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멜다우의 지난 10년을 정리한 솔로 라이브 앨범
브래드 멜다우의 걸작이라고 알려진 앨범들은, 사실은 거의 90년대에 발표된 작품들입니다. 1년 내내 콘서트를 하고 최근에는 늘상 해 왔던 트리오와 솔로 뿐 아니라 다양한 아티스트와의 협업이나 주요 예술극장의 커미션 작업도 하는 현역 아티스트, 그것도 지금 재즈씬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 알려진 40대 연주자의 최고작이 90년대에 발표된 작품이라는 것은 다소 우스운 일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모두 트리오의 라이브 앨범들입니다. 멜다우는 꽤 솔로 콘서트를 잘 하는 연주자인데도 말이지요.
물론 멜다우에게는 도쿄에서의 공연과 마르시악 재즈 페스티벌 실황을 담은 솔로 라이브 앨범이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도쿄 라이브 앨범은 트리오 앨범과 함께 그의 최고작으로 꼽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음반도 이미 예전 음반이지요. 분명히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아티스트인데, 최근 10년간 멜다우의 작품은 이전에 발표했던 작품의 아우라에 가려 빛을 보지 못하는 것도 같습니다.
그런 면에서, [10 years solo live]는 매우 특별합니다. 오랜만에 발매되는 솔로 콘서트 앨범일 뿐 아니라, 지난 10년간 유럽에서 진행되었던 솔로 피아노 콘서트 중에서도 좋은 연주만을 엄선하여 발매한 앨범이니까요. 멜다우 자신의 언급에 따르면, 모든 곡들은 나름의 맥락을 가질 수 있도록 신경 써서 고르고 배치했다고 합니다.
LP로는 총 8장, CD로는 총 4장, 32곡, 5시간의 러닝타임을 가진 이 앨범은 총 4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각각의 파트는 하나의 공연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첫번째 파트인 [Dark / Light] 는 어두움과 밝음이라는 정서의 대비가 뚜렷합니다. 제프 버클리의 곡인 Dream Brother 는 원곡의 멜로디를 충실하게 따라가며 다소 어두운 분위기로 시작됩니다. 본 셋의 마지막 곡인 This here 까지 밝음과 어두움의 대비는 계속됩니다. 하지만 단순히 곡과 곡 사이의 지배적인 정서의 대비만 드러나는 게 아니라, 각 곡마다 그 지배적인 정서들이 뒤섞이며 새로운 분위기를 만들어 냅니다. 가령 Dream Brother 는 마이너 코드 특유의 어두운 분위기를 계속 이어가면서도, 우울이나 슬픔에 빠지지 않고 격정적인 에너지를 품고 있습니다. 그런가 하면 Blackbird는 우아하고 밝은 아름다움이 금방이라도 깨져버릴 것 같은 불안함 위에 놓여있지요. 또다른 비틀즈의 명곡인 And I love her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일전에 트리오의 연주로 들었을 때에는 아주 사랑스러운 춤곡 같은 느낌이었는데, 이 연주에서는 밝음과 어두움 사이를 수시로 줄타기하며 수줍은 사랑보다는 아주 강렬한 느낌으로 흘러갑니다.
두번째 파트인 [The Concert]는 멜다우가 실제로 2010년~11년 즈음에 했던 솔로 콘서트의 셋리스트와 유사하게 구성했다고 합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기대(?) 하셨을 Smells like teen spirit 은 흥미롭지만 오히려 평이하구요, 공연의 흐름대로라면 아마 감정이 최고조에 달했을 시간대에 위치한 Teardrop 이 아마도 이 파트의 핵심일 것 같습니다. 느릿하게 도입부를 지나 바짝 템포를 올려서는 원곡의 아이디어를 그대로 살려 자유롭게 즉흥연주를 하는데, 마치 밤하늘의 별이 반짝이듯 고음의 청아함을 살린 연주가 매력적입니다. 바로 앞의 I'm old fashioned 도 놓치면 안 될 곡입니다. 브래드 멜다우의 장기인 우아하고 부드러운 발라드를 듣지 않고 지나갈 수는 없지요.
세번째 파트인 [Intermezzo/Rüblick] 은 브람스의 간주곡을 연주한 한 트랙을 빼고는 전부 2004년과 2005년의 연주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10년 전의 공연들이지만 앨범 전체의 맥락 안에서 크게 어색하지 않게 들려 무척 재미있습니다. 다른 파트의 곡들이 장황하고 난해한 즉흥 파트들로 가득한, 러닝타임이 긴 곡들이 많아서 감상이 조금 힘들 수 있다면 세번째 파트는 아마도 가장 듣기에 쉬운 곡들로 구성되어 있을 것 같습니다. 스탠더드 레퍼토리도 많이 있고, 조빔의 곡인 zingaro 와 멜다우 본인의 곡인 paris 를 감쪽같이 연결한 곡은 멜다우의 팬이라면 아마 무척 반가울 것 같습니다.
마지막 파트인 [E minor / E major]는 첫번째 파트의 아이디어를 조성의 대비를 통해 제시한다고 아티스트 본인이 말하고 있습니다. 다른 곡들도 매력적이지만 음반의 마무리를 맡은 God only knows 는 반드시 들어야만 할 곡입니다. 연주를 시작하며 아주 느릿하고 아름답게, 그리고 처연하게 원래의 멜로디를 들려주고는, 원래의 모습을 잃을 때까지 집요하게 변주하며 이 곡은 흘러갑니다. 불협화음으로 가득 차 의미 없는 소리의 반복이 아닐까 여기게 될 무렵에, 멜로디는 다시 원래의 모습을 드러내지만 무수한 저음의 트릴 연주가 만들어내는 소리의 바다로 끌려들어갑니다.
이것은 마치 멜다우 본인이 늘상 이야기하던 재즈의 숙명 같기도 합니다. 즉흥연주는 태어나자마자 사라지고, 또다시 태어나기를 반복합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운 생명이 태어나 곧장 죽음을 맞더라도, 생명의 흔적은 우리의 마음 속에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사람은 죽어도 예술은 더 오래 남을테니 아마도 영생하는 것일테지요. 이 연주를 다 듣고 나면 그런 무상함과 뿌듯함이 함께 찾아옵니다. 아이디어를 확장하는 방식이나 그 안에 담긴 마음이나, 이 곡은 멜다우가 그동안 해 온 모든 것의 총합입니다. 그래서 이 앨범에서 한 곡만을 들어야 한다면, God only knows 를 고르겠습니다.
아마도 이 앨범은 멜다우의 커리어를 오랫동안 따라온 팬들에게는 큰 선물이 될 것 같습니다. 수많은 솔로 콘서트를 매년 하고 있음에도 솔로 라이브 앨범이 두 장 밖에 없었으니까요. 물론 둘 다 좋은 앨범이지만, 멜다우가 그동안 해 온 공연들에 비하면 팬들이 들을 수 있는 음반은 턱없이 적은 거나 마찬가지였지요. 하지만 이번 앨범은, 커리어를 정리하는 의미를 넘어서 아마도 최근 10년간 발매된 멜다우의 앨범 중에 가장 좋은 앨범이 될 것만 같습니다. 피아노 한 대로 표현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수준 높은 연주 속에 담았지요. 그러니 [ Art of the trio ] 시리즈 이후에 드디어 그의 걸작이라고 할 만한 앨범이 나왔다고 볼 수도 있을거에요. 비록 딱 한 장의 멋진 레코드가 아니라는 점이 아쉽긴 하지만, 각각의 파트를 개별적으로 출시했더라도 충분히 명반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자격이 있기에 아쉬운 마음은 살짝 덜어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이 앨범에는 멜다우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멋진 장점과, 단점으로 알려진 그 모든 것들이요. 누구보다도 지적이지만 또 그 어느 누구보다도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음악을 하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발라드를 연주할 수 있지만 또 그 누구보다도 어둡고 서글프며 파괴적인 음악을 할 줄 아는,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줄 수 있지만 불협화음의 낯선 조합을 사랑하는, 그 피아니스트가 지난 10년간 쌓아 온 모든 것이 있습니다. 아마 보편적인 아름다움은 아닐지도 몰라요. 아름다운 이야기를 많이 들려주기보다는 자신이 인정하는 단 한가지의 아름다움만을 집요하게 탐구하고 이야기하는 사람이겠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더 매력적이지 않나요? 지금 우리는, 이 약간 괴짜같은 피아니스트가 거장이 되어가는 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으니까요.