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쩍 잠에 들기까지 시간이 길어졌다. 묘한 공허함과 불안감에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신기하게도 그런 밤마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인생 교훈과 동기부여 쇼츠를 늘어놓는다. 기업가, 지식인, 종교인, 연예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나와서 냉정한 일침과 따뜻한 위로를 번갈아 가며 건넨다.
하지만 그중 어떠한 이야기를 마음에 새겨도 금방 또 무언가가 쫓아온다. 누리는 복이 많은 인생인데도 끝이 없이 쫓기고, 안정(安定)은 아득해 보인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는 왜 쫓기는 걸까? 그것도 이렇게 자주.
사람이 공허함과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쇼펜하우어처럼 대놓고 삶은 고통이라고 규정한 사람도 있고, 개인적으로 어려운 일을 마주했거나 인간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했을 수도 있다. ‘내란성 불면증’처럼 사회적∙역사적 사건에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다. 하지만 정작 밤마다 나의 정신을 말똥말똥하게 만든 것은 인생의 본질적인 고독이나 특정한 사건으로 인해 겪는 감정(물론 느끼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과는 다른 상존하는 압력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난 그 이유를 ‘경제적 인간’에서 찾았다.
경제학을 공부하며 배웠던 ‘경제적 인간(homo economicus)’은 자기 이익(효용)을 극대화하고자 가용한 모든 정보와 자원을 바탕으로 합리적(최적) 선택을 하는 인간이다. 고전 경제학에서 정의한 이와 같은 인간상은 현재 우리 자본주의 경제와 사회를 설계하는 중요한 밑바탕이 되었다. 동시에 경제적 인간상은 인간의 일부 속성을 과장∙일반화하고 인간에 대한 총체적 이해를 방해하는 가정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와 같은 내용은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다만 경제적 인간상이 왜 나를 잠 못 들게 하는지 구체적으로 연결 지어 보니 2가지 정도 이유가 있는 것 같다.
첫 번째는 최적 선택에 대한 압박감이다.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보상(효과)을 누리고자 하는 것은 중요하고 과거에도 중요했을 삶의 일부분이다. 다만 단순 물건 구매부터 인간관계, 커리어 등까지 삶의 모든 영역에서 최적 선택을 수행하는 것은 매우 피곤한 일이다. 매번 투입되는 시간, 돈, 에너지 등과 그에 대한 수익, 보상을 저울질하는 일은 사람을 늘 긴장하게 만들고 정보 수집을 멈추지 못하게 한다. 심지어 나름 최선의 선택을 해놓고도 타인과의 비교를 통해 박탈감을 느끼게 된다. 인터넷 공간이나 SNS 등의 발달은 자신이 내린 선택에 대해서 만족감이나 뿌듯함을 느끼기 전에 박탈감을 느끼기 더 쉬운 구조를 형성했다는 생각이 든다. 뿐만 아니라 최적 선택에 대한 강조는 대가(반드시 화폐적 보상이 아니더라도) 없이 이뤄지는 일상적 배려나 선행의 가치를 낮추고, 그런 마음을 발휘하고 나서도 뒤돌아 볼 때 손해 보는 느낌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아 씁쓸하다.
요컨대 잠에 못 드는 이유 중 하나는 무의식 중에 “나의 선택(그리고 앞으로 내릴 선택)이 최선일까?”에 대한 불안이 상존하기 때문인 것 같다. 지금 내리는 결정이 최선인 것인지, “정보와 지식을 충분히 모아서 정확히 맞는 계산”을 한 결과인지에 대한 의구심이 여과되지 못한 찌꺼기처럼 늘 남아있다.
두 번째는 ‘인적 자본’으로서 느끼는 도태에 대한 두려움이다. 경제적 인간상은 한 개인이나 노동자를 넘어 ‘인적 자본’으로서도 최대 효율과 수익 극대화를 요구한다. 다시 말해 자신에게 투입되는 ‘비용’ 대비 쓸모를 입증해야 한다. 물론 사회와 조직에서 우리가 가진 역량을 입증하고 기여한 바를 측정하는 것 등은 공정한 경쟁과 분배를 위해 매우 중요하다. 그러나 쓸모 입증에 요구되는 주기가 너무나도 짧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 사회, 기술의 변화가 너무 빨라서 한 때 쓸모 있던 ‘인적 자본’도 금방 쓸모가 사라진다. 더군다나 이제는 사람에 의해 대체되는 것도 아니라 AI나 로봇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지금까지 상당한 공을 들여야 했던 일이 생성형 AI에 더듬더듬 입력한 프롬프트만으로도 가능해진 것을 보면 AI를 다룰 줄 모르면 도태될 수 있다는 사실이 피부로 느껴진다. 어떤 영상을 보니 AI를 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전문가와 그렇지 못한 비전문가 사이의 생산성 차이는 몇 백배에 달할 것이라던데, 결국에는 AI에 일자리를 위협받거나 AI(또는 AI 전문가)를 보조하는 역할만 수행하게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생긴다.
즉, 인적 자본의 관점에서 나의 쓸모가 곧 사라질 수도 있다는 막연한 두려움, 더 나아가 그러한 상황을 대비 또는 극복하기 위해 또다시 막대한 시간, 돈, 에너지를 들이는 자기 착취가 불가피할 것 같다는 생각이 은연중에 밤잠을 방해한다는 생각이 든다.
여기까지 쓰고 나니까 내가 왜 잠에 못 드는지 알겠다. 침대에 누워 이런 생각까지 하면 누구라도 잠에 못 들겠구나 싶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경제적 인간상 때문에 최적의 삶을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은 불안은 당분간 스스로 극복하는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살아보지 않은 삶에 대한 집착은 현재의 삶을 외면”하게 하기에 “지금을 살아갈 수 있는 자유를 획득”한 것을 더 감사히 여기는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혹시나 나처럼 ‘경제적 인간’이 되어야 한다는 압박감에 잠을 못 이루는 사람이 또 있다면, 이 모든 게 기우(杞憂)인 것처럼 취급받는다고 느끼는 사람이 많다면, 또 다른 대안적 인간상을 서둘러 내놓아야 하지 않을까? 새로운 인간상의 등장을 희망하는 마음에 간절함을 담아본다.
참고자료
마리나 반 주일렌, 『평범하여 찬란한 삶을 향한 찬사』, 2024, FIKA.
“취미는 과학”, Youtube, EBS 컬렉션 – 사이언스, 2025.3.15., https://www.youtube.com/watch?v=0KDosjF0iYM&t=315s
홍기빈, 『위기 이후의 경제철학』, 2023, EBS BOOKS.
Kate Crawford, 『Atlas of AI』, 2021, Yal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