 그 앞에 두루미꽃이 힘찬 날갯짓으로 앞장섭니다.


- 1년 만의 날갯짓을 시작한 두루미꽃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