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와중학교 학교 정원 이야기12

정원 탐사대와 섬시호

by 이주형

학교 정원 이야기12

- 정원 탐사대와 섬시호 -


“농작물은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


고등학교 졸업까지, 아니 어쩌면 성인이 되었어도 큰 소원이 있었습니다. 일요일이나 방학, 휴일에 단 하루라도 눈치 보지 않고 잠을 실컷 자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는 팔순을 넘기신 지금도 밭을 집으로 여기고 사십니다. 계절과 날씨 상관없이 과수원에서 해를 맞이하시고, 달과 별을 배웅하십니다. 위에 인용한 말은 부모님의 신조입니다


그 하루하루가 모이고 모여 지금의 내 모습을 만들었다는 것을 너무 잘 압니다. 하지만 잠을 이길 수 없었던 그때에는 부모님의 부지런함에 잠을 빼앗겼다는 철없는 생각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새벽이슬 마르지 않은 나무 밑으로 도망가 잠의 끝자락을 놓지 않은 적도 있었습니다. 그것이 그때 할 수 있었던 최고의 맞섬이었습니다. 그러면 채 자리를 만들기도 전에 여지없이 나를 부르는 땀에 젖은 소리가 들렸습니다. 귀를 막아 보았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래도 버티고 버텼습니다. 그럴수록 나를 부르는 소리는 천지를 깨우고도 남을 만큼 커졌습니다. 그 소리에 비례하여 한숨은 커졌고, 그 한숨에 고개가 젖힌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나를 내려다보고 있는 참나무와 눈이 마주쳤습니다.


그때 본 참나무의 너무도 푸른 눈빛을 나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피곤 가득한 아버지의 목소리조차 푸르게 만든 그 빛! 그 빛은 어린 내게 별이었고, 길이었고, 힘이었습니다. 나는 뭔가에 홀린 듯 과수원으로 갔고, 돌을 골라내고, 풀을 뽑았습니다. 그러다 힘이 들면 멀리서나마 참나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것은 습관이 되었으며, 지금도 힘이 들 때면 참나무를 찾습니다. 그러면 숨이 안정을 찾습니다.


지난 5월에는 학교에 있을 시간이 거의 없습니다. 학교에 있을 때는 일과의 반은 정원에서 지냈습니다. 정원에서의 시간은 하루의 시간도 부족했지만, 그래도 주어진 시간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내 마음을 아는지 정원의 식물들도 최선을 다해 자신의 역할에 충실했습니다. 지난겨울을 건너온 이야기를 식물은 잎으로, 꽃으로 이야기하기 바빴습니다.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너무 즐거웠습니다. 그 즐거움이 나를 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이야기를 출장, 연수를 핑계로 지난 5월에는 거의 듣지 못했습니다. 학교 밖에 있으면서 늘 마음에 밟히는 것은 정원의 식물이었습니다. 학교 정원에는 멸종 위기 식물, 자생 식물 등 인간의 욕심과 부주의로 사라질 위기에 처한 식물이 많이 있습니다. 어떻게든 잘 키워보겠다고 데려온 생명들인데, 역시 내 욕심이었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식물에게 무관심의 한 달은 치명적인 시간입니다. 특히 가뭄이 심한 시기에는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5월 마지막 주는 다행히 학교에서 업무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제일 먼저 간 곳은 학교 정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정원 초입에서 나는 장성처럼 그 자리에 멈춰버렸습니다.


“교장 선생님, 도대체 어디에 다녀오셨어요.”


이른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학교 정원에는 학생들이 있었습니다.


“빨리 이리 와 보세요.”


나를 발견한 학생들이 우르르 내게로 왔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한 학생이 내 손을 끌고 정원으로 들어갔습니다. 마치 나는 정원에 처음 온 사람처럼 학생들이 이끄는 곳으로 갔습니다.


“교장 선생님, 이것 보세요. 섬시호예요! 섬시호가 꽃을 피웠어요!


섬시호는 멸종 위기 Ⅱ급 식물입니다. 나도 섬시호의 꽃을 본 적이 없습니다. 또 지난해에 유독 가장 약했던 종이 섬시호였습니다. 그런데 그 섬시호가 꽃을 피웠다니, 놀라웠습니다. 그 꽃 또한 환상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내겐 섬시호도 섬시호이지만, 내가 없는 동안 정원을 돌본 학생들이 섬시호가 피운 꽃보다 더 환상적으로 보였습니다. 학생들은 내 손을 이끌고 삼백초로 향했습니다. 삼백초 역시 멸종 위기 Ⅱ급 식물입니다.


“교장 선생님, 삼백초 식구가 작년보다 두 배가 되었어요.”


아이들이 목소리에서 나는 그 옛날 내가 본 참나무의 푸른빛을 볼 수 있었습니다.


“교장 선생님이 안 계시는 동안 정원 탐사대 학생들이 교장 선생님보다 더 자주 정원을 찾았어요.”


학생들과 함께 계시던 선생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지구 기후 위기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지구인 모두가 나무와중학교 “정원 탐사대”의 마음을 갖는다면 분명 인류가 당면한 절체절명의 위기인 기후 위기도 곧 극복될 것이라고 나는 확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