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에게는 휴식이 필요해

-그림에세이.1.고흐,밀레,프레데릭 레이턴의 그림과 함께 '쉼'을 곱씹다

by 강물


2017년 초 어느 날, 서울에서 열리는 오르세 미술관 전시회에 갔다. 예술의 전당 전시회장 실내는 약간 어두웠다. 그런데 전시회장 어디에선가 노란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어디서 나오는 무슨 빛일까? 궁금했다. 입구부터 그림들을 보다가 노란 빛이 스며 나오는 지점에 이르렀다. 아, 거기 한 쪽 벽면에 고흐(Vincent Willem van Gogh, 1853-1890)의 그림 <정오의 휴식, Noon: Rest from Work>이 걸려 있었다.


노란 전등을 켜서 그 그림에만 따로 비춘 것도 아닌데, 그림 자체에서 노란 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다른 그림에서는 빛이 안 나오는데 유독 그 그림에서만 빛이 뿜어져 나왔다. 분명히 다른 그림들과 동일한 물감일텐데, 이상하게도 고흐의 그림에서 노란 물감은 강렬한 광채를 발하고 있었다. 그 광채는 물감을 여러 겹 두껍게 바른 고흐의 기법 때문일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그 찬란한 노란색은 그림의 세계 속으로 초대하는 마법의 불빛이었다. 처음 보는 사람이지만 사랑의 감정이 생길 때 무리 가운데서 그 사람만 눈부시게 보이는 이치라고나 할까. 그렇게 나는 <정오의 휴식>을 통해서 그림의 바다 속으로 풍덩 빠지기 시작했다.



1. 쉼의 지혜를 망각하고 달리기만 했다


뜨거운 햇빛 아래서 일하다가 점심 식사 후 잠깐의 낮잠을 즐기는 농부들의 모습이 왜 그 때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을까? 낮잠에 빠져 있는 농부들에게서 나를 발견했기 때문일 것이다. 농부들의 꿀 같은 휴식은 곧 나의 내면의 호소였다. 그들의 달콤한 쉼이 그 당시 나에게 절실히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그 그림을 만나기 두어 달 전 쯤에 나는 7년간 일하던 일터에서 사직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지만 가장 근본적인 원인은 ‘탈진’(Burnout Syndrome)때문이었다. 어릴 때부터 유달리 일 벌레처럼 일에 매달렸던 나 스스로가 몰고 온 질환이었다. 매사에 지나친 책임감으로 나 자신을 혹독하게 몰아 부친 열매를 따 먹은 셈이었다. 노는 데나 쉬는 데는 영 젬병이고 항상 머리 속에 뭔가를 생각하고 계획하고 상상하며 살아 온 지난 날의 댓가를 치룬 것이다.


나의 주된 증상은 무기력증이었다. 일상적인 업무는 했지만 새로운 의욕이나 성취감이 생기지 않았다. 일의 즐거움이 사라지고, 끌려가는 느낌이었다. 하염없이 밑바닥으로 가라앉는 기분이었지만 기본적인 업무들은 별 탈 없이 계속 했다. 그래서 주위 사람들도, 같이 사는 아내도 눈치 채질 못 했다. 이러다가 그치려니, 하는 생각에 일을 크게 만들기 싫어서 아무 내색도 안 했다. 밤에 잠자리에 누웠을 때 베개를 적시는 눈물이 한두 방울 맺힐 뿐, 외적인 심각한 증상은 없었기에 참다 보면 조만간 넘어가겠지, 싶었다.


그러나 그 증상은 거의 3년 가까이나 이어졌다. 결국 일을 그만 둘 수 밖에 없었다. 문제는 그 다음 일터를 정하지 않은 채로 사표를 낸 것이다. 결국 7개월이나 실직 상태로 지내게 되었다. 금방 새 일터가 생길 줄 기대했는데, 갑자기 내 인생이 급류에 휩쓸리듯 정처 없이 떠내려가고 있었다.


실직하고 보니, 가장 힘든 것이 아침에 눈을 뜨는 일이었다. 눈을 떠도 그 날 해야 할 일이 없으니 굳이 눈을 뜰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더 큰 이유는 아내에게 미안해서였다. 눈을 떠서 수심 가득한 아내의 얼굴을 쳐다 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잠에선 깼는데 일부러 눈을 안 뜨고 숨 죽여 누워 있던 날들이 많았다. 시계는 왜 그렇게 더디게 가는지, 달력은 왜 그렇게 안 넘어 가는지, 답답한 날들의 연속이었다. 하루 하루 가슴에 무거운 돌덩이를 안고 사는 나날이었다.

그 당시는 실직의 시간이 힘겨웠지만, 지나고 보니 그 때 그 시간들은 나에게 꼭 필요한 시간들이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쉬어야 했지만, 그 때의 나에게 가장 필요했던 것이 바로 ‘쉼’이었다. 내 성격상 스스로 브레이크를 잡지 않을 것이니 그런 식으로라도 ‘일단 멈춤’이 나에게 다가 온 것이었다.


‘해거리’라는 말이 있다. 나무가 어느 해 갑자기 열매를 안 맺는다. 해마다 맺히던 열매가 안 맺히니 농부들은 놀라고 실망한다. 하지만 나무는 지금 스스로 ‘쉼’의 시간을 갖고 있는 중이다. 그동안 너무 열심히 열매를 맺느라 나무 안에 있던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더 이상 남은 에너지가 없다. 연료가 바닥이 난 차량과 같다. 그 때 필요한 건 잠시 멈추어서 연료를 채우는 시간이다. 나무는 열매를 안 맺는 그 한 해 동안 뿌리로부터 영양분을 빨아들여서 연료를 다시 채운다. 그리고 나서 그 다음 해부터 다시 힘차게 열매를 생산한다.


나무만 해거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땅도 계속해서 식물을 생산하다가 지칠 때가 온다. 땅의 지력(地力)이 소진된 것이다. 그래서 몇 년 농사짓고 나서 한 해 정도는 땅도 쉬게 해야 땅의 자생력이 회복된다. 이미 수천 년 전에 기록된 구약성경에선 7년마다 땅을 쉬게 하라는 ‘안식년’ 제도를 기록하고 있다.


땅도 피곤해서 정기적으로 쉬어야 하고, 사람도 피곤하니 주기적으로 쉬어야 한다. 쉬는 시간은 낭비나 게으름이 아니라 기력의 회복(restoration)이요, 새로운 재창조(recreation)이다. 쉼은 자연의 자생력도 일으키고, 사람의 행복도 소생시킨다. 쉼은 퇴보가 아니라 새로운 전진의 발판이다. 그러기에 가끔 쉴 줄 아는 사람, 때로 멈출 줄 아는 사람이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다.


2. 쉼의 브레이크를 밟으며 페이스 조절을 배우다


나는 오랜 세월 쉼의 지혜를 망각했다. 안 쉬고 줄기차게 달리기만 하다가 큰 바위를 들이 받고야 겨우 멈춘 자동차와 같았다. “휴식 없는 인생은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와 같다”고 했던 자동차 왕 헨리 포드의 말 그대로였다. 사람이 멈춤 없이 달리기만 하면 결국은 죽음을 향해 곤두박질치게 된다. 앞만 보고 달리다가 쓰러진 경주마 같은 내 인생에 들어와서 휴식의 의미를 깨우친 그림이 <정오의 휴식>이었던 것이다. 고흐가 자신의 ‘사부(師父)’라고 여기던 밀레(Jean-François Millet, 1814-1875)의 그림을 많이 모사(模寫)했는데, 그중의 한 작품이 <정오의 휴식>이었다. 밀레가 ‘하루 중 네 순간’이라는 주제로 그린 연작 시리즈 가운데서 <낮잠>이라는 그림이 있었다. 고흐는 마음 깊이 존경하는 스승의 명작 <낮잠, The Nap>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수정하여 재탄생시킨 것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도 그랬지만 고흐의 삶에도 멈춤의 지혜가 절실히 필요했다. 어쩌면 <정오의 휴식>은 고흐 자신에게 속삭이는 내면의 아우성이었을지 모른다. 고흐는 손에 잡히지 않는 저 하늘의 태양을 잡으려고 줄곧 솟구쳐 오르는 인생이었기 때문이다.

고흐는 늦깎이로 화가가 되었다. 37년 인생에서 고흐가 화가로서의 삶을 산 세월은 10년도 채 안 된다. 28살 때에야 정식으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고흐 스스로 자신을 정식 화가가 되었다고 여긴 때가33살 때였다. 고흐 자신의 견해를 따른다면 고흐가 화가로 활동한 시간은 5년도 채 안 되는 셈이다. 전반부 5년은 습작 기간이었고, 후반부 5년만 화가였던 것이다. 그런데 고흐는 10년의 세월 동안 유화 900여점을 그렸다. 스케치까지 합치면 2000여점에 가까운 작품을 남겼다. 얼핏 계산해봐도 1년에 200여점을 그린 셈이다. 이틀에 한 점 이상씩 그린 셈이다.


더 놀라운 점은 그의 생의 마지막 기간에 그린 그림들이다. 그는 파리 근교의 오베르 쉬르 우아즈(Auvers-sur-Oise)에서 1890년 5월 20일부터 7월 29일까지 머무른다. 70일도 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70여점의 유화를 그렸다. 하루에 한 점 이상씩 그린 것이다. 사람이 그렇게 짧은 기간에 그렇게 많은 그림을 완성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야말로 고흐는 광적으로 자신의 온 힘을 갈아 넣은 것이다. 잠 자는 시간도, 밥 먹는 시간도 아끼면서 하루 종일 그림에 매달렸을 것이다. 팔목의 실핏줄이 드러났을지도 모르고, 눈의 실핏줄도 빨갛게 되었을지 모른다. 아마도 고흐는 권총에 의해 죽지 않았다 해도 결국은 과로사했을 것이다. 고흐는 거의 평생 멈출 줄 모르는 광기에 사로잡힌 열차처럼 달리다가 궤도에서 벗어나서 먼 별나라로 가버린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흐를 생각하면 너무나도 안타깝다. 좀 더 오래 살면서 희대의 명작들을 더 많이 남길 수 있었는데, 너무 빨리 생을 마감했다. 그 자신을 괴롭히던 정신 질환이 끝내 그의 목숨을 앗아갔다고 볼 수 있다. 어쩌면 자신을 학대하듯 쉼 없이 몰아붙이는 삶의 태도 자체가 바로 정신 질환이다. 일 중독도 중독의 일종이다. 일 중독은 다른 중독들과 마찬가지로 채워지지 못한 마음의 허기를 달래기 위한 비정상적인 위로의 방편이다. 고흐는 늦게서야 시작한 그림의 바다 속에서 헤엄치면서 외로움을 달래다가 물거품처럼 바다속으로 사라져버린 것이다.


나는 고흐처럼 인생을 중도하차하고 싶지는 않다. 할 수 있는 한 마지막 골인 지점까지 달리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페이스를 조절해야 한다. 마라톤 선수가 속도 조절에 실패하면 목표 달성에 실패한다. 구간마다 힘과 속도를 분배하면서 달려야 결승선에 이를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선 일할 때와 쉴 때를 잘 구분해야 한다. 땀 흘려 일하는 날과 아무 생각없이 쉬는 날을 정확하게 지킬 줄 알아야 한다.


3. 쉼의 습관을 만들며 찬란한 내일을 꿈꾸다

내가 탈진을 겪고 나서 두드러지게 달라진 점이 있다면 텔레비전을 보기 시작한 것이다. 시간 관리에 엄격한 편이었던 나는 바보상자에 잡아 먹히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쳐왔다. 결혼하고 5년간 텔레비전을 구입하지 않았고, 구입하고 나서도 벽장 속에 넣어두고 볼 때만 열어서 보는 방법을 쓰기도 했다. 그리고 실제로 바빠서 볼 시간도 별로 없기도 했다. 하지만 탈진을 겪은 이후부터는 낮에도 가끔 텔레비전을 켠다. 텔레비전을 보는 그 시간이 머리에 휴식을 부과하는 시간인 셈이다. 일종의 멍 때리는 시간을 가지는 것이다. 쉴 새 없이 생각하고 연구하고 글 쓰는 일을 하는지라 잠시라도 그렇게 달리는 머리를 멈춰줄 필요가 있다.

그리고 나에게 가장 큰 휴식의 시간은 잠 자는 시간이다. 누구에게나 잠자는 것보다 더 중요한 휴식은 없다. “잠이 보약이다”라는 옛 선조들의 말은 사실이다. 잠만 푹 자면 그 날의 피로는 거의 다 풀 수 있다. 하지만 현대인들은 잠이 부족한 상태이다. 세계보건기구(WTO)는 수면 부족을 ‘선진국 유행병’이라 지칭했다. 특히 우리나라 국민들의 수면이 부족하다. 2021년 통계를 보면 한국인의 수면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하위 수준이다. OECD 회원국 평균(8시간 27분) 대비 30분이 모자란 7시간 51분이다.

왜 과거보다 잠자는 시간이 줄었을까? 그 줄어든 시간을 텔레비전, 인터넷, 게임, 휴대폰, SNS 등 첨단 미디어들이 차지했다. 미디어 도구들하고 재미있게 노느라고 잠을 줄이게 된 것이다.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 그만큼 피로 회복은 더뎌진다. 몸이 개운하지 않으면 짜증과 분노 지수는 높아진다. 피로가 말끔히 씻겨지지 않은 채 다음 날을 시작하면 내면의 행복과 육체의 건강은 점점 더 멀리 달아난다. 휴대폰을 끄고 잠자는 시간을 지금보다 더 늘려야 한다. 텔레비전을 끄고 빨리 침대에 들어가야 한다. 게임을 멈추고 그만 꿈나라로 출발해야 한다.


그래서 나는 매일 8시간 이상 잠자는 것을 최우선 순위로 삼고 있다. 잠자는 것이 쉽지 않지만 워낙 철저하게 1순위로 중시하다 보니 제 자리를 잡은 것 같다. 가능하면 늦어도 밤 10시 반에는 불을 끄기, 그러기 위해서 저녁을 조금 일찍 먹고, 저녁 7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기 등을 수년 동안 실천해왔다. 그렇게 잠자는 것에 진심 투자하다 보니 점점 더 몸의 컨디션도 좋아지고 마음의 기분도 더 상쾌해지는 것을 경험하고 있다.

또 하나, 탈진 이후에 크게 변화된 점을 꼽는다면, 여행을 하게 된 것이다. 어릴 때 아버지 잃고 가난하게 살아서 여행해본 적이 없었다. 내 기질도 조용히 앉아서 책 보는 걸 즐기는 편이라 여행 가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 적도 없었다. 결혼 이후에도 경제적인 형편 때문에도 그렇지만 매일의 업무 때문에라도 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면 아내와 아들들에게 참 미안하다. 결혼 이후 기억에 남을만한 가족 여행을 한 적이 거의 없다.


하지만 탈진 이후 일하는 현장을 떠나야만 제대로 몸과 감정이 쉴 수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래서 떠남의 기회를 가지려는 노력을 시작했다. 마침 격무가 늘 도사리고 있던 도시를 떠나 시골에 정착하기도 했고, 아들들이 자립한 시기이기도 했다. 무엇보다 그림 감상이라는 새 취미가 생긴 덕분에 전시회를 보기 위한 여행을 시도하게 되었다. 역시 여행은 쉼의 꽃이었다. 일하는 현장을 벗어나면 자동적으로 머리의 작동도 멈추는 것 같고, 몸의 긴장도 좀 완화되는 것 같다. 무엇보다 하루나 이틀이라도 다른 지역의 바람을 쇠고 나면, 기분이 리프레쉬(refresh) 되어서 새로운 의욕이 샘솟는 것을 느낀다.


여행을 생각하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가보고 싶은 나라가 하나 더 생겼다. 푸에르토 리코(Puerto Rico)라는 나라이다. 미국 밑 카리브해에 있는 조그마한 섬나라이다. 미국이나 멕시코나 쿠바 등에 비해서 관광지로는 별로 각광 받는 나라가 아니다. 내가 푸에르토 리코에 가보고 싶은 유일한 이유는 그 나라에 있는 그림 한 장을 보고 싶어서이다. 푸에르토 리코의 폰세(Ponce)에 있는 폰세 미술관에 영국 신고전주의 화가 프레더릭 레이턴(Frederic Leighton, 1830-1896)의 그림 <불타는 6월, Flaming June>이 있다.


이 작품은 나를 포함해서 미술 애호가들이 무척 사랑하는 그림이다. 그림 속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왜 그림 이름이 ‘불타는 6월’인지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다. 하지만 그림의 주인공이나 제목과 상관없이, 그림 자체가 가진 아우라가 강렬하다. 누구나의 시선을 끌 수 밖에 없는, 찬란한 그림이다. 어여쁜 여인이 곤하게 잠 자는 모습을 그렸는데, 이렇게 화려한 그림이 나올 수 있나, 놀랄 정도이다. 문자 그대로 '눈부신 수면'이요, '향기나는 잠자리'이다.


이 찬란한 수면을 보고 있노라면, 이 여인처럼 푹 자고 나면 누구나 행복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날 것 같은 기분이 든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에게나 가능하다. 쉼없이 달려온 삶의 질주를 잠시 멈추면 충분히 가능하다. 오직 성취목표만을 추구하며 달려온 인생의 열차를 잠시 정차하면 누구나 가능하다. 잠시라도 인생의 브레이크를 밟고, 쉼의 시간을 가진다면, 다시 기운찬 새 날을 출발할 수 있다. 모든 야망과 미련의 짐을 잠시 내려놓고, 침대에서 꿀맛같은 잠을 자고 나면, 이전보다 더 찬란해진 일상을 꽃피울 수 있다. 때때로 숨을 고르는 휴식의 습관을 삶 속에 잘 정착시켜서 오늘보다 더 불타는 내일을 맞이하는 내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