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rape Apr 20. 2023

나만 느낄 수 있는 향

달래장

어느 예능 프로그램에서 한 연예인이 혼자 척척 요리하는 모습을 보았다. 봄의 기운을 충전시키겠다는 목표 아래, 달래를 재료로 한 온갖 음식을 만드는 것이었다. 달래된장찌개, 달래장, 새우달래전까지. 그 연예인의 능숙한 솜씨도 눈길을 끌었지만, 달래 또한 내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것 같다. '달래는 곧 봄이다(?)!'


내게 달래는 도전적인 식재료였다. 게다가 마트에 포장된 달래에는 따로 양도 적혀있지 않아 처음부터 당황했다. 마트 직원분께 물어보니 대략 110g 정도 나온다고 했다. 비율에 따라 레시피를 잘 조절해야 했다. 그렇게 나는 겁도 없이 한 단씩 포장되어 있는 달래를 네 팩이나 사서 돌아왔다.



나의 목표는 달래장이었다. 친구에게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주고픈 반찬 선물이었기에, 되도록 간단히 보관하고 꺼내먹을 수 있는 달래장으로 정한 것이었다.


먼저 달래를 손질해야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당황의 연속. 가는 초록 줄기 끝 동그랗게 달린 흰 알뿌리들. 묻어 있는 흙을 털고 무른 껍질들을 벗기다 보니 어느새 잡생각이 싹 사라졌다. 나중에는 내 멋대로 손만 움직이는 느낌마저 들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가 나긴 했지만, 달래와 물아일체가 된 듯한 그 감각만큼은 뭔가 신비롭기까지 했다. 손끝에 은은하게 남은 달래향. 이건 나만 느낄 수 있는 향이었다.


이렇게 일차적으로 손질이 끝나고 나면, 식초를 푼 물에 5분 정도 달래를 담가둔다. 그리고 줄기 부분을 잡고 알뿌리 부분을 살랑살랑 흔들며 물로 계속 헹구어낸다. 그렇게 흙이나 다른 불순물이 없어질 때까지 헹궈준 다음, 흐르는 물에 줄기도 함께 씻어준다.



깨끗이 세척한 달래를 1.5센티미터 길이로 썰어준다. 취향에 따라 더 잘게 썰 수도 있지만, 나는 식감을 위해 길이를 좀 더 남겨주었다. 이때 알뿌리 부분은 칼등을 살짝 눌러 으깨준다. 그래야 달래 특유의 향긋함이 더 살아나기 때문이다.


다음에는 고춧가루, 양조간장, 참기름, 올리고당, 통깨를 섞어 양념장을 만든다. 그리고 그 위에 아까 썰어둔 달래를 넣고, 숨이 최대한 죽지 않도록 살짝살짝 섞어주면 완성이다.



달래장의 활용도는 무궁무진하다. 맨밥은 물론 두부, 달걀프라이 등에 올려도 좋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조합은 구운 김이다. 구운 김 위에 밥을 올린 다음, 달래장을 살짝 얹어 함께 싸 먹는 것이다. 그 모양도 먹음직스럽지만, 구운 김과 달래장 각자가 내는 은근한 향이 매력적이다.      


요리는 몰입감은 물론 성취감도 선사한다. 평소 잡생각이 많은 나에게 그 해소법이 되어준다. (물론 귀차니즘을 이겨내야 한다.) 인터넷 레시피들을 통해 나름 많은 요리를 시도했지만, 그중에서도 달래장은 손에 꼽힐 것 같다. 잡생각을 없애주는 요리로.


달래 손질에 이렇게 시간이 드는 줄 몰랐다. 그래도 이 달래장을 받을 사람들. 내 소중한 사람들을 생각하니 그마저도 기쁘고 즐거웠다. 맛있게 먹었으려나. 너무 맵진 않았으려나. 서툴고 부족한 솜씨지만, 마음만은 가득 담겼다는 말로 열심히 포장하고 싶다.


요리를 하다 보면 식재료 마련부터 손질, 조리와 플레이팅까지 소소한 단계들이 펼쳐진다. 그 단계들을 하나하나 차분히 해내는 묘미가 있다. '당장 이걸 어떻게 다하지?' 하는 부담이 있더라도, 시간을 들여 차근차근하다 보면. 어느새 레시피 속 사진과 비슷한 음식이 눈앞에 나타나있다. 맛도 나쁘지 않으면 더없이 감사하고 뿌듯하다.


그래, 일단 시작하면 뭐라도 된다.

해보자.

매거진의 이전글 추억의 캔을 따보자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