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써 시험공부를 해서 기왕에 대학에 들어왔다면, 반드시 지식을 통해 머리에 전구가 들어오는 경험을 해야 한다. 자루에 갇혀 있다가 튀어나온 고양이처럼 그러한 사치스러운 지적 경험을 찾아 캠퍼스를 헤매야 한다. 그리고 입시를 위해 보내야 했던 그 지루했던 시간에 대한 진정한 보상을 그 환한 앎에서 얻어야 한다. 세상에는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할 수도 있는 다른 종류의 공부가 있음을 영원히 모른 채로 죽지 않기 위해서." -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김영민)
이 부분을 읽은 뒤에 더 이상 책을 읽을 수가 없었다. 요즘 내가 이 고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물아홉, 나는 여전히 진로를 고민한다. 열아홉에는 대학 입시를 고민했고, 스물세 살에는 교사가 되어야 하는지를 고민해야 했다. 기나긴 고민과 취업 준비 끝에 들어온 항공사에 만족하지만 고민은 끝나지 않는다. 특히 업계에 먹구름이 드리워 비행기가 뜨지 못하는 요즘은 더 그러하다.
진로 고민은 터를 옮겨도 끝나지 않는다. 업계가 어려워지기 전, 처음 근무했던 항공사에서도 꽤 오래 고민을 했다. 다른 업계로 다시 취업 준비도 해보고, 코딩도 배워보고 심지어는 심리상담 대학원에 가기 위해 온라인 강의도 들었다. 이리저리 기웃대 봤지만, 역시나 제일 재밌는 건 항공이었다. 그래서 여전히, 4년이 훌쩍 넘은 지금도 이렇게 항공사에 있다.
그런데 지금 회사는 물론이고 이 업계가 대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 그리고 나는 어떻게 두 다리를 내리고 서있는지 모르겠다. 흐르지 못하는 강물 속에 꽁꽁 얼어붙은 돌이 된 기분이다. 경영 관련 부서가 아니다 보니 비행기가 몇 편 뜨는지는 알아도, 얼마나 입출국을 막는지는 알아도 영업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는 알지 못한다. 하루에 몇 대 뜨지 않는 비행기를 보면 모르는 게 더 낫다는 생각도 든다. 6월까지 예정되어있던 휴직이었지만 이제 그 계획을 늘려 12월까지 작성해야 한다.
작년 10월, 직무교육에 반해서, 정말 오랜만에 했던 공부가 너무 재밌어서 이 업계에 오래오래 머물자고 다짐했었다. 그래서 대학원에 진학했고 공부를 하면서 그 답을 찾으려고 했다. 그런데 강의가 온라인으로 전면 진행되면서 5월인 오늘까지도 대학교 정문에 발도 디뎌보지 못했다. 교수님 얼굴조차 보지 못한 채, 직장인 대학원의 가장 큰 장점이라던 네트워킹의 운도 떼어보지 못한 채 한 학기가 끝나간다.
학부시절 교양 수업에서 교수님이 해주셨던 말씀이 아직도 생각난다. 교양으로 들었던 경영대 수업이었는데 수강생은 대부분 1-2학년이었다. 교수님은 우리에게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더 열심히 배우라고 했었다. 대학이 인생의 목표였던 10대를 마무리 지은 나에게 꼭 필요한 말이었다. 그 말이 사치스럽게 지적 경험을 하라는 뜻 아니었을까. 필요에 의한 대학 입시 공부가 아닌 진심으로 좋아하는 공부를 찾으라는 뜻 아니었을까.
대학교 캠퍼스에서 찾지는 못했지만 사회에서 마음에 드는 공부를 찾았다. 학부 전공보다도 더 재미있고 20대 때 했던 공부 중에 가장 마음에 드는 공부다. 그렇다면 나는 이 공부를 오래오래 할 수 있을까? 매일매일 좋아하는 공부를 하고 책을 읽다 보면 이게 내 업이 될 수 있을까?
알듯 말 듯,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진로의 가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