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이 3년 가까이 지속되자 혼자 힘으론 해결이 안 되겠다 싶어서 신경정신과 의사와 상담을 했다. 의사는 내게 세 가지를 당부했다. 하고 있는 일을 완전히 떠나서 푹 쉬는 시간을 가지라, 믿을만한 친구에게 정기적으로 감정을 털어놓으라, 일만 하지 말고 취미생활을 하라는 것이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나에게는 취미생활이 없었다. 어릴 때부터 취미를 적으라면 ‘독서’ 한 가지 뿐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독서가 나에게 유일한 즐거움이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독서도 ‘일’의 일종으로 훅 들어와 버렸다는 점이다. 초등학교 시절엔 수업 마치면 책가방 던져놓고 만화방에 가서 죽치고 있었다. 중고등학교 시절엔 시집을 비롯해서 문학 서적과 성경 읽는 재미에 푹 빠졌었다. 그 때까진 그래도 독서가 일이 아니라 즐거움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부턴 내가 하는 일과 관련된 책 읽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되었다. 내가 하는 일을 위한 독서에 주력하다 보니 독서가 긴장 이완을 돕기 보단, 업무의 연장이 되어 버린 셈이었다. 결국 현재로선 나에겐 취미생활이 하나도 없었던 것이다. 인생에서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일, 일, 일만 하면서 살아온 세월이었다.
1. 안락의자:내 마음은 언제 기쁜가?
사람이 정서와 건강의 활력을 유지하려면 긴장과 이완의 리듬이 필수적이다. 일할 때는 몰입해서 일에 집중해야 한다. 하지만 일을 안 할 때는 몸과 정서를 이완시켜주어야 한다. 그래야 다시 힘차게 일할 수 있는 상태로 회복된다. 이완 과정이 결핍되면, 몸도 마음도 초긴장 상태와 스트레스가 이어진다.
누구에게나 긴장과 스트레스는 있을 수 밖에 없다. 사람이 숨 쉬고 사는 동안 스트레스는 피할 수 없고, 긴장 가득한 삶은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그렇다면, 긴장을 해결하는 유일한 길은 무엇일까? 긴장을 풀어주는 이완 과정을 주기적으로 갖는 것이다. 이완의 시간을 갖기 위해서 물어볼 질문은 “내 마음이 언제 즐거운가?”이다. “나를 진정으로 즐겁게 하고 긴장을 풀어줄 수 있는 활동은 무엇일까?” 찾아보는 것이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활동을 발견하면 그것을 삶의 ‘루틴’(routine, 의식적으로 습관화하는 긍정적인 행동 패턴)으로 지속하는 것이다. 물론 "나를 즐겁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에 대한 대답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에 갔을 때 나의 눈에 즐거움을 준 그림은 현대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러시아의 화가 바실리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66-1944)가 그린 <작은 기쁨들, Small Pleasures>이었다. 마음을 매료시키는 화려한 색감 때문에 그림 앞에서 한참 머물렀다. 흑백이었던 내 마음을 강렬한 색으로 물들이는 느낌이었다.칸딘스키는 색이 얼마나 파워가 있는지를 아는 화가였다. 그는 입버릇처럼 “색에는 사람의 영혼을 직접적으로 진동시키는 신비한 힘이 있다”고 말했다.
색의 화려함에 사로잡힌 다음에는 찬찬히 그림을 훑어봤다. 추상화라서 그림 속의 사물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알기 어려웠다. 그래도 계속 보다보니 어렴풋이나마 산도 보이고, 태양도 있고, 들판도 있고, 탑도 있고, 물도 보였다. 그리고 그 가운데서 사람들이 움직이고 있었다. 탑을 세우는 사람, 말을 타는 사람, 보트를 타는 사람들이 아닐까 싶었다. 정확한 모양은 파악할 수 없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 사람들이 대자연 가운데서 뭔가를 하면서 기분이 참 좋구나, 싶었다. 일상 속에서 뭔가를 하면서 거기에서 다들 작은 기쁨을 느끼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었다.
비슷한 주제인데 칸딘스키의 그림보다 좀 더 주제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그림은 프랑스의 야수파 화가 앙리 마티스(Henri Matisse, 1869-1954)의 <삶의 기쁨, The Joy of Life>이다. 이 그림 역시 화려한 색채의 향연을 보여준다. 밝은 빨간색, 눈부신 노란색, 깊은 초록색이 어우러져 인간 세계에는 있지 않을 것 같은 정경을 만들었다. 나무들이 울창한 숲속에서 사람들은 여기 저기 흩어져서 악기를 연주하고, 둥글게 손잡고 춤을 추며, 남녀가 사랑에 빠져 있다. 벌거벗고 일광욕을 즐기기도 하고, 정원을 손질하는 여인도 있다. 전체적으로 에로틱하면서도 몽환적이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그 어떤 시름도 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같다. 그저 행복한 기분만이 화폭에 넘쳐 흐른다. 이 작품은 평소에 “그림이 반드시 아름다울 필요는 없지만, 그림은 보는 이에게 기쁨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마티스의 지론을 담고 있다. 그는 “내가 꿈꾸는 미술은 정신 노동자들이 아무런 걱정, 근심 없이 편안하게 머리를 누일 수 있는, 안락의자 같은 작품이다” 라고 말했다. 이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안락의자에 누워서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나서 거실에서 음악에 따라 몸을 흔드는 느낌이 든다.
2. 소확행: 소소하지만 확실한 기쁨은 어디에 있을까?
이 두 그림들을 보면서, 나는 뭘 할 때 가장 기분이 좋은가? 생각해봤다. 내 마음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활동은 무엇인가?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내 기분이 즐거운 순간은 매일 산책하는 시간이다. 지금은 개를 데리고 매일 평균 7천보에서 만보 사이를 걷는다. 바닷 바람을 온 몸으로 맞으며, 상쾌한 산소를 마시면서 걸을 때 기분이 얼마나 파릇파릇 생기가 돋는지 모른다. 햇빛으로 온 몸을 샤워하듯 걷는다. 그러면 몸이 가뿐해지고 기분도 시원해진다.
미국의학협회 저널(Journal of the American Medical Association)에 의하면, 매일 7천보 정도를 걷는 사람들은 10년후 사망률이 50-70% 적게 나왔다고 한다. 걷는 습관이 심혈관계 질환의 위험도를 낮춘다는 통계이다. 무엇보다도 걷는 것은 스트레스를 감소시키고 삶의 활력을 높여준다.
지루한 일상 가운데서 기분이 축 처져 있다는 것은 뇌에서 도파민(dopamine)이라는 신경전달물질이 잘 분비가 안 된다는 의미이다. ‘도파민’은 뇌에서 분비되는 ‘쾌감 물질’이다. 도파민이 잘 분비되어야 기분이 좋아지고 의욕이 샘솟게 된다. 걸을 때 뇌에서 도파민이 많이 생성되기에 걷는 습관은 마음도 행복하게 만들고, 몸도 더 건강하게 도와준다. 목욕을 다녀오면 몸이 가벼워지고 기분도 날아갈 듯 즐거운 것과 마찬가지로 1시간 정도라도 바깥에서 걷고 오면 하루의 스트레스가 말끔히 씻기는 느낌이다.
또 하나, 몇 년 전부터 내 마음을 뛰게 만드는 순간은 그림을 감상할 때이다. 좋은 전시회가 있으면 그 전시회에 가려고 계획할 때부터 소풍 갈 날을 받아 놓은 어린 아이처럼 가슴이 설렌다. 그림을 직접 보면 그 그림이 나에게 ‘안녕’하면서 인사하는 느낌이 든다. 그림 속에서 내 과거와 현재가 보이고, 그림과 내 마음이 대화한다고 느낄 때도 있다. 그림을 한참 보다 보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갑자기 확 느껴질 때도 있다. 그럴 때는 가슴 한 켠이 아려오기도 하고, 눈물이 핑 돌 때도 있다. 물론 현대미술은 여전히 와닿지 않지만 인상파 그림을 비롯해서 많은 그림들은 내 가슴에 행복감을 안겨 준다.
런던 대학교의 세미르 제키(Semir Zeki)교수는 그림을 감상한 대상자들에게 ‘아름다움’ ‘추함’ ‘보통’ 식으로 자기 느낌을 표현하게 했다. 그리고 그들의 뇌 활성도를 자기공명영상(f-MRI)으로 촬영해봤다. 그 결과, 그림이 아름답다고 느낀 사람들에겐 뇌 전두엽의 보상계가 활성화되는 것을 발견했다. 보상계란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통해 즐거움을 느끼는 영역이다. 그림을 보면서 감정이 일렁일 때 뇌에서 쾌감 물질이 분비된다는 점을 과학적으로 밝혀낸 것이다. 물론 그림 감상만이 아니라 음악을 듣고 감동이 될 때나 책을 읽으면서 깨달음을 느낄 때도 같은 효과가 나타난다. 그래서 가끔씩 일을 멈추고 음악을 듣거나, 그림을 보거나, 시를 읽거나, 연극을 보는 등의 예술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긴장 이완과 더불어 마음의 행복감을 샘솟게 하는 비결이 된다.
나에게 즐거움을 주는 새로운 활동을 찾아서 꾸준히 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은 그보다 더 중요한 쾌락 포인트가 있다. 그것은 바로 평범한 일상 가운데서 즐거움을 누리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는 ‘소확행’(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바로 그 점을 말하고 있다. 요즘은 새롭게 ‘아보하’(아주 보통의 하루)라는 신조어도 생겼다고 한다. 큰 틀에선 두 단어가 비슷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소확행에 대해서 이렇게 묘사했다. “갓 구운 빵을 손으로 찢어 먹는 것, 서랍 안에 반듯하게 접어 넣은 속옷이 잔뜩 쌓여 있는 것, 새로 산 정결한 면 냄새가 풍기는 하얀 셔츠를 머리에서부터 뒤집어 쓸 때의 기분.” 중요한 건, 이런 일상 활동 가운데서 신선한 기쁨을 발견하는 것이다. 뭔가 특별한 행동을 해야만 즐거운 것이 아니라, 날마다 반복되는 일과들 가운데서 특별한 즐거움을 찾는다면, 그보다 더 행복한 삶은 아마 없을 것이다.
3. 카르페 디엠: 오늘을 어떻게 기쁜 날로 만들까?
2024년에 개봉된 일본 영화 <퍼펙트 데이즈, Perfect Days>가 있다. 그 영화는 일본 동경의 공공화장실 청소 일을 하는 히라야마라는 남자를 비춘다. 대사도 별로 없고, 드라마틱한 사건도 없다. 그저 남자의 반복된 하루 하루를 다큐멘터리처럼 보여줄 뿐이다. 그는 아침에 일어나서 양치질하고 꽃에 물 주고 운전하면서 흘러간 팝송을 듣고 퇴근하면 목욕탕 가고 술 한 잔 마시고 취침 전에 독서하는 루틴을 반복한다. 매일 일과는 늘 똑같다.
하지만 그는 나뭇잎 사이로 스며드는 햇살에 날마다 미소 짓는다. 팝송을 들으면서 가사를 음미한다. 헌책방에서 책들을 골라서 매일 읽는다. 오래된 필름 카메라로 사진을 찍고 현상한다. 그의 일상은 동일한 것 같지만 자세히 보면 매일 조금씩 다르다. 어제의 햇살과 오늘의 햇빛이 같지 않다. 어제 들은 노래와 오늘 듣는 노래도 다르다. 어제 지나가는 사람들과 오늘 스치는 사람들도 같지 않다. 오늘 쳐다보는 꽃과 내일 쳐다보는 나뭇잎의 색은 다르다. 사진을 찍어 보면 피사체(被射体)의 모습은 순간 순간 미세하게 다르다.
사실 일상이 늘 똑같아서 지루하다는 생각은 편견이다. 반복되어서 건조하다는 느낌은 오해이다. 자세히 주위를 관찰하지 않아서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다. 사물과 사람과 풍경을 섬세하게 살펴보면 매일 새로운 정경이 펼쳐진다.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사람들의 움직임을 주시해보면 날마다 뭔가 다른 모습이 보인다. 일상의 반복되는 동작도 매일 다른 눈으로 보면 다르게 느껴진다. 완벽한 하루는 누군가가 나에게 주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과 생각의 변화로 내가 만들어가는 것이다. 오늘부터, 지금부터 눈을 떠서 어제와 다른 점을 찾아보면 된다.
그런 점에서 눈여겨 볼만한 그림이 있다. 19세기 영국의 화가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그린 <할 수 있을 때 장미 봉오리를 모으라, Gather Ye Rosebuds While Ye May>라는 그림이다. 아름다운 여인들이 장미꽃이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정원에서 장미꽃 봉오리를 따 모으고 있다. 손에 든 바구니가 장미로 넘쳐나는데도 그들은 멈추지 않는다. 꽃봉오리를 따기에 집중하는 여인들의 열정이 느껴진다. 그리고 그녀들은 몰입하는 그 행위에서 시간이 멈춘 것 같은 행복을 즐기고 있다.
이 그림의 제목은 17세기 영국의 시인 로버트 헤릭(Robert Herrick)의 시 ‘처녀들이여, 시간을 소중히 하라’(To the Virgins, to Make Much of Time)에서 영감을 받았다.
할 수 있을 때 장미꽃 봉오리를 모으라
시간은 계속 달아 나고 있으니
그리고 오늘 미소 짓는 이 꽃이
내일은 지고 있으리니
이 시는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도 인용된다. 배우 로빈 윌리엄스가 연기한 키팅 선생이 웰튼 고등학교에 부임해서 공부에 찌든 학생들에게 낭송해주는 시이다. 결국 이 시의 주제는 “오늘을 붙잡으라”(Seize the day)는 말이다. 오늘 현재를 소중히 여기고 하루를 충실히 살라는 의미이다. 그 말이 라틴어로는 ‘카르페 디엠’(Carpe diem)으로 알려져 있다.
카르페 디엠이라는 어구는 고대 로마 공화정 말기의 시인 호라티우스 플라쿠스(Horatius Flaccus)의 시에서 유래되었다. 그 시에는 “오늘을 붙잡게나, 가급적 내일이란 말은 최소한만 믿으면서”(Carpe diem, quam minimum credula postero)라는 구절이 있다. 영화에서 키팅 선생은 학생들에게 “내일을 믿지 말라, 오늘 하루를 즐겁게, 알차게 보내라”고 가르친다. 오늘을 알차게, 오늘을 즐겁게 보내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이라고 알려준 것이다.
지금 내가 사는 시골 집 정원도 장미 향으로 가득하다. 장미꽃이 스물 몇 그루로 정원을 채우고 있다. 요즘은 사계 장미라는 종이 개발되어 1년 내내 장미꽃을 볼 수 있는 호사를 누린다. 하지만 기본적인 종의 장미는 5월 한달 정도 활짝 피었다가 스르르 지고 만다. 장미의 본질은 아주 짧은 기간이라는 점에 있다. 다른 꽃들도 마찬가지다. 원래 꽃이란 잠깐 피었다가 금방 진다. 그러기에 꽃에게 내일이란 없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내일은 우리에게 없는 날이다. 내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정직하게 말하면 내일 내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기에 우리에게 허락된 시간은 오직 오늘 뿐이요, 지금 이 순간 뿐이다. 지금 이 순간만이 나의 날이요, 나의 인생이다. 그러기에 지금 현재를 소중히 여겨야 하고, 오늘 하루를 즐거워해야 한다. 오늘 현재 즐거운 사람이 내일도 즐거울 확률이 높다. 지금 현재 안 즐겁다면? 앞으로도 행복할 확률은 작을 것이다.
장미꽃 한 송이가 행복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장미꽃 한 송이만 선물 받아도 그 순간 짜릿한 행복감이 밀려 온다. 장미꽃 향기 한 번만 맡아도 취한 듯 기분이 하늘로 솟아 오른다. 장미꽃을 화병에 꽂아서 보노라면 시름이 물러가고 황홀한 상상에 잠긴다.
행복은 어마어마한 크기에만 있지 않다. 행복이란 작은 행복 여러 개가 모여서 엮어진다. 장미꽃 바구니처럼 작은 바구니들이 큰 행복을 선물할 수 있다. 매일 사소한 일상 하나 하나를 행복의 눈으로 바라보고 즐기면 그 사람은 행복한 인생이다. 누구나 경험하는 평범한 일들이지만 그것을 감사의 마음으로 즐기면 그 하루는 행복한 하루가 된다. 매일 똑같이 반복되는 리듬이지만, 그 리듬을 아름다운 소나타로 여기며 리듬에 몸을 맡기면 날마다 춤추는 하루가 된다. 행복의 길은 저 멀리 저 높이 있지 않다. 바로 오늘 하루를 내가 행복한 날로 만들 수 있다.
버스나 택시를 타서 가끔 차량 운전석 앞에 매달린 그림을 볼 때가 있다. ‘오늘도 무사히’라고 적힌 그림이다. 귀여운 아이가 무릎 꿇고 기도하는 그림 밑에 글씨가 적혀 있다. 운전하시는 분들에게 집에서 내 자녀가 나의 안전 운전을 위해서 기도하고 있다는 생각을 불어 넣어 주는 그림과 글씨이다. 운전하시는 분들에겐 그 글귀가 가장 중요한 인생의 소원이다.
우리 모두에게 날마다 필요한 글귀를 이렇게 제안해본다. ‘오늘도 즐겁게’ 아침에 눈을 뜰 때마다 '오늘도 즐겁게'라는 소망을 품어보면 어떨까? 완벽한 하루는 아닐지라도, 오늘도 작은 기쁨 하나쯤 건질 수 있지 않을까? 그 작은 기쁨들이 모이고 쌓이다 보면 우리 삶을 행복한 정원으로 꾸밀 수 있지 않을까? 이 글을 읽는 분들 모두가 그렇게 하루 하루 새로운 즐거움을 누렸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