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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Aug 29. 2019

인생은 지르고 보는 것이다

6년 근무에 6개월 안식휴가를 위한 꿈과 희망의 설계


딱 6년 전 이맘때다. 노원역에 있는 한솔 요리학원에 수강신청을 했다. 한 달 코스였다. 당시 9월 1일부터 6개월 안식휴가를 받았다. 안식휴가란 일정한 근속연수에 달한 직원에게 재충전과 자기 계발의 기회를 주려고 허락하는 특별 유급휴가다.

내가 다니는 직장은 6년 근무하면 6개월 유급휴가를 준다. 상반기, 하반기 두 번 나뉘어 실시된다. 기별 제한 인원은 2명, 근무년수에 따라 결정된다. 상반기는 3월 1일부터, 하반기는 9월 1일부터 시작된다. 1998년 한 근무자가 과로사하면서 이후 안식년 제도가 도입됐다.

2013년에 이어 이번이 두 번째인 셈이다. 당시 요리에 대한 도전은 내게 신의 한 수였다. 그때 요리를 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없다. 아내에게 즐거움을 주는 일이 줄어들었을 것이고, 처가 생활을 주체적으로 감당하기에도 벅찼을 것이다.

처가에 살면서 눈치 보며 산 적은 없지만, 적어도 지금처럼 떳떳한 자신을 기대하진 못한다. 장인 장모님의 건강을 그나마 유지하지도 못했을 것이고,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계기조차 가지지 못했을 것이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때 지른 것이 나를 변화시키는 계기가 됐다.

사실 요리는 내게 최악의 가능성이었다. 대구에서 주로 자란 나는 가부장적인 질서가 몸에 밴 남자였다. 대구는 안동 못지않게 유교의 영향이 센 지역이다. 제사 문화가 발달해 친족 네트워크가 활성화돼 있다. 이종간 보다는 친족 간 왕래가 활발했다. 친 사촌 간의 우애가 상당하다.

대구의 동기 문화는 호남 못지않게 끈끈하다. 여전히 프로야구 응원은 삼성 라이온즈를 떠나지 못한다. 거의 30년 만에 만난 고등학교 동기와 최근 친분을 유지하고 있는 것도 대구라는 지역의 특성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에서 산 기간이 훨씬 넘었음에도 대구는 여전히 나를 끌어당긴다.

대구는 음식 문화가 다채롭지 않은 편이다. 너무 더워 맵고 강렬한 음식을 선호한다. 엄마의 요리에 대해 뚜렷한 기억이 없는 이유가 그래서였을 것이다. 엄마의 요리가 아이에게 분명히 각인된다면 그 아이는 성인이 돼 요리에 쉽게 접근할 수 있다.

그런 내가 요리에 입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저지름’ 때문이다. 인생은 때론 저지르는 것이다. 앞뒤 잴 필요 없이 저질러 보는 것이다. 저지름이 무모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저지른다는 것은 뜻하지 않은 삶의 원동력이 된다. 내가 과연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만 갖고는 지르기 어렵다.



자신을 바꾸는 일은 어렵다. 더욱이 직장에서 8시간 이상을 보내면서 자신을 바꾸기는 더더욱 어렵다. 생각하고 주도하고 체험하는 시간을 자신에게 오롯이 집중하는 일은 의미가 크다. 6개월은 경험상 자신을 만드는 충분한 시간이 아니다. 자신을 바꾸기 위한 ‘저지름’의 시간이고 계기가 되는 의미다.

개인의 문제를 여럿이 함께 궁리하고 지원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꿈같은 얘기다. 대부분 혼자서 계획하고 저질러야 한다. 일단 저질러 놓고 계기를 만든 후 매일 꾸준히 하는 것만이 자신을 바꿀 수 있다. 2013년 나는 그렇게 저지른 후 아침 집밥 7년, 인스타그램 3년으로 나를 만들었다.

올 하반기 나를 업그레이드하기 위한 절체절명의 기회가 다시 왔다. 이번에는 살짝 고민이 들기도 한다. 최근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콘텐츠에 관해 관심이 많아졌다. 너도나도 크리에이터를 꿈꾼다. 뭔가를 생각하면 그걸 구체적인 형태로 표현할 수 있는 능력이 그것이다.

이번 안식휴가는 일단 여행과 독서, 글쓰기에 집중할 생각이다. 이번 독서는 지난 휴가 때와 방향이 다르다. 구체적인 항목들을 잡아서 읽을 계획이다. 지난번에는 장황한 독서가 주가 됐다. 큰 차원의 담론도 중요하지만 디테일의 시대인 만큼 세부적인 지식을 얻고자 한다. 그것이 글쓰기에도 좋을 것 같아서다.




안식휴가는 휴양, 여행, 연구를 위해 보통 7년마다 대학교수나 선교사 등에게 주어지는 1년간의 유급 휴가를 말했다. 땅을 쉬게 하기 위해 7년마다 1년간 경작을 하지 않았던 옛날 히브리 전통에서 유래했다. 유대인들에게는 안식일이 있다. 자동차를 타지 않고 걸어 다니며, 심지어 엘리베이터 단추도 누르지 않는다.

대학에선 안식년을 연구년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7일에 하루 쉬듯 7년에 한 해 쉰다는 것은 꿈같은 얘기다. 오래 제대로 쉬기 위해선 구성원의 공동 지지가 필수적이다. 내 일을 누군가 대신해야 하고, 돌아올 자리가 있어야 하고, 경제적 지원까지 있어야 한다. 그런 지원이 장기적으로 더 큰 효율을 낳으리라는 합의가 있어야 한다.

6년 근무에 6개월 휴가는 동종업계를 비교해봐도 분명 좋은 제도다. 1년에 1개월 꼴인 셈이다. 근속연수에 차이는 있어도 1개월, 3개월 정도로 주는 사업장이 많다. 6년의 시간, 인생의 여정까지 돌아보게 하는 안식휴가. 여행이든 기량이든 뭐든 꾸준함을 만들기 위한 ‘저지름’이야말로, 자신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되리라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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