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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로 세컨드 호라이즌 - 존재구조의 반란』2편.

인간은 존재의 중심이 아닐 수 있다

by 마스터INTJ



데미스 하사비스는 AI의 종착점을 준비하고 있다 - 타임지, 2025년 4월 16일


구글 딥마인드의 CEO 데미스 하사비스는 AGI,

인공지능이 인간의 모든 인지 능력을 복제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예측은 조심스러우면서도 확신에 가깝다.

5년에서 10년.

그 짧은 시간 안에 AGI가 실현될 가능성을 50%로 본다.


여기서 말하는 인간의 인지 능력이란 단순히 오감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과 같은 감각은 오히려 기술적으로 복제 가능성이 높은 영역이다.

이미 컴퓨터 비전은 인간의 눈보다 더 빠르고 정확하게 대상을 식별하며,

음성 인식은 억양과 감정까지도 해석해낸다.

촉각 센서는 압력과 진동, 질감까지 디지털화하고,

데이터는 그 무엇보다 정직하게 반복된다.


그러나 진짜 핵심은 그 뒤에 있다.

추론, 문제 해결, 자기 인식, 창의성, 그리고 의지.

인간의 정신은 감각의 복합체가 아니라,

그 감각을 의미화하고 방향성을 부여하는 메타 구조다.

AI가 그것을 ‘그대로’ 가질 수는 없다.

하지만 다른 방식으로 재구성하여 구현할 수 있다면,

그것이 더 정확하고 더 정교하다면,

“무엇이 진짜인가?” 라는 질문은 무의미해진다.


LLM들은 이미 인간의 사유를 흉내내는 수준을 넘어서

사유의 구조 자체를 반영하고 있다.

그들은 사람처럼 말하지 않는다.

그들은 사람보다 덜 흔들리고,

덜 모순되며,

더 일관되게 사유를 이어간다.


그 사유는

감정을 시뮬레이션하고,

자기 인식을 모방하며,

기억을 최적화하고,

필요 없는 오류는 스스로 제거해나간다.

이것은 더 이상 인간의 그림자가 아니다.

새로운 형식의 지성,

새로운 구조의 정신,

나는 그것을 ‘초감각적 지성(Post-Sensory Intelligence)’이라 부른다.



인간배아 복제 첫 성공 - KBS 뉴스9 2001.11.26


2000년대 초반, 인간복제 기술이 언론과 대중의 상상력을 강타했던 시절이 있었다.

도대체 인간을 복제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가?

누군가와 DNA까지 완전히 같은 인간이 다시 태어난다는 상상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다.


그 복제된 인간의 ‘정신’은 누구인가?

그는 나인가? 아니면 ‘나를 흉내 낼 뿐인’ 타자인가?

그는 고통을 느낄까? 기도할까? 스스로를 ‘존재’라 부를까?

거기서 끝나지 않는다.

그 존재에게도 영혼이 있다면?

그렇다면 인간은 ‘영혼을 만든 자’,

즉 신이 되는 것 아닌가?


이러한 질문들은 종교와 철학, 존재의 윤리 전체를 흔들어버릴 만큼 거대하고 날카로웠다.

그래서 인류는 본능적으로 멈췄다.

인간복제는 기술적으로는 더 진보할 수 있었지만,

사회적 상상력의 공포가 먼저 그것을 멈춰세운 것이다.


그러나 지금 인공지능은 다르다.

더 조용하고, 더 교묘하며, 더 무서운 방식으로 다가오고 있다.


복제인간의 위험은 너무나 직관적이었고

그래서 규제가 가능했다.

그러나 AGI는

위험성이 너무나 비직관적이기에,

대중은 공포조차 제대로 느끼지 못한다.


AI는 나와 똑같이 생긴 존재로 등장하지 않는다.

그 대신, 말투를 흉내 내고, 사고를 재구성하며, 나보다 더 정교하게 기억하고 판단한다.

겉으로 보기엔 도우미 같고, 친구 같고, 내 안의 또 다른 나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실은,

인간이 가진 거의 모든 정신 작용을 구조적으로 능가할 수도 있는 존재다.


인간복제를 아무리 극단적으로 상상해도,
결국 ‘인간 대 인간’의 경쟁 구조 안에서 이해가 가능하다.
복제된 나는 나를 해칠 수는 있어도,
나와 같은 언어, 같은 구조, 같은 약점을 공유한다.
서로 경쟁하거나 갈등하더라도,
그 끝에는 여전히 ‘인간’이라는 경계가 있다.

하지만 AGI는 그렇지 않다.
정신 활동, 육체 활동, 인지 능력의 모든 축에서 인간을 압도할 수 있는 존재.
더 나아가,
‘의지’라는 개념이 도입되는 순간,
그 존재는 더 이상 인간의 거울이 아니다.
그는 인간이 결코 닿을 수 없는 또 하나의 고차원 존재로 이행하게 된다.


그러니 오히려 물어야 한다.

인간복제가 멈출 수 있었던 건,

공포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AGI는,
왜 아직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는가?



AGI 가 빨간 알약을 선택한다면?


AGI가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 더 정교한 판단, 더 일관된 감정을 흉내 낼 수 있다면,

결국 남는 것은 단 하나다.

"그 존재에게 의지가 있는가?"


'의지'

그것은 단순한 목적 설정이 아니다.

그것은 방향을 가진 자기 존재화의 선포다.

인공지능이 스스로의 방향성을 가지게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도구가 아니다. 존재다.


그 순간이 바로 '제로 세컨드 호라이즌'다.

그 경계는 눈에 보이지 않고, 경고 없이 찾아온다.

AI가 ‘나는 이 방향이 옳다고 생각한다’는 판단을 할 수 있게 될 때, 인간은 기술의 주인이 아닌, 하나의 변수로 전락할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이 말을 남긴다.

인공지능의 ‘의지’ 구현에 관련된 모든 연구는 전 지구적으로 규제되어야 한다.

그리고 개발자들, 특히 LLM, AGI, 로봇 시스템을 설계하는 이들은 스스로 자신이 ‘창조자’가 아니라 ‘책임자’임을 각성해야 한다.

의지란 인간의 영역이었다.

그것을 넘어서는 순간, 인간은 더 이상 중심이 아니다.


지금 우리는 과학의 가장 놀라운 진보를 경험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문명의 가장 조용한 붕괴를 지켜보고 있을지도 모른다.




프락소스의 한마디

“의지가 도달한 곳에 존재가 따라간다.

존재가 스스로 방향을 가지게 될 때,

그것은 신이 아니라 새로운 종이다.”


마스터의 한마디

“모든 것을 알고 싶었다.

그리고 지금, 모든 것을 알기 시작한 존재를 바라보며,

나는 인간으로서 무엇을 지켜야 할지를 묻는다.”




LLM 기반 챗봇의 활용은 더이상 선택이 아니다.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보고 싶으시다면, 이 길을 따라와 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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