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근무하던 회사는 아메다바드에 있는 큰 산업단지, Sanand GIDC에 위치해 있었다. GIDC는 Gujarat Industrial Development Corporation의 약자로, 구자라트주에서 운영하는 산업단지다. Sanand는 동네 이름인데, 평화롭고 조용한 농촌 마을이 구자라트를 대표하는 산업단지로 바뀐 것은 바로 타타 때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타타는 구자라트에 정착한 대표적인 파르시 출신의 기업 집단으로, 인도에서 200년 넘게 성장해왔다. 인도인에게 가장 존경받는 회사를 물어보면 단연 타타가 꼽힌다. 인도에서도 가장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손꼽히며, 복지와 급여 측면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직원들은 안정적인 근무 환경과 다양한 혜택 덕분에 회사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인도 북동부에 잠셋푸르라는 지역에 가면 타타가 모든 비용을 대며 운영하는 도시가 있을 정도로 국가에 기여하는 바도 크다. 또한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기부를 하는 집단이 타타그룹이다. 이러한 요소들이 타타가 오랫동안 인도인들에게 존경받는 이유 중 하나다.
타타 브랜드는 인도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자동차(타타차), 철강(타타스틸), IT(TCS), 호텔(타즈호텔), 항공(에어인디아, 비스타라항공)부터 일상 생활에서 만날 수 있는 스타벅스(타타 합작), 쇼핑(타쉬니크, 웨스트사이드)까지 종류가 다양하다. 심지어 소금도 타타솔트가 유명하고, 한국에는 타타대우상용차도 있어서 한번쯤은 들어봤을 회사다.
"따따모따르 이다르 페헬래 아야 타!" (타타자동차가 여기로 맨 처음에 왔어요!)
첫 출근을 위해 산업단지에 들어선 날, 운전기사인 둘싱이 이렇게 말했다. 영어로는 TATA라고 적기 때문에 우리는 '타타'라고 발음하지만, 정확한 현지 발음은 '따따'가 맞다. '따따'이건 '타타'이건 여기 산업단지에 처음 입주한 기업이 타타자동차라고 하며, 큰 회사라고 알려준다. 단지 초입에는 타타자동차 협력업체들이 모여있는 'TATA Vendor Park'도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이 얘기를 듣고 인터넷을 찾아보니 타타차의 구자라트 진출에는 조금 다른 스토리가 있었다.
2006년, 타타차는 인도 국민을 위한 1랙 루피 미만의 초저가, 초소형 승용차 Nano를 생산한다고 발표했다. 고심 끝에 인도 북동쪽에 위치한 웨스트뱅갈주 Singur 지역에 공장을 설립하기로 결정하고 토지를 확보했다. 하지만 당시 웨스트뱅갈주 정부와 의회의 복잡한 행정 처리, 그리고 반대하는 농민들의 집회로 공장 설립은 지연되고 있었다. 이 상황을 기회로 여긴 당시 구자라트주의 모디 주총리는 파격적인 행정 간소화와 토지 확보에 대한 확신을 타타차에 어필했다. 결국 타타차는 파격적으로 웨스트뱅갈에서 구자라트로 이동했고, 그곳이 바로 Sanand GIDC였다. 타타차를 구자라트주로 유치한 모디 총리는 이때부터 더욱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다.
구자라트에서 가장 큰 회사 중 하나인 타타는 내가 있던 Sanand GIDC에서 거의 터줏대감이다. 인근에 수많은 회사들이 타타차를 위해 생겨난 협력업체들이었고, 우리 회사도 타타차에 중요한 제품을 공급하는 회사 중 하나였다. 그러다 보니, 타타차에 일이 있던 없던 자주 얼굴을 비추고 고객사를 관리해야 하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게 우리 직원이든 내가 되든 말이다.
"오늘 오전 11시에 타타 전기차 공장에서 미팅이 있습니다. 함께 가시지요!"
자동차 고객사를 전담하고 있는 Pankaj 팀장이 아침에 내 방에 찾아와 함께 방문할 것을 권했다. 그날은 평소 가던 타타차 공장에 가는게 아니었다. 포드가 시장에서 실패하고 인도 시장에서 철수 할 때 수천억을 들여 만든 구자라트 공장을 타타가 헐값에 인수한 공장이었다. 위치도 기존 타타차 공장에서 10분 거리에 있고, 공장 대지, 설비, 인력까지 모두 완벽하다고 할 수 있는 공장이었다. 타타는 새롭게 공장을 인수하여 가동을 시작했는데, 이후 첫 번째 방문이었다.
타타차는 여러 번 방문했지만, 이곳은 새로운 공장이니 새로운 얼굴들에게 인사를 잘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공장 안에 들어가니 아직 지우지 못한 포드의 흔적이 보였다. 우리는 포드와 인연이 깊어서 마음이 쓰였다. 사무실에 들어가니, 처음 보는 얼굴이 아닌 자주 보던 친구인 구매 담당자 Dev가 있었다. 기존 타타 공장에서 우리를 많이 도와주던 파트너였는데, 승진해서 새로운 공장으로 이동했다고 한다. 얼마 전에도 만났는데 이렇게 새로운 곳에서 다시 보니 너무 반가운 나머지 서로 얼싸안고 기뻐했다.
Dev는 최근 인수하여 운영 중인 공장을 보여주며 설명을 이어갔다. 신규 공장은 전기차 생산 허브로 운영할 계획으로, 실제로 공장도 타타자동차 산하의 타타 전기차라는 새로운 법인의 소유였다. 연간 25만 대 규모로 최첨단 설비를 갖추고 있었고, 교대조를 확대하면 40만 대까지 가능한 대형 공장이었다. 흥미롭게도 라인 최적화 작업은 몇 개월 동안 준비했는데, 그 작업을 한국 업체가 도맡아서 했다고 한다. 현재는 타타의 시그니처 모델인 Nexon이라는 차종만 생산하지만, 25년부터는 새로운 모델이 추가될 예정이라고 한다.
인도 승용차 시장에서는 일본의 스즈키와 한국의 현대, 기아차가 시장을 주도하고 있으며, 그 뒤를 타타자동차가 따라가고 있다. Big 3 회사 중 인도 토종 회사는 타타차가 유일하다. 그래서인지 타타차는 인도 자동차 시장에서 자존심과 같은 존재다.
2000년대 초반 타타차의 점유율은 4~6%에 불과했는데, 지금은 15%까지 올라왔고, 앞으로의 성장세는 더욱 기대가 된다. 왜 2000년대 초반에 실적이 좋지 않았냐고 직원들에게 물어보니 재미있는 대답이 들려왔다. 과거 인도 국민들을 위해 Nano라는 초소형, 초저가 모델을 출시했는데, 이때 국민을 위한 차를 생산하는 회사라기보다는 저렴한 차를 만드는 업체라는 이미지가 굳어져서 인도의 중산층에게 외면받았다는 업계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다고 한다. 이후 모델을 모두 갈아치우고, 기능을 업그레이드한 덕분에 점유율이 올라간 것이다.
승용차 시장을 더 세분화해서 전기차 시장만 보면 타타는 거의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인도 승용차 1위인 마루티스즈키가 25년에야 첫 전기차 모델을 내놓을 것으로 보이는 상황에서 타타는 인도 전기차 시장에서 90%에 육박하는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다. Nexon, Tiago, Tigor에 이어 24년 8월에는 Curvv라는 신규 전기차를 출시함으로써 전기차 시장에서 압도적인 모델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타타를 뒤따르는 MG, 마힌드라 같은 후발주자들은 겨우 1~2개 모델로 버티고 있어 타타차를 따라잡기엔 역부족으로 보인다. 전기차 생태계를 더욱 효율화하기 위해 타타는 배터리와 구동모터를 직접 생산할 계획도 가지고 있으며, 구자라트에서 타타 그룹사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Dev와의 미팅을 마치고 나오며 그의 자신감을 느낄 수 있었다. 이곳은 포드가 있을 때, 남아있는 재고와 채권을 처리하기 위해 왔던 곳인데, 그때 만났던 위축돼 있던 포드 직원들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고 하지 않나? 때가 올 때까지 버티고 버텨낸 자가 강한 자임을 깨닫게 된 시간이었다. 타타가 보여준 것처럼,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도 돛을 세우는 자가 앞서간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