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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수 Aug 21. 2016

사우샘프턴에게 펠레가 있었다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vs. 사우샘프턴 경기에서 펠레의 공백이 느껴졌다

전반 20분까지는 사우샘프턴이 경기를 주도했다. 점유율에서 압도하거나 반 코트 경기를 펼치며 유나이티드를 두드린 것은 아니지만 충분히 위협적인 장면을 많이 연출하며 경기의 흐름이 예상외로 사우샘프턴 쪽으로 흘러갔다. 하지만 그 20분 동안 골을 넣지 못했고,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력과 조직력이 올라온 유나이티드가 남은 70분 동안 2골을 넣으며 경기 초반 흐름과는 다르게 손쉽게 승점 3점을 가져갈 수 있었다. 클로드 퓌엘 감독과 사우샘프턴 선수들, 팬들에게는 통한의 20분으로 기억될 것이다.

한편, 그 통한의 20분 동안 많은 사람들은 한 선수를 떠올렸을 것이다: 그라치아노 펠레. 이번 시즌을 앞두고 중국 리그에 진출한 펠레는 지난 몇 년간 사우샘프턴의 주포로 활약하며 팀 공격을 이끌었다. 물론 그가 떠오른 이유는 단순히 그가 주포였기가 아니라 그의 플레이 스타일에 있다. 

펠레는 190이 넘는 키와 탄탄한 신체를 자랑한다. PL 수비수들의 거친 몸싸움을 이겨낸 것도 이 완벽한 신체 덕분에 가능했다. 하지만 그는 이탈리아 출신답게 볼을 컨트롤하는 능력도 뛰어나다. 발 밑 기술 및 기본기가 탄탄하고, 무엇보다 머리와 가슴으로 공을 컨트롤하는 능력이 세계 최고 수준에 있다. 

사커라인에서 SergioRamos라는 필명으로 활동하시는 유저는 펠레를 ‘제 3자 움직임의 장인’이라고 불렀다 (http://futboldelmundo.tistory.com/240). 사실이다. 사우샘프턴은 펠레의 뛰어난 신체와 볼 컨트롤 능력을 최대화시키기 위해 직선적인 롱 볼 축구를 구사해 왔고, 펠레는 기대를 저버리지 않으며 몸을 이용하는 발군의 연계 능력과 공을 정확하게 떨군 후에 가져가는 지능적인 움직임으로 사우샘프턴의 매력적인 축구에 색을 칠했다.

이는 지난 시즌 펠레의 리그 11호 골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펠레는 헤딩 경합에서 이기지 못했지만 강한 피지컬을 이용해 상대 수비수가 임팩트 있게 헤딩을 하지 못하게 했다. 펠레의 피지컬 때문에 멀리 가지 못한 공은 사우샘프턴 선수에게 흘러갔고, 그 순간 펠레는 지능적인 움직임을 가져가며 공간이 열려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완벽하게 위치를 선정한 펠레가 패스를 받았고, 몇 번의 터치 후 감각적인 슛으로 골 망을 갈랐다. 펠레의 피지컬과 지능이 한 번에 보이는 장면인 것이다.



그는 유로 2016에서도 비슷한 움직임을 가져갔다. 사커라인의 유저 SandroMazzola 님이 뛰어난 분석으로 설명해주신 것처럼(https://www.soccerline.co.kr/slboard/view.php?uid=1986890992&page=2&code=columnboard&keyfield=&key=&period=) 안토니오 콘테 감독은 3선의 선수가 1선으로 직접적으로 공을 패스하면 1선의 선수가 2선의 선수에게 바로 공을 떨궈주는 형식의 공격 전개를 이용했는데, 펠레는 자신의 피지컬뿐만 아니라 기술적인 볼 컨트롤 능력을 이용해 콘테의 입맛에 딱 맞는 활약을 펼쳤다. 독일에서 비슷한 역할을 맡았던 마리오 고메즈와 똑같은 롤의 선수는 아니었지만, 피지컬과 발 밑 기술을 이용해 롱 볼을 컨트롤하고 최소한의 터치로 2선에 위치한 선수들에게 공을 주는 것은 매우 흡사했다.



펠레에 대한 이야기를 잠시 그만하고 다시 사우샘프턴의 20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이미 말했듯이 사우샘프턴의 긴 패스들은 조직력이 갖춰지지 않은 유나이티드가 커버하지 못한 공간으로 여러 차례 들어갔다. 하지만 1선에서 활약한 선수들 — 셰인 롱, 네이선 레드먼드, 그리고 1선과 2선을 오간 두산 사디치 — 모두 피지컬과 기술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이며 더 위협적인 찬스로 만들 수 있는 기회들을 번번이 놓치고 말았다. 가장 대표적인 장면은 약 12분 정도에서 나왔는데, 사우샘프턴 선수가 유나이티드 선수들의 압박을 피하고 1선으로 긴 패스를 뿌렸지만 1선에 위치했던 사우샘프턴의 공격수는 볼을 컨트롤하지 못하며 좋은 찬스 하나를 날려 버렸다.



만약 그 1선에 위치했던 선수가 펠레였다면 상황은 아주 다르게 흘러갔을 것이다. 달려오는 2선 선수에게 정확한 원 터치 패스를 줬을 수도 있고, 피지컬을 사용해 동료 선수들의 침투를 기다린 후 상황을 이어갔을 수도 있다. 물론 펠레의 원 터치 패스나 볼 키핑이 100%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바로 지난 시즌까지 펠레를 봐왔던 사우샘프턴 선수들과 팬들은 충분히 펠레를 떠올릴만한 장면이었다.

글을 마치기에 앞서, 사우샘프턴에게는 아직도 펠레가 있었을 때 펼치던 축구의 색깔이 남아있다. 퓌엘 감독은 이를 탈피하기 위해 전임 로날트 쿠만 감독보다 더 적극적인 측면 공격을 요구하고 있는데, 퓌엘의 바램과는 다르게 1선 선수들에게 롱 볼을 뿌리는 장면과 펠레의 플레이에 최적화된 장면이 꾸준하게 나왔다. 이번 시즌 사우샘프턴의 과제는 리버풀로 이적한 마네의 공백을 최소화시키는 게 아니라 펠레의 존재를 잊고 새로운 스타일로 팀을 개편해야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글: 프리사이스 패스

http://blog.naver.com/kunnom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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