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진의 후유증으로 일을 그만 두고 쉬던 7개월 동안, 더더욱 절실하게 깨달은 점은, 일하는 것이 행복이라는 사실이었다. 일을 안 하고 놀면 마냥 즐거울 것 같지만, 한 달만 지나도 노는 것이 지겹다. 일을 안 하면 행복할 것 같아도 막상 노는 날이 오래 지속되면 우울감이 스며든다. 일을 안 하고 있으면 나 자신이 초라해지는 것 같고, 사는 것이 재미가 없어진다.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면, 그 일 가운데서 누리는 행복감이 인생 최고의 기쁨을 가져온다. 그리고 일하면서 기분이 즐겁다면 그 사람은 일하면서도 쉼을 누릴 수 있다. 그래서 20세기의 대표적인 화가 파블로 피카소도 이렇게 고백했다. “일할 때가 바로 내가 쉬는 때이다” 피카소의 말에 나도 동의가 된다. 나도 기본적으로 일하는 것을 즐거워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다시 태어날 수는 없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 해도 나는 지금 하는 일을 계속 할 것이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나는 보통 때와 다름없이 오늘 하는 일을 그대로 할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내가 살아 있고, 나라는 존재가 가치 있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1. 일하는 시간이 행복해야 인생이 행복하다
많은 사람이 인생에서 행복을 추구한다. 가장 행복한 인생을 사는 비결은 무엇일까? 자신의 일터에서 행복해지는 것이다. 영국의 잡지 [더 선](The Sun)에서 사람의 일생을 80년이라고 가정하고 통계를 내보니, 일생 동안 잠자는 시간은 25년이었다. 그러나 일하는 시간은 그보다 많은 26년이었다. 잠자는 시간과 일하는 시간이 인생의 64%를 차지한다. 사람이 평생 살면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하는 시간이라면, 일하는 시간에 행복해야 인생 전체가 행복할 수 있다. 가장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쏟는 일 그 자체를 사랑하는 사람, 그 사람은 행복하지 않을 수 없다.
일하는 것도 즐겁지만 즐겁게 일하고 나서 휴식할 때. 그처럼 달콤한 행복도 없다. 그래서 철학자 임마누엘 칸트도 “가장 평안하고 순수한 기쁨의 하나는 노동을 한 뒤의 휴식이다”라고 했다. 매일 놀기만 하는 사람은 날마다의 휴식이 공허감을 유발하겠지만, 땀흘려 일한 다음에 푹 쉬거나 친구들 만나서 노는 시간을 가질 때, 그런 휴식보다 더 삶에 원기를 공급하는 것도 없을 것이다.
이렇게 열심히 일하고 난 후의 행복한 휴식을 묘사한 그림 중에 하나가, 프랑스의 화가 오귀스트 르누아르(Auguste Renoir, 1841-1919)가 그린 ‘물랭 드 라 갈레트의 무도회’(Bal du Moulin de la Galette)이다.
‘물랭 드 라 갈레트’는 방앗간에서 만든 갈레트 빵을 팔던 장소를 의미한다. 그 지역은 프랑스 파리 외곽에 있는 몽마르트라는 언덕이었다. 파리 시민들은 휴일이면 파리 외곽 몽마르트로 가서 술을 마시고 춤을 추었다. 그렇게 휴일 오후에 몽마르트에 있는 레스토랑 가든에서 빵과 술을 즐기면서 춤추고 얘기 나누는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 그림이다.
파리 시민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춤을 추기도 하고, 테이블에서 정담을 나누기도 한다. 사람들의 얼굴과 몸에 쏟아지는 햇빛은 눈부시고, 사람들의 표정은 즐겁고, 어디에선가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오는 듯 하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서 이 그림을 봤을 때 그림의 크기가 남자 어른 한 사람 정도의 크기였다. 그래서 그림 속 인물들이 마치 살아서 관람객 바로 앞에서 춤추고 말을 건네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바로 내 앞에서 시끌벅적하면서도 기분이 업되는 무도회가 한창 열리고 있는 것 같다.
이 그림의 분위기는 르누아르 그림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맥을 같이 한다. 그림을 보고 있노라면 보는 사람의 기분이 무척 행복해지는 그림이 그의 그림의 특징이다. 르누아르는 평소에 이렇게 말했다. “그림이란 즐겁고 유쾌하며 예뻐야 한다. 가뜩이나 불쾌한 것이 많은 세상에서 굳이 그림마저 아름답지 않은 것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을까?” 르누아르는 항상 “내 그림을 본 사람 모두가 행복해졌으면 좋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다. 그래서 르누아르를 가리켜 ‘행복을 그린 화가’라 부른다.
하지만 르누아르 본인의 인생 초창기는 그리 행복한 편이 아니었다. 그는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13살부터 도자기 공장에 가서 도자기에 그림을 그리는 일을 했다. 나중에 인상주의 전시회에 합류하면서 그의 행복한 느낌을 주는 그림이 점차 대중들의 인기를 얻었다. 특히 여성이나 어린아이를 밝고 아름답게 그린 덕분에 초상화 주문이 쇄도하여 점차 그는 경제적으로 안정되었다.
하지만 그는 50세 이후부터 류마티스 관절염과 신경통에 걸려 죽는 날까지 고생했다. 붓을 못 잡을 정도로 마비가 심하자 붓을 손가락 사이에 끼고 손목에 붕대를 감은 채 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그는 78세의 나이로 죽는 그 날까지 그림 그리기를 쉬지 않았다. 그랬기에 그는 서양 화가들 가운데서 많은 작품을 남긴 화가로 꼽힌다. 60여년의 화가 생활 중 6천여점을 그렸으며, 특히 병으로 고생하던 마지막 12년 동안에만도 800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르누아르는 일생 동안 그림에 모든 정열을 다 쏟아 부었다. 그런 느루아르에게 친구가 물었다. 그림 그리는 일이 그렇게 힘이 드는데 왜 계속 그림을 그리느냐고. 그러자 르누아르가 대답했다고 한다. “고통은 지나가지만 아름다움은 남기에 그림을 그린다”
2. 일을 사랑하면 혁신이 탄생한다
르누아르는 자신이 하는 일, 그림그리기를 사랑했기에 병든 가운데서도 그림그리기를 멈추지 않았다. 사람이 무엇이든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할 때는 그 일을 끈질기게, 인내하면서 해낸다. 자신이 그 일을 할 때 가장 행복하기에, 지치지 않고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그렇게 끈기 있게 자신의 일을 하는 것이 타고난 IQ나 재능이나 환경적 요인보다 더 중요한 성공의 요인이라고 앤절라 더크워스(Angela Duckworth)는 [그릿]에서 말하고 있다. ‘그릿’(grit)이란 사전적으로 투지, 끈기, 불굴의 의지 등을 의미한다. 선천적으로 탁월한 재능을 가진 사람이나 유복한 환경에서 태어난 사람이나 건강한 신체를 물려받은 사람들은 분명 남보다 유리한 출발선에 서 있다. 하지만 그러한 요인들이 반드시 최종적인 결과를 좌우하지는 않는다. 그러한 요인들이 삶에 유리한 도움을 주긴 하지만, 결국 꿈을 이루도록 이끄는 가장 강력한 힘은 열정적으로, 끈기 있게 일에 몰입하는 태도이다. 그리고 그렇게 자신의 일에 집중하게 만드는 원동력은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다. 그리고 그렇게 일을 열정적으로 하다 보면, 점점 더 새로운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고, 일에 있어서 남들이 발견하지 못하는 혁신을 이룰 수도 있다.
피카소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대표적인 화가로 꼽히는 앙리 마티스의 경우가 그러하다. 마티스가 르누아르와 비슷한 점은 그림 철학에 있었다. 그도 역시 르누아르처럼 행복한 그림을 추구했다. “그저 내 그림들이 봄날의 밝은 즐거움을 담고 있으면 한다”고 그는 말했다.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행복하도록 색채를 주의 깊게 연구하여 그 이전의 화가들보다 더 감각적이고 화려하면서도 혁신적인 색채를 선보였다. 사람들의 고정관념을 깨트리는 강렬한 색채 구성과 단순한 형태 묘사를 통해 미술계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사실상 색을 형태로부터 해방시킨 혁신가였다. 그래서 그를 가리켜 ‘색채의 마술사’라 부르기도 한다.
그러나 그도 역시 나이 72세에 십이지장 암을 앓았다. 두 번이나 큰 수술을 받아야 했다. 폐 색전증과 관절염 등도 앓았다. 그는 수술 이후 일어서서 그림을 그릴 수 없었다. 또한 유화 물감이 그의 건강에 치명적이라서 유화를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 그림 그리기를 사랑하는 마티스로선 받아들이기 어려운,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마티스는 위기를 기회로 만들었다.
침대에 눕거나 엎드려서도 작품을 만들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색종이와 가위를 사용해서 작품을 만드는 시도였다. 제자들이 종이에 색을 칠해놓으면 마티스가 가위로 그 종이를 오려 붙이면서 자신이 작품을 완성했다. 이 방식을 ‘컷 아웃’(Cut-Out) 기법이라고 부른다. 붓을 들 수 없지만 붓 대신 가위를 들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미술 세계를 선보인 것이다. 그의 컷 아웃 대표작 중에 하나인 ‘이카루스’(Icarus)는 그의 치열한 예술혼을 보여주는 듯 하다.
이카루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이다. 미노스 왕에 의해서 아버지 다이달로스와 함께 미궁(迷宮)에 갇힌다. 다이달로스는 고심하던 끝에 갇힌 방의 창문에 드나드는 새의 깃털을 모아서 밀랍(蜜蠟)을 붙여서 날개를 만들었다. 그 날개를 달고 뛰어내리면서 아버지는 아들에게 당부한다. “태양에 가까이 가면 밀랍이 녹아서 바다에 떨어지니, 절대 너무 높이 날아선 안 된다” 그러나 처음으로 하늘을 나는 희열을 맛보는 이카루스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점점 더 높이 날아 오른다. 결국 밀랍이 녹아 내려서 이카루스는 바다에 떨어져 죽는다.
그의 나이 78세 때 완성한 이 작품은 단순하면서도 강렬한 느낌을 준다. 짙푸른 하늘에서 노란색 별들이 빛나는 가운데서 한 사람이 하늘에서 떨어지는데, 그의 가슴에 붉은 심장이 타오른다. 높은 데서 떨어지는 모습을 묘사한 것 같지만 어떻게 보면 하늘로 날아오르는 것 같기도 하다. 이카루스의 가슴속 붉은 심장을 주목한다면 떨어지는 모습이라기 보다는 날아오르는 비상(飛翔)으로 보는 것이 더 나을 듯 하다.
그의 심장은 높은 곳을 향해 점점 더 올라가려는 뜨거운 열정 혹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의지를 묘사한다. 주위에 있는 노란 별들 역시 그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반짝이는 별들이 이카루스의 비상을 박수 치며 응원하는 듯 하다. 마티스는 하늘로 날고픈 인간의 욕망을 푸른 색으로 상징한 것이 아닐까 싶다. 이카루스의 집념은 죽는 날까지 손에서 그림을 놓고 싶지 않는 마티스 자신의 의지가 아닐까 싶다. 마티스는 평생 아름답고 행복한 색깔의 그림이라는 저 높은 하늘을 향해 날아 오르고 싶었던 사람이다.
3. 작은 일에 쏟는 정성이 세상을 밝게 한다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한 몰입을 통해서 혁신을 이루어낸 또 한 사람의 화가가 있다. 프랑스의 인상파 화가 폴 세잔(Paul Cézanne, 1839-1906)이다. 그는 ‘현대 미술의 아버지’라고 불린다. 그는 22살 때 법대 공부를 접고 화가가 되기 위해 파리로 간다. 그러나 세잔의 초기 작품들은 대중의 눈길을 끌지 못했다. 심지어는 ‘치매에 빠져 그림을 그리는 백치’라는 조롱까지 받았다. 그는 꿈을 제대로 펴보지 못한 채 20년 가까운 파리 생활을 청산하고 고향으로 내려간다. 실패자의 이름을 안고 38살의 나이로 쓸쓸하게 낙향한 셈이었다.
고향에서 그는 거의 칩거하다시피 하면서 29년간 그림 연구에 골몰한다. 그는 형태의 외양보다는 형태의 본질을 탐구하기 시작했다. 보는 시점과 각도를 달리 하면서 자연을 관찰하자, 그의 눈에 사물의 조화와 균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는 인상주의가 시시각각 변화하는 빛과 순간의 풍경에서 받은 인상에만 집중하다가 과거의 그림들에 있었던 조화로운 구성과 균형감을 놓쳤다는 점을 깨달았다. 그는 자연을 원기둥, 구, 원뿔과 같은 기하학적 형태로 단순화시키게 된다.
또한 그는 사물을 보는 관점에서의 혁신을 이루었다. 지난 400여년 간의 서양 회화는 원근법을 그림의 기본 구도로 보았다. 하지만 세잔은 하나의 렌즈가 아니라 여러 가지의 렌즈로도 사물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사과를 비롯한 정물화 그리기와 역시 움직이지 않는 생트 빅투아르 산을 계속 그리면서, 그 모든 것을 다양한 각도에서 바라보았다. 그래서 결국 그는 서양 회화의 규칙을 통째로 바꿔 버리는 혁신을 달성한다. 하나의 시점이 아닌 다(多) 시점 그림의 시작이었고, 그의 혁신을 통해서 20세기 현대 미술이 탄생했다. 그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가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Still life with Apples and oranges)이다.
테이블 위에 천이 어지럽게 놓여 있고 사과와 오렌지가 담겨 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왼쪽의 접시와 사과는 비스듬히 위에서 내려 본 시점으로 그려졌다. 가운데 오렌지 접시는 정면에서 바라보는 시점으로 보이고, 오른쪽의 커피 포트는 약간 오른편 옆에서 바라본 시점으로 그려졌다. 오른편 위쪽 방향으로 경사진 테이블 때문에 이 정물들은 마치 흘러내리는 것 같다. 그러면서도 과일 하나 하나의 질감이 마치 사과 향기와 오렌지 향기가 바로 앞에서 풍겨 나오는 듯 생동감이 있다.
그는 이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무려 6년의 시간을 썼다고 한다. 그는 사과 하나가 썩을 때까지 계속 여러 차례 그렸고, 사과 하나만을 온종일 쳐다보기도 했다. 하나의 정물화를 완성하기 위해 100회 이상 붓질을 하는 때도 많았다.
그렇게 16년 동안 몰입해서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 세계를 창출한 세잔의 작품은 그의 나이 55세 때에 비로소 세상의 주목을 받는다. 그리고 수많은 당대 화가들의 찬사를 한 몸에 받는다. 20세기 추상주의의 대표자인 피카소는 세잔을 가리켜 “나의 유일한 스승, 우리 모두의 아버지‘라고 지칭하기도 했다. 그는 유명해진 다음에도 계속 고향에서 조용히 작품 활동을 지속했다. 1906년 10월 어느 날, 비가 쏟아지는 가운데서 비를 맞으며 그림을 그리다가 마침내 쓰러져 68세로 생을 마감했다. 그는 죽을 때까지 손에서 붓을 놓지 않은, 그림에 미친 사람이었다. 그림에 미쳐 살았기에, 그는 그림의 혁신을 이룰 수 있었다.
르누아르, 마티스, 세잔, 이 위대한 화가들의 생애를 보면서, 나 자신을 돌아본다. 나는 과연 이들 정도로 미쳤나? 생각해본다. 내가 하는 일을 이 정도로 사랑해서, 이 정도로 미쳐보았나? 성찰의 질문을 던져본다. 내가 하는 일이 곧 나 자신이라면, 내가 그 일과 연애에 빠졌다면, 내가 그 일을 통해서 행복한 인생을 사는 것이라면, 나는 그 일에 더 나 자신을 헌신해야 하지 않을까? 그동안 일을 해 오면서 ”불성실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는 아니었지만, 또한 “미쳤다”는 평가를 스스로에게 내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다. 정말 내가 하는 일을 사랑하고, 그 일이 소중하다고 확신한다면, ‘미쳤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내가 하는 일에 더욱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영화 [역린]에서 인용되어 많은 사람에게 알려지게 된 [중용](中庸) 제23장의 글귀가 있다.
“작은 일도 무시하지 않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작은 일에도 최선을 다하면 정성스럽게 된다. 정성스럽게 되면 겉으로 배어 나온다. 겉으로 드러나면 이내 밝아진다. 밝아지면 남을 감동시킨다. 남을 감동시키면 이내 변한다. 변하면 생육된다. 그러니 오직 세상에서 지극히 정성을 다하는 사람만이 나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지는 알 수 없다. 일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이 언제까지 지속될 지도 알 수 없다. 언젠가는 하고 싶어도 일을 할 수 없을 때가 올 것이다. 그 날이 오기 전까지는 일을 놓고 싶지 않다. 마지막 숨이 끊어지는 그 순간까지도 내 손은 일하는 손이고 싶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에 더 몰입해서 더 정성을 쏟아야 한다. 남이 알아 주건 알아주지 않건 신경 쓰지 말고 오롯이 마음을 일에 집중해야 한다. 일에 흠뻑 젖어 살다 보면 시간 가는 줄 모르는 즐거움이 나를 사로잡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일이 더 가벼워지고 일이 더 새로워지고 일이 더 나를 행복으로 이끌 것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을 통해서 유익을 누리는 사람들도 더 늘어날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조금씩 더 행복해질 것이다. 나도 행복하고 남들도 행복해진다면, 이보다 더 멋진 일이 어디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