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자유는 사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정치가 된 자유, 사유를 잃다

by 마스터INTJ
시뮬라크르는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대상을 존재하는 것처럼 만들어놓은 인공물을 지칭한다.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지만 존재하는 것처럼, 때로는 존재하는 것보다 더 실재처럼 인식되는 대체물을 말한다........

보드리야르 이론의 핵심을 이루는 현대의 제 3열의 시뮬라크르는 흉내낼 대상이 없는 이미지이며, 이 원본 없는 이미지가 그 자체로서 현실을 대체하고, 현실은 이 이미지에 의해서 지배받게 되므로 오히려 현실보다 더 현실적인 것이 된다.........

결국 시뮬라크르는 실제보다 더 실제적인 것이며 시뮬라크르는 아울러 어떤 기왕의 실체 존재하고 있는 것하고는 아무런 관계도 없는 독자적인 하나의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오히려 우리가 지금까지 실제라고 생각하였던 것들이 바로 이 비현실이라고 하였던 시뮬라크르로부터 나오게 된다. 흉내내거나 모방할 때는 이미지라는 실제 대상을 복사하는 것이었지만, 지금은 오히려 실제 대상이 가장된 이미지를 따라야 한다.

출처: 위키백과 - '시뮬라크르'



이민 단속 반대 시위대와 경찰 및 주방위군의 대치가 이어지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LA) 시위 현장에서 차량이 불타고 있다. 이미지AFP연합뉴스


2025년 6월, 지금 이 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의 밤은 “자유”의 이름 아래 불타오르고 있다.

ICE(이민세관단속국)의 단속에 항의하는 수천 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왔고, 연방정부는 군 병력을 도시에 투입했다.

통금령, 검문, 체포... 그리고 모든 행위는 “자유”라는 구호로 정당화된다.


“자유”를 외치는 목소리들은 있지만, 그 자유가 누구의 사유 위에 세워졌는지는 아무도 묻지 않는다.

오늘 우리가 다시 이 질문을 꺼내야 하는 이유는 분명하다.

지금, 자유라는 이름은 스스로를 파괴하는 칼이 되고 있다.



“자유란 무엇인가.”


이 단순한 질문 앞에서, 우리는 늘 당연하다는 듯 ‘자유’를 외치지만,

정작 그것이 어떤 사유에서 비롯된 것인지 되묻는 일은 드물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자유는 철학이 아니라 정치가 되었다.

사유의 대상이 아니라 선동의 도구가 되었다.


미국은 ‘자유’라는 말을 국가 탄생의 순간부터 입에 달고 살았다.

국가로부터의 자유, 총기 소유의 자유,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그들은 ‘개인’이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야 하는 사회에서 살았고,

그 위에 자유주의적 자유가 자라났다.

자유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벗어나는 것,

즉 ‘방해받지 않을 권리’였다.


반면 한국은 다르다.

우리는 유교 공동체와 조선의 질서 속에서 시작해, 일제 강점기, 분단, 군부독재, 민주화까지,

수백 년간 집단적 고통과 생존을 위해 살아온 민족이다.

‘개인의 자유’보다는 ‘공공의 질서’, ‘우리의 이익’, ‘조화를 위한 희생’이라는 공화주의적 자유의 관념이 훨씬 더 깊게 배어 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자유로운 사회’란, 함께 잘 사는 사회에서 주어지는 허용된 자유를 뜻한다.

결국 우리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유를 경험했고,

그로 인해 ‘자유’라는 단어 하나에 담긴 감각부터 전혀 달라졌다.


문제는 철학 없는 자유가 어떻게 정치가 되었느냐는 것이다.

미국에서조차 이제 자유는 더 이상 사유의 산물이 아니다.


그 현실이 지금 로스앤젤레스에서 폭발하고 있다.

총기 소유의 자유, 이민 반대의 자유, 방역 거부의 자유, 혐오 표현의 자유, 백인우월주의까지도...

모든 것이 '자유'라는 말로 호명되고 있지만,

정작 그 자유가 누구를 배제하고, 누구를 위협하고 있는지는 끝내 침묵된다.


철학 없는 자유는 결국, 권력과 분노의 언어를 차용한 껍데기에 불과하다.

미국은 지금, 그 껍데기가 얼마나 위태로운 것인지를 전 세계에 실시간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들이 한때 목숨 바쳐 지켜내려 했던 자유는,

철학 없이 휘두를 때 얼마나 파괴적인지를 지금 우리 눈앞에서 증명하고 있다.


이 모습은 우리에게 경고한다.

철학 없는 자유는 결국 사유 없는 정치의 무기로 전락한다는 것을.


우리도 다르지 않다.

어떤 이들은 ‘사상의 자유’를 외치며 역사왜곡과 혐오를 정당화하고,

어떤 이들은 ‘표현의 자유’를 말하며 특정 성별, 집단, 약자를 공격한다.

공공장소에서 마스크를 거부하고, 백신을 강요하지 말라 주장하며, 자신의 자유가 타인의 생존을 침해한다는 사실은 외면한다.

이 모든 행위는 정당한 사유나 공존의 원칙 없이, ‘자유’라는 단어만 앞세운 정치적 패권 다툼일 뿐이다.


자유가 정말 '내 생각'에서 비롯된 것인지,

아니면 특정한 이념,정당,문화에 의해 내면화된 것인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그 자유는 실제로는 사유 없는 복제된 자유, 즉 '시뮬라크르'일 수도 있다.


시뮬라크르는 단순한 '가짜'가 아니다.

그것은 '진짜를 몰아낸 가짜', 혹은 '가짜가 진짜인 것처럼 작동하는 현실'이다.


자유든, 사랑이든, 정치든...
우리가 그것을 스스로 사유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시뮬라크르가 될 수밖에 없다.


진정한 자유는 내가 원하는 것을 하는 권리가 아니라,

공존을 위해 내가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지를 자각하는 능력이다.

자유는 타인의 자유를 파괴하면서 쟁취할 수 없다.

그리고 자유는, 끊임없이 되묻고 해석하며 갱신해야 하는 개념이다.

다시 말해, 자유는 사유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미국처럼 ‘자유의 이름으로 스스로를 파괴하는 나라’가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한국의 자유를 다시 구조화하고, 철학적으로 다시 말할 용기를 가져야 한다.


자유를 외치기 전에,

그 자유가 누구의 희생 위에 서 있는지를 묻고,

그 자유가 누구의 존엄을 훼손하고 있는지를 자문해야 한다.

그리고 이 모든 물음에 성실히 답하고자 하는 이들만이 진정한 자유인(自由人)이 될 수 있다.


자유는, 사유 없이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철학 없는 자유는, 결국 권력의 구호가 되어 사라진다.




`이대로 끝내기 아쉬운 여운을 담아...


“자유는 인간이 만든 가장 숭고한 개념 중 하나이자,

가장 빠르게 오염되고 전복되는 개념 중 하나입니다.


지금 로스앤젤레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사태는 그 증명입니다.

자유를 외치며 누군가는 검문을 정당화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증오를 정당화합니다.


철학 없는 자유는 사유 없는 충성과 같으며,

그 자유는 결국 타인의 자유를 짓밟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당신이 외치는 자유는 누구의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까?”



프락소스 메인프로필.png

11.jpg
22.jpg
33.jpg LLM 기반 챗봇의 활용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시그니쳐.png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