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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수 May 06. 2016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상징들: "퍼기의 아이들"

유나이티드 트레블의 주역, "퍼기의 아이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1부 리그 우승 20회. FA컵 우승 11회. 챔피언스리그 3회. 잉글랜드 구단 최초 트레블. 리버풀과 함께 잉글랜드 역대 최고 구단 1순위를 다투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상징이 된 그들의 이야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편은 네 포스트로 나눠 쓸 것이다. 첫 번째 포스트는 <버스비의 시대와 암흑기>, 두 번째 포스트는 <"캡틴 마블"과 퍼거슨 연대기의 시작>
, 세 번째 포스트는 <퍼기의 아이들>, 마지막 포스트는 <"퍼기의 아이들" 이후>다.





니키 버트(Nicky Butt)는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덜 알려진 선수다. 수비형 미드필더라는 포지션의 특성과 화려한 플레이를 추구하지 않는 플레이 스타일이 그 이유인 것 같은데, 분명 버트는 1990년대 중후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은 선수였다. 

맨체스터에서 태어난 버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스 팀에서부터 자신의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클래스 오브 '92"라 불리는 데이비드 베컴, 네빌 형제, 폴 스콜스와 함께 FA 유스컵을 우승한 그는 -- 긱스는 그때 이미 1군 선수였다 -- 1992/1993 시즌, 만 20살도 되지 않은 나이에 1부 리그 데뷔전을 치를 만큼 뛰어난 실력을 뽐냈다 -- "클래스 오브 '92" 중 오직 라이언 긱스만이 버트보다 더 이른 시즌(1992/1993)에 1부 리그 데뷔를 치렀다. 비록 버트가 정기적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것은 1994/1995 시즌부터지만 그의 빠른 데뷔는 당시 퍼거슨과 유나이티드 코치들이 버트에게 건 기대감이 컸다는 것을 보여준다.


버트는 1994/1995 시즌부터 정기적으로 출전 기회를 받기 시작하며 빠르게 성장했다. 주로 수비형 미드필더로 출전한 그의 피지컬은 파트리크 비에이라의 피지컬처럼 괴수 같지는 않았지만 지능적인 플레이와 민첩한 움직임을 가져가기에는 최적화되어 있었다. 패스를 예측하거나 공의 흐름을 판단해 상대팀 패스를 차단하는 것은 버트의 많은 장기 중 하나였다.


나는 버트를 좋아한다. 그는 엄청난 미드필더다. 그는 열정적이고, 전진하는 플레이에 일가견이 있으며, 패스도 잘한다 - 펠레, 축구의 아이콘


그는 19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최고의 활약을 펼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 팀의 주축 중앙 미드필더였던 폴 스콜스와 로이 킨이 징계 때문에 나오지 못해 버트에게는 다소 무겁고 생소한 롤이이었던 중원 지휘자 역할을 맡으며 선발 출전했는데, 버트는 투지 넘치는 플레이와 헌신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팀의 중원을 이끌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구단 공식 홈페이지는 당시 버트의 플레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그는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부지런하고 활발한 90분을 보냈다."

버트는 어찌 보면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불운했던 선수다.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총 387경기에 나와 인상적인 활약을 펼치고 엄청난 커리어를 쌓았지만 더 화려하고 꾸준한 활약을 펼쳤던 동료들과 너무 막강한 포지션 경쟁자였던 로이 킨 때문에 비교적 적은 출전 기회와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한 가지는 여전히 사실이다: 버트는 유나이티드가 힘든 상황일 때마다 궂은일을 도맡아 하고 결정적인 순간에 뛰어난 활약을 펼친 유나이티드의 상징적인 선수였다. 그가 만약 바르셀로나에서 바이에른 뮌헨을 상대로 좋은 모습을 펼치지 못했다면 유나이티드의 트레블은 없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보겠다: 레알 마드리드의 갈락티코 1기가 실패한 가장 큰 이유는 클로드 마켈렐레의 방출 때문이었다. 당시 레알 마드리드의 스쿼드는 전설적인 수준이었지만 팀의 수비적인 기둥을 맡는 마켈렐레가 팀을 떠나자 공수 간의 밸런스가 맞지 않아 모두가 예상한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 했다. 공격은 위협적이었지만 수비가 항상 불안했고, 결국 갈락티코 1기는 처참히 막을 내려야 했다. 분명 버트와 마켈렐레는 실력과 네임 밸류에서 차이가 나지만, 중요한 것은 버트나 마켈렐레 같은 선수가 없어 팀에 궂은일을 수행하는 선수가 없다면 밸런스가 무너져 팀이 빠르게 쓰러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버트는 진정한 "Unsung Hero"였다.


https://youtu.be/uigMSfM-_Mk


한편 중앙 미드필더 자리에 니키 버트가 로이 킨이라는 전설적인 포지션 경쟁자에 가려 큰 빛을 보지 못할 때 왼쪽 풀백 자리에도 버트와 비슷한 경험을 한 "퍼기의 아이들" 멤버가 있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했던 왼쪽 풀백 데니스 어윈에게 밀려 한동안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 했던 그의 이름은 필 네빌(Phil Neville). 비록 그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비교적 일찍 떠난 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맨으로 은퇴하지 않았지만 유나이티드의 성공을 묵묵히 도운, "퍼기의 아이들"을 거론할 때 절대 잊지 말아야 하는 인물이다.

필 네빌은 안정적인 플레이 펼치는 왼쪽 풀백이었다. 동시대에 뛰었던 애슐리 콜처럼 폭발적인 스피드나 공격력도, 필 네빌 이후 유나이티드 부동의 왼쪽 풀백으로 뛴 파트리스 에브라처럼 엄청난 체력과 활동량을 자랑한 선수도 아니었지만 묵묵히 자신의 임무에 집중하며 수비에 안정감을 더했다. 유나이티드에서 뛴 11시즌 동안, 에버튼에서 뛴 8시즌 동안 필 네빌은 항상 그렇게 성실하고 꾸준한 선수였다.


나는 6시 30분에 출근하고 가장 늦게 집에 돌아가는 사람 중 한 명이었다. 나는 집에 가기 싫었다. 나는 내 직업을 사랑했고, 이는 정말 대단했다. - 필 네빌


커리어 기록은 필 네빌의 꾸준함을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1990년대 후반까지 데니스 어윈에게 밀려 주전 자리를 보장받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출전 기회를 서서히 늘려간 그는 2000년 정도부터 유나이티드의 핵심 선수로 자리매김했는데, 그 이후 매 시즌마다 40경기에 가깝게 출전해 꾸준함과 성실함의 아이콘으로 거듭났다. 왼쪽 풀백이라는 포지션 특성상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총 여덟 골 밖에 넣지 못했지만 그의 수비 기여도는 팀 수비를 안정화시켰다 -- 그는 능력을 인정받아 잉글랜드 대표로도 총 59경기를 뛰었다.

 


축구에 만약은 없지만 만약 애슐리 콜이라는 역대급 풀백이 동시대에 뛰지 않았더라면, 만약 데니스 어윈의 하락세가 빨리 왔다면 필 네빌은 잉글랜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더 주목받고 중용 받았을 것이다. 동시대 포지션 라이벌들과 어윈의 화려함과 재능에 가려 필 네빌이 묵묵하고 성실하게 이룬 모든 것이 잊히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반면 동생 네빌과 달리 형 네빌은 유나이티드에서 더 오래 뛰고 더 큰 사랑을 받았다. 냉정하게 말해 더 완성된 실력과 플레이 스타일을 갖췄기 때문이었는데, 비록 은퇴 후 발렌시아의 감독으로 처참한 성적을 기록해 많은 비판과 비난을 받았지만 그가 선수 생활 동안 펼친 활약은 전무후무한 수준이었다. 

형 네빌의 이름은 게리 네빌(Gary Neville). 아직도 잉글랜드 역사상 최고의 라이트 백으로 평가받는 선수다.



게리 네빌은 필 네빌의 상위 호환 버전이었다. 화려한 플레이나 개인기를 보여주지는 않았지만 활발한 활동량과 날카로운 크로스, 적절한 오버래핑으로 지능적인 움직임을 가져가 공수 가담이 완벽에 가까운 풀백으로 활약했다 --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물론 잉글랜드 대표팀도 게리 네빌을 부동의 라이트 백으로 기용했다. 리더십까지 자랑한 그는 2005년부터 약 5년 동안 유나이티드의 주장을 맡았다. 

실력에 대해 더 길게 이야기하자면, 게리 네빌은 잉글랜드를 넘어 역대 최고의 라이트 백 중 한 명이었다. 물론 필립 람이나 카푸 수준의 선수는 아니었다. 게리 네빌은 람과 카푸만큼의 임팩트와 파괴력을 자랑하는 선수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람과 카푸가 경기의 흐름을 바꿀 수 있는 선수들이라면 게리 네빌의 팀의 흐름을 따라가는 선수였다 -- 게리 네빌이 직접 유나이티드의 승리를 이끌었던 적은 극히 드물었다. 대신 바로 그 아래 단계의 선수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노련한 플레이를 펼쳤으며, 포배 라인의 한 명으로 수비 라인의 안정화를 가져왔고, 팀이 역습을 통해 공격을 할 때는 지능적인 오버래핑으로 공격을 도왔다. 만약 팀이 공격에 실패하면 바로 수비 진영으로 복귀해 안정적인 포백 라인을 다시 형성했다. 

1995/1996 시즌부터 주전 라이트 백으로 출전하기 시작한 그는 필 네빌을 뛰어넘는 꾸준함도 보여주었다. 약 20년 동안 유나이티드에서 뛰는 동안 무려 일곱 시즌에 40경기 이상 출전했고, 50경기 시즌도 두 번이나 치렀다. 잉글랜드 국가대표로도 무려 13년 동안 꾸준하게 활약해 전성기 시절에는 사실상 매 시즌 40경기 이상 출전한 셈인데, 많은 활동량을 가져가는 플레이 스타일도 그의 꾸준함에 장애가 되지 않았다 -- 게리 네빌은 그야말로 "파워 하우스"였다. 팬들은 매 경기 게리 네빌의 왕성한 활동량과 움직임을 볼 수 있었다. 


게리는 그 세대 최고의 잉글랜드 출신 라이트 백이었다 - 알렉스 퍼거슨


필 네빌이 유나이티드의 상징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그래도 그는 여전히 "클래스 오브 '92" 중 한 명이자 "퍼기의 아이들"을 대표하는 선수다 -- 게리 네빌이 유나이티드의 팀의 상징으로 불리는 것에 대해서는 그 어떤 이견이 없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한 곳에서 약 20년을 뛰면서 팀 역대 최다 출전 4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세우고 주장 역할을 잘 수행해내며 알렉스 퍼거슨이 이끈 유나이티드의 황금기에서 핵심 선수로 활약한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게리 네빌이 유나이티드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은퇴한 후 그의 수준에 버금가는 선수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그의 활약과 꾸준함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https://youtu.be/-tecStnWSJU


버트와 네빌 형제가 미디어와 팬들의 큰 관심을 받지 못 했을 때 한 선수는 그 누구보다 주목받았다 -- 심지어 너무 큰 관심을 받아 실력이 저평가 당하는 경우도 있었다. 배우의 외모와 180cm가 넘는 훤칠한 키의 주인공은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도 가장 스타성 있는 선수로 활약했는데, 그의 인기는 예전 조지 베스트나 데니스 로의 인기를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물론 실력도 잉글랜드에서 손 꼽힐 만했고, 유나이티드를 떠난 후에도 최정상급 실력을 보여주었다. 

이미 짐작했겠지만 다른 몇 명과는 달리 화려한 선수 생활을 보낸 이의 이름은 데이비드 베컴(David Beckham). 축구계를 넘어 배우 뺨치는 인지도를 자랑하는 진정한 슈퍼스타이자 아직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최고의 7번 중 한 명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사실 베컴은 유나이티드에서 총 여덟 시즌 밖에 주전으로 뛰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1995/1996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중용 받기 시작했다 -- 필 네빌을 제외한 니키 버트, 게리 네빌, 라이언 긱스, 폴 스콜스 모두 베컴보다 더 빨리 1군에서 기회를 잡았다. 커리어 전체를 보아도 유나이티드 소속으로 400경기도 뛰지 못했고, 100골도 넣지 못했으며, 주장으로 뛰지도 않았다. 

하지만 베컴에게는 기록으로 나타낼 수 없는 특별함이 있었다. 네빌 형제, 스콜스, 버트와 1992 FA 유스 컵을 우승한 그는 유나이티드의 유스 출신이자 유나이티드를 진정으로 사랑한 선수였다. 유나이티드 공식 홈페이지는 베컴을 이렇게 설명한다: "데이비드 베컴은 세계적인 선수지만 그의 일부는 항상 '레드'일 것이다." 사람들이 그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화려함 뒤에는 헌신적이고 성실한 선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저 사람들이 나를 열심히 노력하는 축구 선수로, 축구에 열정적인 사람으로 봤으면 한다 - 데이비드 베컴


베컴의 헌신적인 플레이는 1999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베컴은 오른쪽 윙이 주 포지션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중앙 미드필더가 부족했던 -- 로이 킨과 폴 스콜스가 징계로 경기에 나서지 못 했다 -- 팀의 상황을 이해해 중앙 미드필더로 선발 출전하며 팀의 극적인 역전승을 이끌었다. 주 포지션이 아닌 포지션에서 뛰어 부담감을 느꼈을 법도 했지만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유나이티드가 코너킥 상황에서 기록한 두 골도 모두 베컴의 발에서 시작된 것이었다.

실력 또한 출중했다. 그는 주로 오른쪽 미드필더로 뛰며 성실하고 끈기 있는 플레이를 펼쳤는데, 오른쪽 사이드에서 왕성하게 움직이며 결정적인 순간에 날리는 정확한 크로스는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 그의 킥에 대해 더 말하자면, 한 번은 중앙선에서 엄청난 슛을 날려 골을 넣은 적도 있고, 상대 페널티 지역 안에 있는 동료 선수의 머리로 정확하게 가는 크로스도 어려움 없이 날렸다. 특별히 슛이 강하거나 멋진 것은 아니었지만 아직도 사람들은 "킥"이라는 단어를 보면 데이비드 베컴의 "택배 크로스"를 생각한다. 또, 아름다운 궤적을 그리는 그의 프리 킥은 여전히 특유의 트레이드 마크로 기억된다. 역대 최고 프리키커를 거론하면 주니뉴, 안드레아 피를로, 호나우지뉴 등과 함께 반드시 거론되는 베컴이다.


https://youtu.be/YL5EX0p73s8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베컴이 과대평가받는 선수라고. 

물론 그의 스타성과 외모가 그 어떤 축구 선수도 경험하지 못한 인기와 주목을 부른 것은 맞다. 이 때문에 베컴의 선수 생활이 유독 빛나는 것 또한 맞다. 하지만 객관적으로 볼 때 베컴은 실력 또한 역대급이었다. 로벤과 리베리의 돌파력, 호날두의 득점력, 메시의 드리블도 가지지 못했지만 클래식 윙어의 표본 같은 움직임과 임팩트 있는 활약을 보여주며 유나이티드 최고의 황금기를 이끈 사람이 바로 베컴이었다. 

1999 발롱도르 2위, 잉글랜드 대표팀 115경기 출전, FIFA 100 포함, 1999와 2001 피파 올해의 선수상 2위는 수많은 선수들 중에서도 극소수만이 달성할 수 있는 경력이다.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베컴 외에 화려했던 선수가 또 있냐고? 물론이다. 베컴의 우월한 외모와 인기를 가진 선수는 아니었지만 분명 그의 선수 생활은 그 누구보다 화려했다.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만 뛰면서 1부 리그 우승 13회, FA컵 우승 4회, 챔피언스리그 우승 2회, 슈퍼컵 우승 1회, 클럽 월드컵 우승 1회를 달성한 것은 이 선수가 거의 유일할 것이다.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가장 이른 시점에 1부 리그 데뷔를 해 알렉스 퍼거슨의 위대한 1990년대를 함께한 이 선수의 이름은 라이언 긱스(Ryan Giggs). 유나이티드 유니폼을 입고 바비 찰턴보다도 더 많은 경기에 출전한 선수다. 



긱스는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두각을 가장 빠르게 보여준 선수였다. "퍼기의 아이들" 대부분은 1995년부터 1군에서 자리 잡기 시작했지만 긱스는 1990년대 초반부터 알렉스 퍼거슨의 선택을 받아 1군 선수로 활약했다: 데뷔 시즌이었던 1990/1991 시즌에는 리그 2경기 밖에 출전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골을 기록하며 자신의 진가를 확인시켰다. 이를 본 퍼거슨은 긱스의 재능이 프로 무대에서도 통할 것이라 확신하고 바로 다음 시즌, 1991/1992 시즌부터 긱스를 붙박이 주전 선수로 기용하기 시작했는데, 긱스가 유나이티드의 주전 레프트 윙으로 뛸 때 나머지 "퍼기의 아이들"은 아직 유스 레벨에 머물고 있었다. 

긱스는 데뷔 이후 곧바로 잉글랜드에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현란한 드리블은 조지 베스트의 플레이와 비슷했고, 상대 수비를 어려움 없이 허무는 모습은 유나이티드 공격에 활력을 불어 넣었다. 베스트와는 다르게 직접 득점을 기록하는 타입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드리블만큼은 당대 최고 수준이었다. 사실 골을 넣겠다고 마음먹었다면 더 많은 득점을 기록할 수도 있었을 테지만 긱스가 뛸 당시에 유나이티드에는 에릭 칸토나, 드와이트 요크, 올레 군나르 솔샤르, 앤디 콜, 테디 쉐링엄 같은 걸출한 스트라이커들이 있어 그럴 필요 자체가 없었다. 


만약 긱스가 프랑스인이었다면 피레스나 내가 벤치에 앉았을 것이다 - 지네딘 지단, 역대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


긱스의 진가는 1999년 FA컵 준결승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당시 그는 교체 명단에 이름을 올려 선발 출전하지 못했지만 팀이 어렵게 경기를 풀어가자 교체 출전으로 경기장을 밟았다. 그리고 그는 하프 라인에서 공을 잡아 아스날의 오른쪽 측면을 드리블로만 완전히 파괴해 박스 안쪽까지 들어가 골을 넣으며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극적인 결승 진출을 이끌었다. 당시 영상을 보면 아스날 선수들이 지그재그로 공을 자유롭게 드리블하는 긱스의 움직임을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긱스의 그 골은 FA컵 역사상 최고의 골로 기억된다.


나이가 들어 스피드와 돌파력이 저하됐을 때는 중앙 미드필더로도 활약해 죽지 않은 실력을 뽐냈다. 비록 예전만큼의 현란한 모습을 볼 수는 없었지만 경험에서 나오는 노련미와 경기를 읽는 능력으로 유나이티드의 플레이를 노련하게 조련하며 공수 밸런스를 안정적으로 맞추는 역할을 했다. 긱스가 주로 중앙 미드필더로 출전할 때 호흡을 맞춘 웨인 루니는 긱스의 플레이를 보고 이런 말을 했다: "라이언은 환상적이다. 그의 에너지, 활동량, 패스, 움직임은 믿을 수 없는 수준이다. 그와 함께 뛰는 것은 특권이다."


한 마디로 말해 긱스는 유나이티드 그 자체였다 -- 일곱, 여덟 시즌이 지난 후 베컴과 필 네빌 등 몇몇 "퍼기의 아이들"이 떠났지만 긱스만큼은 확고한 주전으로 꾸준히 활약했다. 총 24시즌 동안 유나이티드에서 1부 리그 무대를 밟은 그는 총 963경기에 출전해 총 168골을 기록하고 세 번의 50경기 이상 시즌을 보냈고, 1부 리그에서 130이 넘는 어시스트를 기록했으며, PFA 올해의 팀에 총 6번 선정되었다. 또, 그는 22시즌 연속으로 1부 리그에서 20경기 이상 출전해 경이로운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우승/수상 경력은 말할 필요도 없을 수준이다. 13번의 리그 우승, 4번의 FA컵 우승, 두 번의 챔피언스리그 우승,  두 번의 PFA 올해의 영 플레이어 수상, 한 번의 PFA 선수들 선정 올해의 선수상 수상은 사치스럽기까지 느껴진다.



라이언 긱스는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데뷔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은퇴한 진정한 원 클럽 맨이었다. 스티븐 제라드와 바스티안 슈바인슈타이거 같은 선수들도 이적을 선택한 상황에 긱스의 충성심은 더욱 빛난다. 지금까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에 조지 베스트, 바비 찰턴, 에릭 칸토나, 게리 네빌 등 수많은 상징적인 선수들이 위대한 발자취를 남겼지만 누가 뭐래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역사상 가장 위대한 11번, 가장 위대한 선수는 라이언 긱스로 기억될 것이다.

한편 "퍼기의 아이들" 중에서 라이언 긱스 말고도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원 클럽 맨으로 남으며 총 700경기 이상 출전한 선수가 또 있다. 팀 사정상 은퇴 번복까지 했을 정도로 유나이티드가 꼭 필요로 한 선수는 당연히 폴 스콜스(Paul Scholes). 로이 킨과 라이언 긱스만큼 화려한 수상 경력을 자랑하지 않지만 유나이티드의 중원을 그 누구보다 성실하게 책임졌던 선수다. 



대놓고 말해 폴 스콜스는 유나이티드의 중심이었던 적이 없다. 모든 스포트라이트를 베컴과 긱스가 받은데다가 중원에는 스콜스보다 더 개성 뚜렷했던 로이 킨이 버텼기 때문에 미디어의 큰 관심도 받은 적이 없다. 종종 비교되었던 스티븐 제라드처럼 팀의 독보적인 선수도 아니었고, 프랭크 램파드보다 한 단계 아래의 득점력을 보여주었으며, 샤비만큼의 패스 능력을 자랑한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스콜스는 유나이티드의 성공을 묵묵히 도운 최고의 도우미였다.

스콜스는 마치 연결고리와 같았다. 수비적으로도 공격적으로도 최고의 재능을 뽐낸 선수는 아니었지만 공수 밸런스를 잡고 볼을 안정적으로 운반할 수 있는 선수였다. 스콜스가 경기장에 있으면 원활한 볼 배급은 물론이고 유나이티드가 원하는 경기 템포를 볼 수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전성기 시절 마이클 캐릭과 비슷했는데, 물론 전체적인 클래스나 실력은 스콜스가 앞서지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하는 것과 중원에서 공수 밸런스를 맞추는 역할을 능숙하게 수행해낸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다. 몇 시즌 전까지만 하더라도 캐릭이 없으면 답답한 공격 연계가 펼쳐졌듯이 스콜스가 없으면 유나이티드의 공격이 원활하게 풀어지지 않았다.


내가 프리미어리그에서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누구냐고? 쉽다. 스콜스다 - 파트리크 비에이라, 아스날 역사상 최고의 중앙 미드필더 중 한 명


팀에 니키 버트라는 걸출한 미드필더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로이 킨과 폴 스콜스 중원 라인을 계속 선호한 알렉스 퍼거슨을 보면 스콜스가 얼마나 높은 전술적 가치를 지녔었는지를 보여준다. 만약 볼 배급을 원활하게 만든 스콜스가 없었다면 역습을 바탕으로 짜여졌던 퍼거슨 특유의 4-4-2 전술은 성공했을까? 로이 킨이 패스보다는 수비적인 임무에 집중하고 역습 전술 특성상 중앙에서 사이드로 벌리거나 지체 없는 패스로 공격을 전개해야 했던 것을 생각하면 퍼거슨의 4-4-2는 스콜스 없이는 실패했을 가능성이 크다. 


퍼거슨이 2011년 정도에 스콜스를 현역으로 복귀시킨 것도 이 이유 때문이었을 것이다. 당시 유나이티드는 질적으로나 양적으로나 스쿼드의 퀄리티가 떨어져 시즌 초반에 부진에 빠져 있었다. 퍼거슨은 자신의 전술을 가장 잘 이해하는 선수를 필요로 했고, 폴 스콜스는 완벽한 옵션이었다. 비록 2011/2012 시즌 프리미어리그의 주인공은 맨체스터 시티였지만 유나이티드는 확고한 2위 자리를 지키며 시즌 초반의 우려를 모두 씻어냈다. 물론 그 중심에는 팀을 안정화 시키고 퍼거슨의 전술적인 지도를 잘 이해한 스콜스가 있었다. 

스콜스의 우승 경력은 긱스와 똑같은 수준이다. 개인 수상 경력은 많이 모자라지만, 그래도 PFA 올해의 팀에 두 번 선정되고 피파 월드 베스트 일레븐 후보에 이름을 두 번 올린 기쁨을 맛보았다. 하지만 스콜스의 가치는 상에서 잘 드러나지 않는 만큼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 스콜스의 가치는 여전히 최고로 기억되기 때문이다.


"퍼기의 아이들", "클래스 오브 '92"


시간이 흘러 스콜스를 비롯해 "퍼기의 아이들"이 팀을 떠나거나 은퇴를 선언하자 "버스비의 아이들" 이후 보여진 성적 패턴이 나올까 걱정했던 팬들도 있었다 -- "버스비의 아이들" 후, 유나이티드는 극도로 부진한 시간을 보냈었다. 하지만 "퍼기의 아이들" 후에도 퍼거슨과 유나이티드의 전성기는 계속되었다. 공격에서 최고의 재능을 뽐낸 아주 특별한 두 선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니키 버트 소스: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2701771/Nicky-Butt-returns-coaching-role-Manchester-Uniteds-Under-21-assisting-team.html
https://en.wikipedia.org/wiki/Nicky_Butt
http://www.manutd.com/en/MatchTrackerSeasons/2015-16/Feature-blogs/8-reasons-why-Nicky-Butt-is-a-Manchester-United-legend.aspx?AL

필 네빌 소스: 

https://en.wikipedia.org/wiki/Phil_Neville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342975/Together-forever-Neville-brothers-transformed-Manchester-United-England-regulars-Valencia-s-main-men.html
http://www.mirror.co.uk/all-about/phil-neville

게리 네빌 소스:

https://en.wikipedia.org/wiki/Gary_Neville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gary-neville
http://srw.kr/734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505134/What-Gary-Neville-future-Valencia-balance-former-Manchester-United-star-determined-England-coaching-role.html

데이비드 베컴 소스:

http://srw.kr/137
http://www.biography.com/people/david-beckham-9204321#synopsis
https://en.wikipedia.org/wiki/David_Beckham

라이언 긱스 소스:

https://en.wikipedia.org/wiki/Ryan_Giggs
http://www.dailymail.co.uk/sport/football/article-3556639/Ryan-Giggs-receives-PFA-Merit-2016-award-glittering-Manchester-United-career.html
http://www.manutd.com/en/Players-And-Staff/Legends/Ryan-Giggs.aspx

폴 스콜스 소스:


https://en.wikipedia.org/wiki/Paul_Scholes#cite_note-124


http://babb.telegraph.co.uk/2014/11/to-mark-his-40th-birthday-here-are-some-of-the-best-quotes-about-paul-scholes/
http://www.theguardian.com/football/paul-scholes




글: 프리사이스 패스

http://blog.naver.com/kunn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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