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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상철 Sep 11. 2019

라면과 김치를 마구 들이킨 날

7박 8일 파리 여행 동안 느껴야 했던 바케트 식사문화 체험


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라면에 김장김치를 썰어 먹는 맛이 이토록 맛있을 줄 몰랐다. 올리브, 포도, 토마토 등 과일과 야채, 각종 빵과 고기, 치즈, 햄, 각종 소스 등 맛 좋고 장점이 많은 식재료들과 요리 음식들이 널려 있는 유럽 여행을 하면서도 한식이 그리운 이유, 그 실체는 뭘까.  


9월 초 8일 동안의 파리 여행에서 먹는 것만큼은 가혹했다. 그때 주로 먹었던 것은 바게트와 크루아상, 햄과 치즈, 소스에 뿌려진 야채샐러드, 벌꿀 로열젤리와 과일, 소시지와 고기 종류였다. 사실 이런 종류의 먹거리를 일주일 동안 먹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 싶었다.


여행 전 나는 맛있는 빵과 고기를 일주일 동안 먹는다고 문제가 될 리 없다고 여겼다. 로망인 파리를 간다는 생각에 그냥 거꾸로 매달아 놔도 일주일은 갈 것이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나는 먹는 것만큼에는 자신이 있었다. 무엇이든 즐겨 해먹어 본 나로서는 못 참아낼 것이 별로 없어 보였다.  


숙박 장소도 먹거리에 변수였다. 여행 몇 개월 전 한인 민박을 잡으면서 조식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한식을 주겠다는 곳이 있고, 프랑스식 요리를 해주겠다는 곳도 있었다. 사실 사전 여행 계획을 잡을 땐 먹는 것보다는 위치가 더 중요한 법이다. 여행 동선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인 민박은 특히 현지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장점에서 많이 선택한다. 결국 나는 에펠탑에서 가깝고 치안이 좋은 16구 쪽 파시 역 부근에 있는 민박집을 정했다. 인터넷 홈피에 소개된 민박집 아침 사진들도 근사해 보였다. 최근 후기가 별로 없는 것 빼고는 프랑스식 가정요리는 괜찮은 듯 보였다.  


첫날 숙소에 도착하자 우리 부부는 다소 걱정이 됐다. 방이 좁은 데다 2층 침대로 분리돼 있었다. 여행 전 숙소를 잡을 때 알고는 있었지만, 막상 가서 보니 답답해 보였다. 특히 아내가 실망하는 눈치였다. 이 장소를 추천한 건 나였기 때문이다. 나는 여러모로 가성비가 좋다고 판단했다.  


숙소의 아침 식사시간은 8시 반. 여행이란 바쁜 일정을 비춰볼 때 다소 늦은 시간이긴 했지만, 아침을 먹는 것이 중요해서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나는 아침을 먹는 것이 신조다. 아침을 잘 먹어야 건강을 지킬 수 있다고 믿고 있다. 한국에서 아침 집밥을 직접 만들어 먹은 지도 6년이 넘었다.  


파리 한인 민박집이 내세운 프랑스식 가정요리 아침 요리. 아내는 ‘3분요리’라고 규정했다.


첫날 아침은 돈가스와 감자튀김, 샐러드가 나왔다. 비행기 여독의 허기와 여행의 기쁨이 있던 터라 맛있게 들어갔다. 샐러드 소스가 다소 진한 맛이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아내와 나는 한 그릇 싹 비웠다. 영국에서 막 넘어온 숙소 여행객 젊은 여성 두 사람은 먹는 듯 마는 듯 보였다.  


여행 첫날은 일요일이라 그런지 거리가 한적했다. 영업하는 가게는 별로 없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면서 점심과 저녁을 빵과 햄버거로 대충 때웠다. 정말 파리의 평일 저녁은 가게들이 일찍 문을 닫고, 일요일은 아예 영업을 하지 않는 곳이 많았다. 그나마 맥도널드 점은 문을 열었다.


날이 갈수록 아침을 먹는 양이 줄었다. 4일째는 아예 먹질 못했다. 민박집 남자 사장이 30분 전에 일어나서 해주는 요리가 오죽했을까. 아내는 ‘3분 요리’라고 투덜댔다. 내가 추천한 민박집이라 아무 말도 못 했다. 냉동식품을 사다가 레인지에 데우고, 메이드 소스를 뿌려주는 것 같았다.


사실 국내에서도 이런 방식의 식사는 흔하다. 이미 주식인 쌀 섭취량도 30%를 넘지 못한다. 핵가족과 1인 가구, 맞벌이 시대가 되면서 집밥도 멀어졌다. 프랑스식 바게트, 이탈리안 피자, 영국식 브래드 식빵, 벨기에식 와플, 미국식 햄버거 등 빵 문화가 국내에도 이미 대중화돼 있다.  


각종 소스들도 시중에 많이 나와 있어 굳이 힘들게 만들 필요가 없어졌다. 이런 마당에 멀리 파리까지 가서 호강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다. 그렇지만 현실은 냉정했다. 토마토소스에 피자를 얹어 만든 라자냐는 밍밍하고 느끼해 몇 술 뜨지 못했다. 샐러드 양상추는 얼마나 보관했는지 잎 가장자리가 거멓게 변해가고 있었다.  


파리에서 가장 많이 먹은 것은 바게트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빵 ‘바게트’는 프랑스어로 막대기를 뜻한다. 밀가루, 소금, 물, 이스트 4개의 재료로 만든다. 바게트가 딱딱한 이유는 구울 때 물을 뿌려가며 구워 겉은 딱딱하지만 속은 굉장히 부드러운 식감을 갖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주식으로 많이 이용되고 그냥 먹어도 되지만 버터, 잼 등 취향에 맞게 곁들여 먹는다.  


파리에서 먹은 음식들은 대체로 수분이 적은 식사였다. 소스도 질퍽하고, 빵과 고기류, 감자튀김이나 햄 등은 모두 수분에 취약성이 있다. 먹고 돌아서면 물을 찾게 되지만, 생수 값도 비싼 편이었다. 커피조차 에스프레소로 진하게 먹는다. 과실, 열매들, 치즈, 꿀, 포도주, 허브 등의 진액 섭취가 오히려 수분 부족이라는 단점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파리 5성급 호텔 아침 조식과 마레지구 한 식당에서 먹은 오리고기 요리.


파리에 있는 동안 변비까지는 아니었지만, 한국에서의 속 시원한 배변습관이 흐트러졌다. 환경변화로 인한 스트레스와 긴장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무엇보다 먹는 것에 대한 변화가 더 큰 요인이었던 것 같다. 바게트와 같은 뻑뻑한 것들과 당도가 높은 음식들을 주로 섭취한 이유다.  


서양은 국물 있는 요리가 별로 없다. 그나마 스튜 정도가 있지만 그것도 졸여 먹기 때문에 수분이 줄어든다. 고기는 주로 구워 먹고, 소스를 많이 사용한다. 간은 주로 소금을 많이 이용하기 때문에 수분을 흡수하는 요인이 된다. 한국은 간장과 액젓도 함께 사용하기 때문에 수분 공급에 장점이 있다.  


한식에서 간은 주로 간장을 이용하고, 소금은 보조적인 역할을 한다. 간장은 된장을 만들 때 나오는 것으로 발효 음식이다. 한식은 마늘을 다져서 주로 사용하고 향신 재료로 대파를 많이 사용한다. 고추를 가루로 내서 많이 사용하고, 서양은 같은 고추 종류인 파프리카를 많이 먹는다.  


한식은 주식인 쌀을 기본으로 국과 찌개와 같은 국물 요리가 많고, 밑반찬을 활용함으로써 영양을 보조한다. 무엇보다 한식은 채소의 잎과 함께 줄기를 많이 섭취하는 편이다. 대표적인 게 나물 요리다. 반면 서양은 부드러운 잎사귀를 많이 먹는 것 같다. 기름은 올리브유를 먹지만 한식은 들기름, 참기름을 많이 쓴다.  


국물 요리는 수분을 많이 보충해줄 뿐만 아니라 미각을 즉각 느끼게 한다. 고기나 빵은 씹어 잘게 부서지면서 양분이 침에 녹아 미뢰에 전달된다. 과일이 풍부한 유럽에서 많이 먹는 주스가 금방 맛을 느끼기에 좋지만 당도의 흡수가 높고 양이 많아지는 단점도 갖는다. 과일을 그냥 씹어 먹을 경우 포만감과 당도를 점진적으로 취할 수 있다.  




라면은 국물 요리로 미각을 가장 강렬하고 즉각적으로 작동시키는 음식이다. 수프가 그 비밀이다. 수프에 있는 msg 성분은 물에 금방 녹아 뒷맛을 강력하게 느끼게 한다. 생으로 침에 녹여 먹어보면 금방 느낄 수 있다. msg의 대표적인 조미료가 미원이다. 일본에서 처음 만들어져 한국에 들어왔다가 지금은 다른 대체제로 퇴출됐다.


글루타민산나트륨으로 불리는 msg는 라면 수프나 조미료, 과자 등에 들어있는 식품첨가물로, 식품에 감칠맛과 향을 더하는 작용을 한다. 1960년대 말, 다량의 msg를 섭취하면 두통, 근육경련,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는 보고가 나왔다. 주로 중국 음식을 먹고 나서 이러한 증상이 생긴다고 해서 ‘중국음식점 증후군’으로도 불렸다.


단백질은 아미노산으로 이뤄져 있는데 그중 10~40%가 msg의 글루탐산이다. 단맛은 우리 몸의 에너지원인 탄수화물을 찾기 위해 생겨난 맛이고, 짠맛은 신경 활동에 꼭 필요한 소금을 찾는 맛이다. msg는 단백질을 찾는 맛인 셈이다. 글루탐산은 고기에만 많은 것이 아니다. 치즈에도, 토마토에도 많다. 심지어 모유에도 많다.


msg 자체는 설탕처럼 몸에 해롭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문제는 재료의 고유한 맛보다 감칠맛에 더 길들여지는 데 있다. 좋은 고기로 제대로 우려낸 고깃국물과 같은 진짜 맛을 잊게 될 우려가 높다. 다양한 맛과 풍미 대신 msg가 주는 간편한 감칠맛에만 만족해 점점 더 많은 msg를 찾게 되고 결국 중독이 될 수도 있다.  


라면은 면발이 불지 않고 쫄깃한 맛이 나야 맛있다. 그러려면 높은 온도에서 빨리 익히는 것이 관건이다. 라면 물을 끓일 때 수프를 처음부터 같이 넣고 끓이면 더욱 좋다. 수프를 녹인 물을 가열하여 팔팔 끓을 때 온도가 물만 넣고 끓일 때보다 훨씬 높기 때문이다. 수프를 물에 녹이면 용액이 되고 이 수용액은 물보다 끓는점 오름이 일어나 물의 끓는점인 100보다 더 높은 온도에서 끓게 된다. 국이나 찌개 등도 같은 원리로 적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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