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미술 거장전'을 관람하고
-전시회 리뷰/미술관 투어 (5)
2025년 7월 27일까지 이태원에 있는 ‘모다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한국현대미술 거장전’을 관람했다. 익숙한 현실을 낯설게 표현한 “현실과 환상의 경계” 그리고 매체와 장르의 기존 틀을 넘어서 새로운 실험정신을 보여주는 “동시대 예술의 실험과 도전”이라는 두 주제 하에 12명의 화가들의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김구림,이건용,한만영,이희돈,고영훈,이석주,강형구,정복수,이목을,이이남,고상우 등 오랫동안 그림을 그려온, 한국 화단의 거성들이라 할만한 분들이다.
이 중에서 네 명의 작품이 내 눈길을 끌고 마음에 안착했다. 하나는 고영훈 화백의 ‘어제 오늘 그리고 내일 23’이다. 흰 색 항아리 세 점을 그렸는데, 세월의 풍상을 많이 겪어서인지 곳곳에 흠집이 나고 때가 묻은 초라한 항아리이다.그중에 가운데만 선명하게, 나머지 둘은 흐릿하게 처리했는데, 세번째가 약간은 더 선명하다. 제목 그대로 사람의 과거, 현재, 미래를 잘 표현한 것 같다. 현재는 지금 살고 있으니 선명하지만, 과거는 이미 지나갔고, 미래는 아직 안 왔지만, 미래는 현재의 삶을 기초로 열매로 산출되는 것이기에 과거보단 조금 더 선명한 것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결국 모든 항아리의 모양에서 인생살이가 과거든, 현재든, 미래든 늘상 곤고하고 힘에 겨울 수 밖에 없다는 공감어린 진실을 담고 있다. 사람을 항아리에 비유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무엇을 담는가에 따라 그 항아리의 가치는 달라질 것이니, 내가 평소에 내 인생에 무엇을 담고 사는가?를 도전하는 작품인 것 같다.
그리고 이와 유사하게 인생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서 강형구 화백의 ‘소크라테스’가 있다. 2층에서 1층 내려가는 계단에 거대하게 걸린 작품이라 보자마자 움찔 놀라게 된다. 거대한 크기와 그림의 색채에도 위압감이 들지만 무엇보다 소크라테스의 눈빛이 매우 강렬해서 나를 꿰뚫어 보는 것 같다. 화가가 의도한 것이 바로 이 지점일 것이다. 나 자신의 속마음과 살아온 내력을 속속들이 꿰뚫어 보는 듯 바라보는 소크라테스의 눈매를 통해서, 문자 그대로 나 자신에 대해서 깊이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지라고 훈계하는 것 같다. 그림을 한참 보노라니 나훈아 선생님이 소크라테스를 소재로 불렀던 노래 ‘테스 형’의 가사도 떠오른다.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아! 테스형, 소크라테스형, 사랑은 또 왜 이래. 너 자신을 알라며 툭 내뱉고 간 말을 내가 어찌 알겠소 모르겠소 테스형”
고상우 화백이 그린 ‘운명’과 ‘터널’ 역시 생각할 꺼리를 던져주는 작품들이다. 호랑이와 북극곰을 그렸는데, 호랑이의 색채는 화려하지만 동시에 아련한 느낌이 들고 호랑이 주위에는 나비들이 날고 있다. 북극곰의 눈빛은 약간 슬퍼 보인다. 호랑이도 멸종 위기에 놓여 있고,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온도 상승으로 인해 빙하들이 녹으면서 북극곰도 생존의 위협을 받고 있는 지구촌의 현실을 곱씹게 만드는 작품들이다. 호랑이와 북극곰이 생존의 위기에 몰린다는 것은 지구촌에 함께 살아가는 인간을 비롯한 모든 존재들의 생존도 위험하다는 싸인이니만큼, 지구생태계를 보호하는 삶이야말로 나 자신과 가족의 미래를 지키는 길임을 이 그림을 보여주는 것 같다.
이번 전시회에서 나의 발길을 가장 오래 붙잡은 작품들은 이이남 화백의 미디어아트 작품 ‘만화-병풍Ⅲ-상상된 경계들’과 ‘초충도’이다. 백남준 화백의 미디어아트를 비롯해서 몇 편의 미디어아트를 봤었지만 별로 감흥을 느끼지 못했는데, 이 작품에는 마음이 끌렸다. 아마 그 배경으로선 얼마 전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서 열린 ‘조선 민화전’을 관람했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조선 시대의 병풍들을 대량으로 전시했었는데, 그 때 본 병풍과 같은 내용의 미디어아트라서 익숙하게 다가왔다. 병풍 그림 자체도 아름다운데 이렇게 미디어아트 기법을 넣어서 그림속의 물이 흐르고, 새가 날고, 곤충들이 기어다니고, 눈발이 휘날리며, 새와 곤충들이 지저귀는 소리들도 들려오니, 마치 내가 조선 시대 어느 산골짜기로 시간여행을 가서 시냇물가에 앉아 쉬고 있는듯한 기분이 들었다. 이렇게 상상력을 자극하고 오감을 다 만족시키는 예술이라면 미디어아트가 앞으로 많은 사람들의 정서를 행복하게 하는 데에 기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작품이라면 내 집이나 사무실에 설치해두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두 작품을 통해서 그동안 생경하게 느껴졌던 미디어아트에 대해서 거리감이 줄어들고 호감이 생기게 된 점이 나에게 큰 의미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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