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1 교육철학자와의 대화
"아빠, 학교는 왜 가는 거야?"
두둥!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습니다. 언젠가는 한 번은 부딪히겠거니 했지만, 직접 맞닥뜨리고 나니 정신이 아찔 했습니다. 만약 자녀나 학생이 진지하게 이렇게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정말 이 대화만은 피하고 싶었습니다. 왜냐하면 해줄 말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과서에 나오는 답을 앵무새처럼 반복한다면 아이는 더 이상 저와 대화를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자꾸 도망가려고 하는 정신을 붙잡는 것도 일이었습니다. 회피는 도피보다 더 좋지 않은 방법인지 알지만, 회피라는 말이 마음을 점령 하기 직전입니다.
중학교 1학년인
아이는 코로나 19에 발이 묶여 아직 중학교 자기 교실 문도 못 열어봤습니다.
코로나 19 때문에 아이는 학교 대신 학원을 다닙니다. 학원 다니는 게 힘 들어서 그런가라는 생각이 순간적으로 들었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장이라도 학원을 끊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대한민국 학부모인 저는 절대 그럴 수 없을 것입니다.
"학교 선생님들은 우리를 학원에 맡겼어. 우리는 학원 학생이야."
얼마 전 아침을 먹으면서 아이가 한 말이 떠올랐습니다. 학교에 대한 서운함이 커서 저러나 싶다가도 그건 아니라는 생각이 바로 따라왔습니다.
아이가 답을 기다립니다. 속이 탑니다. 마른 입은 말을 만들지 못했습니다. 시간에 떠밀려 입은 세상에서 가장 비겁한 말을 하고 말았습니다. 말 그대로 떠넘기기 권법입니다.
말하기를 연구하는 사람들은 이것이 학생들의 생각을 자극하고, 대화 참여를 이끌어낸다고 하지만, 저는 생각이 많이 다릅니다. 물론 그런 경우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본 경우는 대부분 답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쓰였습니다.
"너는 왜 가는 거 같아?"
답이 궁금했습니다. 아이는 조금의 지체도 없이 바로 이야기합니다.
"그냥 시험만 치면 되잖아, 수행평가만 하고. 학교는 그게 다잖아. 그런데 왜 가?"
누가 이 아이에게 틀렸다고 말해주실 분 안 계십니까? 아이의 말이 틀리지 않았기에 저는 절대 말을 못 합니다. 꿈, 희망, 미래, 자기 계발 등과 같은 아이를 속이는 사탕발림 말은 더더군다나 할 수가 없었습니다. 어른들은, 부모들은 궁지에 몰리면 습관적으로 하는 말하기 방식이 있습니다. 바로 엄포 주기입니다.
"그럼 학교 안 갈래?"
이것은 점잖은 표현입니다.
"그럼 학교고 뭐고 다 떼려 쳐. 이제부터 니 인생은 니가 살아. 그리고 절대 뭐 해달고 하지 마."
이게 훨씬 더 보편적인 모습입니다.
저는 미안하게도 예전에는 늘 두 번째의 말을 아이들에게 하였습니다. 이 말을 하면서 부모들은 아이들이 겁을 먹거나, 아니면 미안함을 느껴 자신의 말을 스스로 주워 담기를 바랍니다. 정말 이보다 더 순진한 생각이 어디 있을까요! 다행히 아이는 저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그래서 말합니다.
"가야지!"
이제 마지막 일이 남았습니다. 두 번 다시는 그런 무서운 말을 하지 못하도록 깔끔하게 매듭을 짓는 일입니다.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최대한 제삼자의 입장되어 물었습니다.
"왜?"
감동할 마음의 준비도 하지 못했는데 아이가 바로 말을 합니다.
"친구 만나러!"
".................."
"이미 누구랑 학교에 갈지 다 정했어. 그리고 같이 놀 그룹도 다 정해져 있어."
.
저는 속으로 외칩니다.
"공부는 필요할 때 하면 돼. 정말 아프지 않고, 씩씩하게만 커다오!"
그런데 왜 그 말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 걸까요! 역시 저는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학부모입니다.
아이는 사각 학교만 그립니다.
"정말 왜 학교를 다녀야 할까요?"
(*글 : 아빠 * 그림 : 딸 이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